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살펴보면서 인상 깊었던 것은 환자의 사진들이 실제 우리나라 환자들의 사진이며, 대한의사협회에서 발행한 의학용어집 제 4집에 따라 통일된 용어를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환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방법 또한 쉬운 우리말 용어로 사용하여 의사-환자 관계에 도움 되도록 한 것이 눈에 띈다.
한 송이 국화꽃이 피려면 천둥치는 여름을 견뎌내야 하듯이 방대한 저서를 완성하기까지는 열정과 인고의 세월이 있었을 것이다. 의사로서 대선배이신 강교수님의 역작에 대하여 서평을 쓴다는 것이 분수에 넘치는 외람된 일이기에 그 대신 옛날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중국의 전국 시대 말엽, 당시 최강국인 진나라의 상국(재상)으로 위세를 떨친 문신후 여불위(~B.C.235)는 3,000여명의 식객을 모아 30여만에 이르는 대작을 만들었다. 이 책은 천지만물,고금의 일이 모두 적혀 있는 오늘날의 백과사전과 같은 것으로 <여씨춘추(呂氏春秋)>라 이름 지었다.
그는 '여씨춘추'를 도읍인 함양의 성문 앞에 진열시키고 그 위에 천금을 매달아 놓고 방문(榜文)을 써 붙였다. "누구든지 이 책에서 한 자라도 덧붙이거나 빼는 사람에게는 천금을 주리라." 그 뒤로 '일자천금(一字千金)'은 한 글자엔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뜻으로, 아주 빼어난 글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여불위는 3,000명의 식객을 시켜서 <여씨춘추>를 만들었으나, 강교수님은 혼자 <성형외과학>을 집필하였다. 여불위는 '일자천금'으로 완벽한 내용을 과시하였으나, 강교수님은 "이제 이 책이 교과서로서의 체계와 내용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므로 다음판 부터는 이 책에 바탕을 두고 여러 학자들의 영역별 분담집필로 새로운 교과서로서의 면모를 유지해 나가고자 한다" 고 하여 앞으로 성형외과학의 발전에 부응하여 지속적으로 개정하리라는 뜻을 밝혔다.
여씨춘추는 춘추시대의 백과사전으로서 뿐만 아니라 오늘날 까지도 고전으로 읽히고 있다. 강교수님의 <성형외과학>은 우리나라의 의과대학생과 성형외과의사들에게는 교과서로서, 다른 과 의사들에게는 참고서로서의 역할을 완벽하게 하리라 기대된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강교수님의 이번 저서는 여불위가 살던 시대였다면 <강씨성형춘추>라고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을 것이다.
강교수님의 이번 저서는 성형외과 분야의 새로운 지식의 전달 뿐 아니라, 실제로 환자에게 설명하는 진료지침서이자 수술할 때 펴놓고 보는 수술지침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위로는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上求菩提 下化衆生'(상구보리 하화중생)을 이루는 책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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