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8 19:59 (일)
[2004신년]미래 대비하자/바람직한 의료이용 문화

[2004신년]미래 대비하자/바람직한 의료이용 문화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4.02.02 14:06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대중(아주의대 교수·내분비대사내과학)

바람직한 의료이용 문화

의료전달체계 확립·신뢰 회복이 관건

 

 

연말연시 의사들의 분위기는 착잡하기만 하다. 2000년 의약분업의 시작과 함께 분출되었던 의사들의 요구는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다. 대다수의 국민들은 3년이 지난 지금 증가한 의료비 지출과 성과없는 의약분업에 불만만 쌓이고 역시 의사들도 불만에 가득차 있다.


이러한 가운데 최근 미국에 연수를 간 한 선배의 편지를 통해 미국의 의료현실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선배의 편지 내용을 먼저 소개하면서 바람직한 의료이용 문화의 필요성에 대해 접근해 보고자 한다.

"…미국에 와서 4개월이 지나서 위궤양 환자처럼 속이 쓰리고 아프고, 구역질이 나는 증상이 생겼습니다. 해결 방법은 위내시경을 하여 정확한 진단명을 확인하는 것인데 제가 근무하고 있는 병원은 동네의원을 거쳐서 필요한 경우에만 진료를 해주는 곳이어서 한국처럼 편하게 내시경 검사를 할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따라서 이곳 동네에 있는 북부 러쉬병원에 진료 예약을 하고 내시경 전문의에게 위내시경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후에 담당의사가 가벼운 위염증만 있다고 얘기 했을 때 얼마나 안도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일주일 뒤에 병원에서 전화가 와서 헬리코박터 위염균이 양성이니 약을 타라고 하여 보름치를 받아 왔는데 약값으로 300불(36만원)을 지불했습니다.

그 다음 러쉬병원에서 진료비 청구서가 날아 왔습니다. 수면내시경까지 한 총 진료비는 1,997불(240만원)로 표시되어 있었고, 그 후 청구서가 집으로 한 장 더 왔는데 위조직 검사 비용으로 613불을 더 내라고 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마다 다양한 생각을 할 수 있다. 의사들은 대부분 "미국은 정말 의사들이 대접받는 좋은 나라야"라고 생각할 것이고, 국민들은 진료비가 비싸다고 불만을 가질 것이다.

미국의 의료보험은 대개 사보험의 형태로 되어있으며, 미국 중산층 4인 가족의 경우 월 평균 의료보험료가 1,070불(128만원)이라고 한다. 직장인의 경우 회사에서 보험료의 75%를 부담하고, 본인은 250불 정도 부담한다면 평균적으로 월 30만원을 내고 있는 것이다. 자영업인 경우 120만원을 본인부담해야 한다. 그래서 보험에 가입하지 못하고 그냥 사는 경우가 상당하다.

의료비 지출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보험수가 또한 가장 높은 미국은 국민들에게 꼭 최선의 제도는 아닐 수 있다. 반면 값싼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제도가 우리 국민들에게 너무나 편리하고 좋은 제도라고 느끼기 쉽지만 역시 모든 국민에게 의료의 혜택을 제공한다는 취지 외에 세부적으로는 너무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 의료현실에 대해 선진적이라고 하기는 무리가 있다. 의사도 환자도 문제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너무 쉽게 병·의원을 이용할 수 있고, 3차 의료기관이라 할지라도 마음만 먹으면 큰 비용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

간단한 상병에 대해서도 대학병원을 선호하는 국민들의 심리를 나무랄 수는 없다. 어쩌면 건강보험수가라는 제도적인 장치를 통해 중한 상병 또는 입원이 필요한 정도의 상황이 아니라면 3차 의료기관의 이용이 쉽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동네의사는 수준이 낮고 대학병원의사는 '박사님'이라고 생각하는 국민들의 이분법적인 태도 또한 문제가 있다. 물론 그렇게 되어버린 이유 중 하나는 동네의사들이 단순 상병(내과로 치면 감기나 소화기질환 정도)을 보는 수준으로 전락한 부분도 포함된다.

가장 시급히 우리나라에 정착되어야 하는 의료이용 문화 중 하나는 주치의제도이다. 나와 가족이 아플 때 언제든지 상담하고 조언을 받을 수 있는 동네 주치의를 두는 것이 결과적으로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이다.

바쁘고 정신없는 대학병원 의사들을 찾아 1분도 채 상담할 수 없는 현실 속에 자신의 병에 대해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는가? 결국 검사와 처방을 받는 것밖에 되지 못하는 현실을 알면서도 굳이 그렇게 하려는 국민의 심리에 문제는 없는가?

예약 문화도 중요하다. 대학병원의 경우 환자가 너무 많아 예약진료를 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무작정 병원에 찾아와서 빨리 봐주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털어놓는 환자들을 보게 된다.

고급 음식점이나 유명 호텔에 가려면 예약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마찬가지로 병·의원을 이용하는 것도 예약이 필요하고 기다림이 필요하다. 간혹 빨리 진료를 봐주길 바라는 마음에 부탁을 하는 경우가 있다. 부탁을 하는 사람도 문제이지만 규칙을 어기면서 서둘러 진료를 받게 해주는 의사도 문제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라는 고질적인 문제를 '10분 대기 10분 진료, 필요하면 30분 진료'의 이상적인 진료실 문화로 바꾸기 위해선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의사들은 흔히 건강보험수가가 너무 싸기 때문에 '박리다매'격으로 환자수를 3~5배 늘려서 봐야 수지가 맞는다고 하소연을 한다. 부분적으론 1개월 기간을 두고 환자를 진료해도 될 것을 1주일마다 오게 하고 1주일 후에 찾아와도 될 환자를 매일 오게 하는 방법을 쓰기도 한다. 예약을 해주고도 제 시간에 진료를 할 수 없게 만들고 있는 병원도 문제가 있다.

의약분업이 시작될 때 의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요구했던 것 중 하나가 건강보험수가의 현실화였다. 원가의 60% 수준에 못 미치는 수가현실에서 제대로 된 진료를 제공할 수 있을 거라고 요구하는 건 과욕이다.

물론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면 수가인상이 바로 의료현실의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 하고 있다는 불만이 뿌리깊게 내재되어 있다. 미국이 의료 고가정책을 유지함으로써 얻는 이익은 그 수익의 많은 부분을 의학 발전과 의료시설 확충에 재투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인식은 지금도 의사들이 부유하게 살고 있는데 수가를 더 올려주면 의사와 병원만 배불리기 하는게 아닌가 하는 시각을 가지고 있다. 그만큼 의사와 병원이 투명하지 못했다고 해석할 수 있으며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노력이 적었던 것에 대한 반증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현재 국내의 의료서비스는 미국과 견줄만한 수준이며 임상의학의 시술이라는 면에서는 미국과 차이가 거의 없다. 의사도 좋고 국민들도 좋은 가장 효율적이고 안정적인 의료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국민들에겐 우리 의사를 믿고 지지해주는 마음가짐과 좋은 진료여건을 만들기 위해선 그만큼 비용의 지불이 필요하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물론 의사나 병원은 환자들을 만족시키고 최선의 진료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한 여건을 개선해 나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