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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과 자살로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에 관한 반박문
'우울증과 자살로 나라가 무너지고 있다'에 관한 반박문
  •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2.08.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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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입장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장
김동욱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장

자살을 단순히 항우울제를 먹으면 해결되는 문제로 생각하고, 우리나라의 높은 자살률을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책임으로 돌려 항우울제의 60일 처방 제한을 없애려는 지난 기고문에 대해서 반박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의 전문의 비율은 전 세계에서 유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높다. 물론 의료법상으로는 의사국가고시를 통과한 일반의가 자신의 전공과목이 아닌 다른 과목에 대해서 진료를 하더라도 문제는 없다. 

그러나 전문의는 해당 전공과목을 위하여 의사면허 취득 후 4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도전문의와 함께 수많은 환자를 경험하고 그들의 치료를 연구하고, 치료의 실패를 곱씹고 발전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것은 타과의 전문의가 몇 번의 연수교육으로 갈음할 수 있는 정도의 깊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실 신경과 전문의 제도가 생기기 전, 신경정신과 전문의 제도 하에서는 많은 신경정신과의사들이 뇌전증(간질)에 대해서도 치료를 해왔다. 전공의 시절 뇌파를 판독하고 항전간제를 처방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신경과 전문의 제도가 따로 생기면서 뇌혈관에 대한 질환이나 간질 등에 대해서 보다 전문적인 진료에 대해서 4년의 수련을 거친 사람들이라는 것을 인정하였다. 즉 정신건강의학과도 수련과정에서 뇌파와 뇌전증 등에 대해 공부를 했으나, 신경과 전문의 제도가 따로 존재하게 되었기에 이를 인정하였다. 

대학병원 위주로 근무하는 신경과 의사 대신에, 1차 의원의 수가 훨씬 많은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뇌전증에 대한 진료를 해야만 간질발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는 않았다. 치료는 접근성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전문성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뇌전증의 예를 든 까닭은 이 분야가 현재 항우울제의 처방 제한을 주장하는 신경과 교수의 전문분야이기 때문이다. 

우울증에 대해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 것인지, 역지사지로 한번 생각해볼만한 비유이기 때문이다.

신경과의 고유의 영역인 뇌전증을 비롯해 뇌경색, 파킨슨, 말초신경질환 등 신경과가 더 치료를 잘 하는 질환에 대해서만 전문적인 진료를 해도 모자랄 텐데, 본인의 영역이 아닌 우울증에 대해서 진료를 주장하는 신경과 교수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가 없다. 

진심으로 자살예방과 우울에 대해 공부를 하기 원했다면, 기존에 우울증에 대해서 많은 임상경험을 갖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과 협업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신경과, 내과, 가정의학과 의사들과 모여서 우울증자살예방학회를 설립하여 마치 우울증 치료나 자살 예방에 대한 연구를 한다고 하는 것은 그 의도가 정말로 의학의 발전과 실제 환자를 위한 것인지 의심스럽다. 

우울증자살예방학회는 학회라는 이름을 띄고 있지만 대한의학회에 정식으로 등록되어 있는 학회도 아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도 가장 무거운 자살을 예방한다고 말한다면, 도대체 각 과의 전문 영역과 전문의 제도에 대해서 어떻게 여기는 것인지 개탄을 금할 길이 없다. 

만약 그 신경과 교수의 전문분야인 뇌전증에 대해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이 신경과를 배제하고 학회를 설립한다면 그것을 납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타과의 전문 영역에 대한 공격은 결국 본인의 전문성에 대한 자해 행위이며 본인의 명예를 깎아 먹는 행위가 될 것이다.

사실 정신건강 문제나 자살위험성에 대해서 혈액검사나 사진을 찍어서 정확히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현재의 과학 기술로는 환자의 말과 행동으로 평가를 해야 한다. 10분 정도의 짧은 면담을 통해서라도, 설령 그것이 치유의 효과를 지니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진단의 의미는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과정은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제도권 하의 훈련을 거친 것이며, 이는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다. 마치 약물치료가 전부인 것처럼, SSRI의 제한을 풀면 자살이 예방되는 것처럼, 그렇게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자살률이 높은 나라에서 환자의 생명을 걸고 실험을 할 필요는 없다. 항우울제를 모든 과에서 처방하는 것이 국민 안전을 위해서 필요한 것처럼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조울증이나 조현병, 불안장애 등과의 감별진단 없이 무분별하게 처방하는 항우울제는 오히려 감정기복을 악화시키고 정신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물론 우리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도 처방제한을 통해서 분별 있게 처방을 하고 주의를 기울여서 우울증과 자살 예방에 기여해야 하는 그 사명감을 다시금 느껴야 하는 계기로 받아들이고 있다. 항우울제 처방 제한을 푸는 것은 정신건강의학과의 낙인을 심하게 하고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놓치게 하므로 자살률을 낮추는 것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을 확신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질환은 생물심리사회모델(biopsychosocial model)의 측면에서 통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자살은 단순히 우울증의 생물학적인 부분과 관련 있는 것이 아니다. 

사회문화적인 측면과도 관련 있는 현상에 대해서 마치 항우울제 처방을 못해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들의 책임이 있는 것처럼 매도하는 것은 큰 문제가 있다. 아무리 예전과 달라졌어도 아직도 정신건강의학과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다는 것은 인정한다. 

자살 예방을 위해서는 다학제적인 노력이 중요하며,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대한 낙인을 없애고 장벽을 낮추어 좀 더 빨리, 좀 더 쉽게 치료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 국민에게 훨씬 이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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