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6 06:00 (금)
시론 의료대란 원인은 의료정책 때문

시론 의료대란 원인은 의료정책 때문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5.03.18 12:09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공현 교수(인제대 보건대학원장)

요즈음 우리 사회의 신문, 방송 등 대중매체는 '의료대란'을 대서특필하면서 많은 지면과 시간을 할애하여 "의사들이 환자를 두 번씩이나 방치하면서 자기들의 이권만을 챙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의사협회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의사들을 몰아붙이는 투쟁'을 유도하고 있다. 정부는 의사들과 대화한다고 하면서도 의사협회 대표들을 상당히 구속하는 등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왜 의사들이 의료윤리에 반하면서까지 환자를 외면하는 폐업을 두 번씩이나 할 수밖에 없을까?"에 대한 진지한 토론이나 반성은 없는 것 같다. 정부 수립 후 지난 50여년 동안 묵묵히 환자를 돌보아오던 의사들이 오늘날 왜 이렇게 나오는가를 진지하게 토론하여 이해하고 그에 합당한 결론을 이끌어 내어 실천하려는 노력은 찾아보기가 어려운 것 같다. 이러한 노력이 없는 한 우리사회는 또 다른 '의료대란'이 언제고 재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다고 하겠다.

오늘 같은 '의료대란'이 일어나게 된 단초는 정부의 보건정책에서 비롯된다. 그 근거는 1970년대이래 정부가 '의료'를 모두 민간부문에 맡기는 정책을 추구해 왔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의료를 민간부문에 의존하는 정책을 오랫동안 수행해오는 과정에서 과거에 공공부문이었던 도립병원들은 지방공사로, 국립대학교 부속병원들은 특수법인체로 각각 바꾸어 민간부문으로 넘겨버렸다. 얼마 전에는 국립의료원을 민간부문으로 넘기자는 의견이 분분했고 심지어는 시, 군, 구의 보건소까지도 민간부문에 넘기든지 아니면 위탁경영하자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자원 가운데 병상의 90%이상은 민간부문이고, 군의관을 제외한 현업의사의 대부분도 민간의료기관에 종사하고 있다. 이들 의료기관의 개설과 운영은 전적으로 개설자가 맡아하고 정부를 포함하여 어느 개인이나 단체들로부터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 다만 질책과 통제만 받는다.

민간부문은 그것이 어떤 부문에 속해 있든지 간에 "나오는 것이 들어가는 것보다 크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의료부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우리나라 의료기관들은 1977년 사회보험방식의 의료보험제도가 도입된 이래 최근까지 의료서비스에 대한 보수를 원가의 70%선에서 받고 있었다는 것이 통설이다.

지난 8월13일 새로 취임한 복지부장관은 한 TV와의 정책토론회에서 의료수가가 최근의 인상조치로 80%선까지 올라갔고, 2001년에는 90%선으로, 2002년에는 100%선까지 끌어올려 민간의료기관들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게 조치할 계획이라고 공표하였다.

이렇게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행 의료수가체계 하에서 민간의료기관들은 지금까지 어떻게 생존해 왔는가? 1989년에 전국민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되기 전까지는 의료보험을 적용 받지 못하는 많은 비보험환자들을 소위 '일반수가'로 진료하여서, 그 이후에는 의료보험에서 급여하지 않는 소위 비급여서비스를 여러 가지 개발해서, 의약품과 관련된 이윤을 가지고, 또는 의료보험수가체계와 약간 다른 자동차보험 의료수가체계 등을 통하여 부족한 부분을 어렵사리 충당하면서 살아왔다고 하겠다.

그러나 현재는 이 같은 길들이 하나같이 모두 원천 봉쇄되어 부족한 부분을 충당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거기에다 앞으로 정부가 시행하겠다는 의료제도들은 한결 같이 민간의료기관의 생존을 어렵게 만들 소지가 있는 것들로 줄을 잇고 있다. 더욱이 의사를 바라보는 사회의 시각도 예전과는 달리 호의적이지 않고, 오히려 매도하는 쪽에 서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의료수가가 원가의 100%선으로 인상될 때까지 민간의료기관은 무엇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 과연 그때까지 살아 남을 수 있을까?

민간의료기관들의 장래에 대하여 의료의 주체인 의사들은 현업에 계신 분들이나 장래에 의업에 종사하실 분들이거나 간에 상당히 회의적 태도를 가지고 포기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고 있는 분들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 그런데 "의사가 없이는 의료는 제구실을 못하고, 의료가 없이는 의사도 존재할 이유를 상실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또한, 인간의 기본적 요구의 하나인 건강의 중요성은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아무리 강조하여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고 하겠다. 이런 점에서 오늘의 '의료대란'은 우리 사회가 가진 비극의 하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중지를 모아 하루 속히 이를 종식시켜서 모두가 제 자리를 다시 찾아 우리 사회를 보다 살기 좋은 사회가 되게 하여야 할 것이다.

의료를 민간부문에 전적으로 맡기는 정책, 이것이 요즈음 우리가 겪고 있는 '의료대란'의 가장 깊은 뿌리의 하나라고 보아야 한다. 의료는 인술이고, 의료서비스는 공공재(公共財)이며, 의료산업은 실패한 시장이라는 사회적 통념을 나도 반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의료가 정녕 그런 것이라면 그에 걸맞게 정책을 개발,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의료를 민간부문에 전적으로 의존하면서도 의료를 맡은 민간의료기관의 생존을 불가능하게 하려는 듯한 정책을, 더욱이 의료의 주체인 의사들의 동의 없이 펼치는 것은 그 정책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한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관계 당사자의 참여와 동의를 출발점으로 삼았던 이웃 나라들의 보건의료개혁의 경험들은 우리의 타산지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간부문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의 현행 보건의료정책은 180도 전환되어야 할 것이다. 민간의료기관의 설치와 운영, 그리고 보건의료 인력의 교육 훈련 등에 공공자금을 투입하여 부족한 자금을 충당해주든지, 만일 그러한 것들이 여의치 못하여 민간부문에 의존하려 한다면 민간의료기관이 생존은 물론이고 더욱 발전해 나갈 수 있는 길들을 열어주는 정책을 개발, 수행하여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공중보건을 한층 강화하여 건강증진과 질병예방사업을 전개하여 질병의 발생을 감소시켜 우리 사회가 짊어질 '질병의 짐'을 가볍게 하는 정책을 펼치되 입으로만 강화하는 구두선(lip services)이 아니라 말에 걸맞게 실제로 자원들을 투입하여 조직을 갖추어 체계적으로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