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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8 19:59 (일)
[2004신년]미래 대비하자/건강보험에 지워진 무거운 짐 덜어주자

[2004신년]미래 대비하자/건강보험에 지워진 무거운 짐 덜어주자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4.02.0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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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규(단국의대 교수·예방의학)

건강보험에 지워진 무거운 짐 덜어주자

공공영역 부담 민간으로 이전 바람직

 

우리나라의 건강보험 제도를 들여다볼 때마다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 국민들 중에서 과연 우리의 건강보험 제도에 대해서 만족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가난한 사람은 가난한 사람대로, 중산층은 중산층대로, 부유층은 부유층대로, 그리고 의료인은 의료인대로 현재의 제도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더 이상 부연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아무도 만족하지 못하는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제도가 시행된 지 30여년이 흐르는 동안 다른 어떠한 대안도 모색하지 못한 채 건강보험제도 하나에만 매달려 정부와 국민과 의료계 간의 지루한 다툼을 계속해 왔다. 그 와중에 우리의 건강보험 제도는 단순히 의료보장 정책의 차원을 넘어 우리나라 의료 전반의 형태를 규정하는 공룡이 되어 버렸고 건강보험 재정 안정이 한국 의료 최대의 목표인 것처럼 되어 버린 슬픈 현실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건강보험에 매달려 30여년을 지내오는 동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너무도 급격하게 변해버렸다. 의료보험 제도가 시작되던 1977년 당시 8백 불 정도에 불과하던 일인당 국민소득은 IMF 경제위기로 잠시 주춤하기는 했지만 1만 불을 넘어 2만 불 시대를 기대하고 있다.

의료보험이 도입되던 당시 기본적인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허덕이던 국민들은 이제 삶의 질을 이야기하며 여가를 즐기고 건강의 유지와 증진을 생각하고 있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올 7월부터는 1000명 이상 사업체에서 주 5일 근무가 시행될 예정이기도 하다. 이러한 국민들의 의료욕구가 이제 70~80년대의 패러다임으로는 수용할 수 없는 다양한 형태로 표출되고 있음은 이미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노인 인구의 증가도 주목해야 할 부문이다. 우리나라의 노인 인구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1975년 전체 인구의 3.5%에 불과하던 65세 이상 노인 인구는 2000년에는 7.1%가 되었으며 2020년경에는 14%에 이를 전망이다. 이에 따라서 전체 건강보험 진료비 중 노인의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1990년의 8.2%에서 2000년에 17.6%에 이르게 되었고, 가까운 시기에 선진국 수준인 30~40% 수준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사실은 우리나라가 노령사회로 접어들게 되는 2020년 이후에 노년기에 들어설 미래의 노인들은 이전의 노인들과는 전혀 다른 인구집단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광복 이후에 출생하여 경제개발 시대에 성장기를 거쳤으며 노후를 단순히 자식들에게 의존하던 이전의 노인들과 달리 개인적인 차원의 노후에 대한 충분한 대비도 있었고 교육수준도 상대적으로 높으며 연금제도가 정착하는 시기에 노년을 맞는다는 특성을 가진다. 따라서 '준비된 노후'를 맞이할 이들 미래의 노인들은 현재보다 훨씬 다양한 의료욕구를 가질 것이며 기대수준 역시 높을 것이다.

이외에도 우리나라의 샴쌍둥이 자매 수술로 유명해진 싱가포르의 래플즈 병원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각 국에서 경쟁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의료의 산업화 및 의료계와 관련 산업계를 연계하는 의·산 복합체의 구성 등은 이제 남의 나라의 일로 돌려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조차도 오래전부터 병의원의 산업화를 위해서 영리법인제도를 만들어 외국 병원과 자본을 유치하고 있으며 자국민들에게도 병원에 투자하도록 적극 유도하고 있다.

이러한 모든 변화들을 현재의 건강보험 제도가 감당하기에는 너무 버거워 보인다. 아니 현재와 같은 공공부문이 모든 것을 안고 있는 건강보험 체계로 이러한 것들을 안고 가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

이는 현재의 건강보험 제도가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점에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앞서 살펴본 여러 가지 환경 변화들과 그러한 환경 아래에서 우리가 맞이할 것으로 예상되는 현상들이 이미 건강보험이라는 공공영역에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보다 정확한 해석일 것이다. 우리는 현재 건강보험 제도의 개선이라는 정책과제와는 별도로 의료보장에 있어서의 공공과 민간의 역할 분담이라는 전혀 새로운 형태의 정책과제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건강보험에 만족하지 못하는 국민들은 2001년에 이미 4조원이 넘는 돈을 민간보험회사의 건강보험 상품을 구매하는데 소비하였다. 신세대 노인들이 원하게 될 장기요양, 간병, 일상생활 보조 등 복지와 연계된 의료서비스는 현재의 건강보험에서 제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제공하려고 하여도 현재의 재원으로는 그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의료산업의 국가경쟁력화라는 새로운 세계의 흐름을 좇아가기 위해서는 일률적인 요양기관 강제지정이라는 현재의 건강보험의 틀에서 벗어나 경쟁력 있는 병원들을 시장에서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의료제공 측면이든, 재원조달 측면이든 우리의 의료에서 국민들의 기본적인 의료보장을 위해서는 공공이 담당하여야 하는 영역을 명확히 한 후, 나머지 부분은 과감하게 민간 부문으로 이전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현재의 획일적인 공공주도의 체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보험이, 다양한 의료기관이 국민들의 선택을 기다리며 경쟁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그리하여 현재 건강보험이라는 공공 영역이 지고 있는 그 무거운 짐들을 덜어 주어야 한다.

이미 우리는 변화된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라는 도도한 흐름은 거부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변화를 막을 수 없다면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여 변화를 주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여야 한다. 어떤 역사학자가 말한 것처럼 인생살이란 묘한 것이어서 지금의 삶이 행복하면 과거의 아픔이 추억이 되고 지금의 삶이 불행하면 과거의 아픔이 회한으로 남는다.

지난 30여 년 동안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래도 국민들의 의료 접근도 향상에 많은 기여를 한 우리의 건강보험을 미래에 추억으로 기억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건강보험이라는 공공영역이 지고 있는 무거운 짐을 덜어서 민간부문으로 이전하여야 한다. 우리의 건강보험을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멸종해 버린 공룡이 되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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