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과 그림은 그려나가면서 고치는 거죠
'인생과 그림은 그려나가면서 고치는 거죠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5.02.2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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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겸 진단방사선과 전문의 강진화 교수

  여자의 하반신은 땅을 단단하게 움켜쥐고 있는 나무뿌리이다.그녀는 얼굴을 들고 쏟아지는 태양의 온기에 몸을 맡기고 있다.태양은 금가루같은 빛살을 뿌리고, 여자는 날개짓을 하며 날아오르듯이 몸을 활처럼 부드럽게 굽혔다.하반신이 자줏빛 날개가 되어 가벼워졌다.

  ▲ 자유 (2000.10 /유화/70.5 ×115.5cm)

  그의 그림 중「자유」라는 제목의 그림을 몇 글자로 옮겨 보았다.그림은 화가와 닮은꼴이라지만 이 그림만큼 화가 강진화(서울대 병원 강남검진센터)와 닮은 것은 없는 듯하다.화면 가득히 쏟아지고 있는 따스한 햇살의 온기, 여자의 두 가슴에팽팽하게 내재해 있는 열정.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삶을 즐기면서도 굳센 나무뿌리에서 날개를 달아 날아오를 줄 아는 비상한 감성의 소유자.

  프리다 칼로와 같은 정열은 느낄 수 없었지만 내면의 세계를 조용히 그러나 강렬하게 화폭에 담는 '강진화식 열정'은 느낄 수 있었다.불혹의 나이를 넘어섰는데도 결혼이라는 제도의 틀에서 자유로운 그.그가 그림과 인생에서 갈구하는 '자유'의 풍경이란 과연 어떤 것일까.


 ■ 그림으로 내 안의 '나'와 만난다

  때는 88년 제주도.제주도에 파견 나온 레지던트였던 그는 근처 미술 입시학원으로 발걸음을 향한다.타지에서의 무료함과 수고로움을 달랠 것이 왜 하필 그림이어야 했는가는 중요치 않다.그와 그림이 '만났다'라는 결과 그 자체, 운명의 이끌림과도 같은 알 수 없는 힘만이 중요하다.

  "나중에 소지품을 정리하다보니 학창시절에 파스텔로 그린 습작품이 나오기는 했지만, 특별히 그림에 소질이 있다거나 흥미를 보인 적은 없었어요.단지 우연히 그림을 시작했고, 재미있었고, 그래서 한 점 한 점 쌓인 게 정식 작품으로 100편이 넘었죠."

  방 한 켠에 내밀한 이야기처럼 쌓여 있던 그림이 사람들과 만나게 된 것은 그가 그림들을 '처분'하기 시작하면서부터.몇몇 지인들에게 그림을 선물로 주기도 하고 더러는 팔기도 하면서 그의 그림들은 점차 세상의 물결 속으로 흘러들어갔다.

  98년 '제4회 대한민국 국민미술대전'과 99년 '제3회 서울미술전람회'에서의 입선은 세상에서 그의 그림을 인정해주기 시작했다는 객관적인 증거였다.이후 인사동에서 전시회를 열면서 그는 이제 정식으로 '화가'의 세계로 들어서서 많은 사람들과 자신의 그림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성격이 사교적이지 않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넉넉한 편이에요.표현욕이 남들에 비해 많은 것 같기도 하고.그림을 통해서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죠."


 ■ '무엇을 그리느냐'는 삶과 대화하는 문제

  그림쟁이는 두 부류로 나뉜다.시도 때도 없이 그림을 그리다가 옥석 같은 그림을 골라내는 사람과 마음 속에서 이미 옥석 같은 환영이 생겼을 때 그것을 그림으로 옮기는 사람. 강 교수는 후자다.

  그는 "일단 시간이 나야" 그림을 그린다.이 말은 오해의 여지를 담고 있다.그림이 여타의 일들에 비해서 차순위라는 의미일까.

  "가끔 이대로 그냥 못자겠다는 감정이 표출될 때 그림을 그리기도 합니다만 대부분의 경우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그림을 그리게 돼요.여기서 여유라 함은 어떤 평온한 상태를 말하는 게 아니라, 제 속의 자아와 만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삶과 대화를 나눌 태세가 되어 있다는 것을 말하지요.누구나 감성은 가지고 있지만 그것을 덜 느끼거나 시간적인 여건이 부족해 표현을 못할 뿐이죠.여유를 갖는 게 그림의 시작이에요."

  그의 그림의 상당수가 심리묘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그는 마음을 풀어낸다는 그림의 원칙에 충실한 화가다.그 속에 그의, 인간의, 삶의 이상이 녹아 있다.

  "저는 감정과 생각을 표현한 그림이 좋습니다.물론 습작 비슷이 찍은 사진으로 그림을 그리고 정물·풍경화를 그리기도 하지만 그것은 기술연습에 가깝다고 볼 수 있어요.간혹 머릿속의 환영들을 그림으로 옮기고 '괴기스럽다'는 느낌도 받지만 오히려 남들은 그런 그림이 좋다고들 합니다.진솔하게 마음을 풀어냈기 때문인 것 같아요."(웃음)


 ■ 커다란 화폭에 연작 그리고파

  그는 유화를 좋아한다.그려가면서 고칠 수 있기 때문이다.마지막으로 작품이 완성되기까지는 어떤 그림이 나올지 화가도, 물감도, 붓도 모른다.며느리도 모르는 얘기다.덧그리면서 완성해 나가는 것.그래서 그에게 있어 그림은 인생과 마찬가지다.

  "그림을 미리 구성하는 게 아니라 그리고 싶을 때 그립니다.마음에 깃든 것들을 자유롭게 표현해내기 때문이죠.어떤 강박관념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여유있게 그림을 그리는 것이 저는 좋습니다.이것이 힘든 막노동과도 같은 작업임에도 그림을 꾸준히 그리고 있는 이유이겠죠."

  한때 정식으로 그림공부를 해 보라는 제의도 받았지만 그는 공부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정식 코스를 밟는 순간부터 그림은 그에게 있어 '일'이 되기 때문이다.일은 제도권에 편입된다는 의미이다.그는 그림에서만큼은 영원히 자유주의자로 남고 싶다.

  "그저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다가 언젠가 커다란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연작식으로.나름대로 지금까지 쌓아왔던 저의 세계관을 큰 화폭에 담아보고 싶기도 하고."

  누가 알겠는가.그의 커다란 그림이 클림트의 그것처럼 '대작'(大作)이 될지.메디게이트에 연재한 '강진화의 그림읽기'를 모아 책으로 엮기도 하고, 조만간 전시회를 한번 더 갖고 싶기도 하다는 그.그림에 대한 욕심도 포부도 커다란 화폭과 같다.

  그의 두 번째 전시회가 벌써부터 기대된다.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커다란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많은 시간을 할애할 '강진화의 미래'를 행복하게 방해할 사람도 나타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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