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의권이란 무엇인가
시론 의권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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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5.03.18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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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호 원장(서울 최수호신경정신과의원)
의료(醫療)란 의술(醫術)로 병을 고치는 것을 말한다. 의료행위는 의료인이 행하는 의료·조산·간호 등 의료기술의 시행을 뜻하며, 병을 고치는 행위를 통칭한다.

무면허 의료행위 금지를 규정한 의료법 25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행위를 할 수 없으며, 의료인도 면허된 이외의 의료행위를 할 수 없다."

무면허 의료행위(불법 의료행위)를 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엄중한 벌칙이 마련돼 있다. 5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엄중한 벌칙을 만들어 놓은 이유는 불법 의료행위를 방지하여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생명은 이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중요하고 존엄하다. 의료행위를 면허를 받은 의료인만이 하도록 한 것은 의료가 필연적으로 인간의 생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의료행위는 인간의 생명을 보호하고 증진시킬 수 있지만 잘못된 의료행위는 인간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거나 죽음을 불러온다.

따라서 국가는 의료행위를 아무나 할 수 없도록 법적인 장치를 마련하고 있으며, 면허제도를 만들어 일정기간 체계적으로 의학을 배우고 엄격한 수련과정을 마친 후 시험을 통과한 의료인에게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는 것이다.

의권(醫權)은 "의사가 의사의 고유업무인 환자의 진료에 있어 어떠한 외부적 상황에 의해 간섭받지 않을 배타적 권리"를 말한다. 한마디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 권리"로 진료권과 같은 맥락이다.

보다 넓은 차원에서 의권은 인간답게 살 권리를 의미하는 인권(人權)과 마찬가지로 개인의 권리 보장 뿐 아니라 법적·사회적·경제적·문화적인 환경까지 포괄하는 개념이다. 따라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정상적인 의료행위가 가능하도록 의료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번 의약분업을 둘러싸고 의권이 무참히 유린당하는 사건이 터졌다.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라는 약사회의 교묘한 이데올로기 와 '한국형 의약분업' 논리에 휘둘려 진단과 치료에서부터 조제와 투약까지였던 의료행위의 범위가 어느 순간에 진단과 치료는 의사, 조제와 투약은 약사에게'로 완전히 재 규정된 것이다. 의료행위인 조제·투약이 약사의 권리로 규정됨은 물론 일반의약품에 관한한 사실상 진단·치료·조제·투약까지 약사에게 주어졌다.

의사인력이 턱없이 부족했던 과거에는 약사가 의료행위의 일부를 분담해야 했다.

그러나 선진국 제도인 의약분업을 도입한다면서 약사에게 계속 의료행위를 할 수 있도록 처방에 의하지 않은 조제와 의사의 처방마저 다른 약으로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1999년 12월 7일 국회를 통과한 개정 약사법(藥事法) 중 39조 2항은 의사의 처방전이 없이도 약사가 일반의약품을 이것저것 섞어서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39조 2항은 어처구니 없게도 국회 통과 과정에서 "박카스와 우루사를 함께 판매하는 것도 임의조제냐"는 모 국회의원의 주장에 의해 삽입된 것이다.

결국 이 조항 삽입으로 약사는 의약분업 이전과 같이 가벼운 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복지부는 약사가 가벼운 질환을 치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국민의 편의성을 높일 수 있다는 한국형 의약분업 논리를 앞세우며 이 조항의 삭제를 반대해 왔다. 약사회와 보건복지부는 섞어 파는 것은 혼합판매이지 결코 임의조제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약사회는 한 술 더 떠 혼합 판매는 약사의 고유 권한이라며 소비자 편익을 위해 일반의약품을 섞어 파는 게 무슨 문제가 있냐는 입장이다. 아울러 개정 약사법에서는 의료행위의 전 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의사의 동의 없이 약사가 다른 약으로 바꾸어 조제하도록 '대체조제'를 허용하고 있다.

대체조제를 할 수 있는 기준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인체에 약이 투여됐을 때 똑같은 영향을 미치는가(생물학적동등성시험)가 아니라 같은 시간에 분해가 잘 되는가(비교용출시험)를 평가하고 합격하면 대체조제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의권을 침해하고 의료행위가 의료인이 아닌 사람들에 의해 자행될 때 국민의 생명과 건강은 심각한 위협을 받는다. 바로 이 점이 임의조제와 대체조제를 막아야 하는 이유다.
 
의권은 이처럼 직접적인 원인 제공에 의해 침해되는 것 외에도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인 환경에 의해 침해되는 문제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첫째, 의권을 침해하는 가장 큰 환경은 원가에도 못 미치는 진료비 문제다. 정상적인 의료행위로 수익을 올릴 수 없는 길이 막히다보니 편법과 왜곡된 진료가 조장되는 것이다. 3시간 대기 3분 진료의 악순환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하루에 100명 이상의 환자를 진료해야 수익이 발생하는 낮은 진료비에 기인한다. 외국처럼 20∼30분 성심껏 환자를 진료하다가는 반드시 망할 수밖에 없다.

둘째, 의사들이 교과서와 수련과정을 통해 배운대로 정상적인 진료를 하고자 해도 보험자단체는 의료보험 청구비 삭감을 통해 의료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환자에게 가장 최선을 다해 치료를 하고 진료비를 요청해도 불법 청구로 삭감하고, 의사 사회를 싸잡아 불법 청구를 해대는 파렴치한 집단으로 매도해 왔다.

의료보험 재정 적자 상황은 이대로 가다간 3년 후를 장담하지 못할 정도로 심각한다. 한 해 약 10조 가량의 재정을 운영하면서 과연 올바른 운영을 하고 있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국민에게 거둬들인 돈을 관리비와 인건비 명목으로 얼마나 사용했는지 투명한 감사를 실시해야 한다.

외국 의료보험자단체의 관리비와 한국 보험자단체의 관리비에 대해서도 철저히 비교 검토, 국민이나 의료기관으로 돌아가야 할 혜택이 누수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의료보험을 통합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재정 적자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의료기관의 처방을 최대한 줄이려는 의도도 엿보이고 있다.

약사가 취급할 수 있는 약을 의약품 분류, 임의조제, 대체조제 등을 통해 최대한 늘림으로써 보험재정은 아끼고 국민들의 주머니 돈을 사용하도록 하겠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아울러 보험자단체의 규모와 실정에 맞는 적정인력 문제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셋째, 의료의 본질을 훼손시킬 정도로 이곳저곳에 포진해 있는 각종 규제 법규와 행정규제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재정비가 이뤄져야 한다. 의사가 환자 보는데 최대한의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해야하는 것은 당연하다.

보건의료에 관련된 각종 규제와 지침이 환자 진료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로 난무하고 있다면 분명히 정상적인 것이 아닐 뿐 아니라 의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그 숱한 규제와 제도가 의권을 침해하고 있으면서도 아이러닉하게도 의료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모든 책임을 의사나 병원이 뒤집어 써야 하는 무방비 상태다.

국가가 의사의 수입과 행위에 철저한 통제를 가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성실한 의료행위의 결과가 불가피하게 의료사고를 유발했다면 국가도 책임이 있다. 외국처럼 진료비 내에 의료분쟁에 대비한 분담금을 책정해야 하며, 의사의 책임 소재를 규명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의 경우에는 국민건강보험이 이를 보상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안전장치가 마련되지 않고서는 의사의 소신진료와 적극적인 치료동기를 유발할 수 없으며, 방어진료라는 왜곡된 의료행위를 조장하게 만들 뿐이다. 결국 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간다. 방어진료는 의사의 책임문제를 거론하기에 앞서 국가의 직무유기에 초점이 모아져야 한다.
 
국가는 의사들이 고유권한인 환자의 진료에 있어 그 어떤 외압적인 요소를 가해서도 안되며 현재 벌어지고 있는 의권침해 요소들을 제거하고 정상적인 의료행위가 이뤄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하는 의무와 책임이 있다.

의사의 의권을 보장할 것인가 약사의 불법 의료행위를 조장할 것인가의 문제는 국민들의 건강권과 생명권 확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 약사에게 일부 의료행위를 조장하도록 허용하고 있는 개정 약사법의 독소조항이 반드시 개정돼야 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민의 생명을 앞에 놓고 경제적 차원에서 싸고 편리하니까 임의조제와 대체조제를 허용해야 한다는 논리는 의권 뿐 아니라 인권을 전혀 감안하지 않은 발상이다.

제대로된 치료를 받을 권리, 자신의 생명을 안전하고 건강하게 유지할 권리가 국민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정부당국과 약사회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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