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전문과목 명칭변경 신중해야
시론 전문과목 명칭변경 신중해야
  • 조명덕 기자 mdcho@kma.org
  • 승인 2004.07.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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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의료계에서는 전문과목의 명칭을 바꾸는 일이 잦아졌다. 진단방사선과는 영상의학과로, 임상병리과는 진단검사의학과로, 마취과는 마취통증의학과로 개명했다. 이어 올해는 소아과가 소아청소년과로 바꾸는 것이 의료계 내에서 합의됐으며, 다시 최근에는 산부인과가 여성의학과로 바꾸려는 움직임이 있고, 아직 수면아래에 있지만 노인의학도 따로 전문의로 독립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문과목의 세분화에 따른 명명과 분류에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법칙이 없었다. 전문과목의 분화기준이 제 각각인 것을 보면 쉽게 이해 된다.

해부·생리학적 구분에 따라(안과·피부과 및 내과의 각 세부분과), 성별에 따라(산부인과), 나이에 따라(소아과·내과), 기본적인 치료방법과 해당 장기시스템에 따라(여러 외과), 주로 사용하는 기술에 따라(영상의학과·진단검사의학과·핵의학과), 같은 기술이라도 의학적 방법(진단과 치료)에 따라(영상의학과에서 갈려나온 치료방사선과), 심지어 진료 상황과 현장에 따라(응급의학과·산업의학과) 분류되어 온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원칙없는 전문과목 명명법의 찬란한 전통(?)에 비추어 보면 새로운 개명 운동을 불온시 하는 것은 역사를 모르는 무지의 소치로 비난받을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자. 이번 개명 바람에는 의학기술의 발전과 대중의 요구와 관련해 과학적이고 타당한 이유가 있는 경우도 분명히 있지만, 한편으로는 사업가가 사업이 안되니까 운이 불붙듯 타오르는 이름으로 간판 한번 바꾸어 달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언뜻 비치는 것도 사실 아닌가?

마취과가 마취통증의학과로 개명해 개원가에서 통증치료의 주도권을 잡고 전문가로 자리매김한 것이 다른 과의 개명작업에 큰 자극이 되었으리라. 명분은 그럴 듯 하지만 속은 드러나 보인다.

여성의학과로의 개명 움직임을 듣고 어떤 과는 남성의학과로 바꾸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고 있으니, 이제 중년의학과·장년의학과로 나이구분도 더 세분화하고, 여기에 성별로도 나누고 추가로 기관별까지 보태서 아예 원천적으로 불만의 소지를 없애버리면 어떨까?

자본주의 의료시장에서 이제 의사들은 스스로 영역을 창조하고 확대해가는 치열한 경쟁 속에 내동댕이 쳐져 있다. 의사들이 정부를 향해 보장하라고 부르짖는 '자유시장'의 논리가 그 자유시장이 서기도 전에 부메랑이 되어 의사의 숨통을 죄기 직전인 것이다.

최근의 전문과목 개명 바람에는 시민의 요구에 부응하고 의학 발전에 기여하려는 목적보다 상업적 욕구와 진료영역 확대의 어두운 그림자만 어른거린다. 전문과목의 개명 이전에 시민들이 의사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성찰해보는 분위기가 우선돼야 한다. 의사라는 전문가집단의 기풍(morale)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예부터 성명학이 기반을 잡은 우리나라에서 부귀장수와 행운이 따라주고 사업이 잘 풀리길 기원하는 의미에서 명명을 중시하였고, 일단 이름을 한번 지으면 천명으로 여기고 그 정체성과 역사성을 소중히 해왔다. 혹시 운이 좋지 않으면 개명을 해보기는 하지만, 이름 한 번 바꾼다고 세상이 쉽게 바뀌던가? 헌신짝처럼 버린 그 이름이 바로 날 낳아주고 키워준 이름인데.

이정권(성균관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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