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월당'은 제과점이 아닙니다"
"'풍월당'은 제과점이 아닙니다"
  • 이석영 기자 dekard@kma.org
  • 승인 2005.03.21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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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반 전문매장 낸 박종호 회원

  "제가 의사 때려치우고 빵집 차린줄 알더군요."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 인근 골목에 위치한 '풍월당' 박종호 사장이 명함을 건네며 웃는다. '풍월당'. 제과점 이름이 아니다.

 자연을 벗삼아 풍류를 즐겼던 선조들을 떠올리기 위해 '청풍명월'에서 이름을 따 왔다는 이 가게는, 이미 국내 고전음악 매니아들에게 널리 알려진 명소다. '국내 최초이자 유일한 클래식음반 전문 매장'이란 수식어와 함께.

부산과 경기도에서 '잘나가던' 병원 두 곳을 운영하던 정신과 전문의가 어느날 갑자기 레코드가게 사장이 된데에는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오는 19일이면 풍월당 오픈 1주년이 된다는 박종호 사장을 만나봤다.

- 수 도 없이 들었을 질문, 왜 하필 레코드 가게입니까?

만화를 좋아하면 만화가게를 차리고 싶고, 비디오를 좋아하면 비디오가게 주인이 되고 있는거랑 똑같아요. 그냥 음악을 너무 좋아하다보니까 저만의 레코드가게를 갖고 싶었던 것이죠. 무슨 큰 뜻이 있어서는 아니고, 한 1~2년 쉬자는 생각에서, 안식년을 가져보자, 뭐 그런거에요. 의사를 완전히 그만두고 이거 하는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아니고요. 친구들하고 얘기 할 때는 "그냥 놀다보니까 하게 됐어" 이렇게 말합니다.

- 취미를 가진 사람은 많지만 그것을 직업으로 연결하는건 쉬운 일이 아닐텐데요.

용기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물론 경제적인 뒷받침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하겠지요. 예를 들어 모 재벌그룹 총수가 애완견을 무지 좋아해서 개훈련소를 만들었거든요. 세계적으로도 엄청 유명해요. 애견잡지에도 나오고. 상류층은 취미를 해도 노는 차원이 다른 것이죠. 의사가 뭐 그정도로 상류층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여유 많은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서, 눈에 좀 많이 띌 뿐인것 같네요.

- 고전음악에는 언제부터 심취하셨습니까?

어려서부터 음악 듣는 것을 좋아했어요. 국민학교 때부터 클래식 음악 좋아했지요. 혼자서 항상 음악 듣는 그런 아이였어요. 그러면서 중고등학교 다니고 의대 졸업하고…. 인턴 1년차일때는 오프가 한달에 몇 번 안되잖아요. 그 때 의국장이 오프 날짜 고르는 우선권을 저한테 먼저 줬었는데, 저는 무조건 음악회 스케줄을 딱 펴놓고, 연주회 있는 날만 쉬었어요. 그게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지요 그때는. 음악회 가는 것을 대치할 만한 좋거나 가치있는 일은 없었어요. 아직까지도 그렇고.

- 레코드 콜렉터라기 보다 콘서트 고어라고 들었는데, 연주회는 얼마나 자주 가시는지.

1년에 6~7번 정도 유럽에 나가서 오페라 보고 옵니다. 특히 매년 여름 베로나 아레나 야외극장에서 음악회를 하는데 분위기도 좋고 정말 끝내줘요. 아, 그 얘기 하니까 생각나는데, 언젠가 거기서 음악을 듣는데 매일 같이 똑같은 할머니가 제 옆자리에 앉은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좀 친해졌는데, 알고봤더니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독일 의사였지요. 그 할머니도 매년 여기서 음악듣는걸 너무 좋아한다는 거에요. 나랑 같은 사람을 만나니 어찌나 반갑던지.

- 고전음악 중에서도 오페라를 특별히 좋아하는 이유는?(참고로 박 사장은 이쪽 분야에서는 알아주는 오페라 전문가다).

이런 질문에는 멋진 대답을 해야 하는데…, 특별한 이유없이 그냥 좋아해요(웃음). 사람의 목소리로 연주한다는 점에 특히 많이 끌렸던 같아요. 무슨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어릴적부터 오페라가 좋았어요.

- 오페라 강의도 많이 나가신다고 들었습니다.

올해부터 예술의전당 아카데미에서 오페라 강의를 시작했어요. 무지크바움(MusikBaum;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클래식음악감상실), 토탈미술관 등에서도 강의하고, 대기업 임원들 모아놓고 하기도 해요. 얼마전에는 국정원에서도 했어요. 이건 신문에 나가면 안되는데!

- 클래식음악 말고 다른 장르 음악도 들으시나요? 대중음악이라든지….

전혀 안듣습니다. 클래식은 다 좋아하는데, 가요·팝송 같은건 안들어요. 시쳇말로 코드가 안맞는거죠. 술집에 가도 음악때문에 머리가 아파요. 다른 예술에는 관심 많지요. 미술도 좋아하고, 특히 건축물 보는거 되게 좋아합니다.

- 대체의학 분야 중에 음악치료라는게 있잖아요. 그런쪽에도 관심 있으신지.

아, 그건 절대 반대지요. 얼마전에 모 신문에서 지상논쟁도 벌였었어요. 음악 들으면 우울증이 좋아지요 잠도 잘 오겠지만, 병이 있으면 일단 전문의 한테 치료를 받아야지, 병원에는 안가고 음악만 들으면 되겠어요? 음악을 들어라 말아라 하는 것은 환자 주치의가 할 말이지요. 매스컴이 음악치료 같은걸 함부로 보도하면 안되요(이때 풍월당 직원 중 한명이 커피를 대접했다. 이 사람이 클래식 음반 업계에서 이름을 날리는 음반큐레이터, 최성은 실장. 박 사장이 부산에서 거액(?)을 들여 스카웃 했다는 바로 그 사람).

- 앞으로 계획은?

우리나라 최초로 '링' 전편(※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4부작을 말함. 워낙에 방대한 대작이라 4부작 모두를 공연한 나라는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이고, 가까운 일본만 해도 수년간 걸쳐 세 편만 올렸을 정도)을 무대에 올리는 겁니다. 조만간 추진위원회를 발족할 계획이고 2006년부터 2009년 사이에 공연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지요.

- 의사들이 진료실에서 들을만 한 음악 몇 곡 추천 한다면?

굉장히 많은데…. 오페라는 벨리니의 '청교도' 좋죠. 굉장히 아름답고 쉬워요. 틀어만 놓아도 오후가 아름답고 한가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 편하게 들을 수 있는 음악이라면,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이 어떨까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주로 글렌 굴드 연주만 듣는데 안드라스 쉬프 연주, 아주 좋아요. 현악으로는 슈베르트 현악 4중주 중에서 13번 '로자문데', 14번 '죽음과 소녀'를 추천합니다.

- 다시 의사로 돌아가실 생각도 있으신지.

물론이죠. 일단은 그동안 많이 놀았으니까 돈도 벌어야 하고…(웃음). 천직이 의사라는 생각은 버린 적이 없어요. 나와보니까 의사가 정말 바쁜 직업이라는걸 알겠더군요. 그래서인지 자꾸 다시 돌아가는게 망설여지네요.

박 사장의 인생 모토는 '자유와 예술'. 자유롭게 예술을 좇다보니 40대 중반이 되도록 결혼하는 것도 깜빡 잊었다고 한다. 웃는 모습이 해맑은 박사장의 소년같은 모습이 '예술은 영혼을 정화한다'는 말을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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