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쟁이·의사들과의 행복한 동행
그림쟁이·의사들과의 행복한 동행
  • 김혜은 기자 khe@kma.org
  • 승인 2006.02.20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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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사미술회장 김정일 원장

작품이 좋았다. 의사들의 그림이라지만 그림에 문외한인 사람의 눈에도 얼른 보기에 그림이 좋았다. 그림을 읽을 줄 아는 전문적인 식견은 부족하지만, 그림전을 이곳저곳 찾아다녀 본 기자의 눈에도 이번 전시회 작품들은 썩 좋았다.

전시회 작품들이 '의사들의 그림'이라는 점에서 작품을 보기 전부터 '아마추어의 그림'이라는 선입견이 작용했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의사'라는 별도의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그림은 그림을 전업으로 하는 사람들의 그림보다는 어쩐지 치열함이 떨어질 것 같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안정적인 생활'과 '예술'은 양립할 수 없다는 고리타분한 편견이 작용한 탓도 있었음은 물론이다.

김정일 한국의사미술회장(서울 강남·김정일소아과의원)과의 인터뷰를 기다리면서 둘러본 작품들은 그러한 편견과 선입견을 일시에 걷어내주기에 충분했다.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온 작가들의 그림답게 원숙함이 돋보였으며, 매끄러운 붓터치와 세련된 구도, 참신한 발상이 보는 이의 눈을 사로잡았다.

관람객들은 저마다 "의사들의 그림답지 않다"고 칭찬을 했다. 그들도 기자와 같은 편견으로 갤러리를 들어섰음이 분명하다. 이 '의사들의 그림답지 않은 그림'을 그리는 의사들은 과연 누구일까? 한국의사미술회 김정일 회장을 만나봤다(참고로 이번 전시회의 주인공인 한국의사미술회에는 지난 'People & Focus'에서도 소개됐던 작가들이 몇몇 속해있었다).

 

▲ 의사이면서 화가로서의 삶! 아내와 함께해서 더 행복합니다…

▶ 아름다운 만남, 한국의사미술회

김 회장은 한국의사미술회의 탄생을 "늘 아쉬워하고 보고싶어 하던 사람들의 만남"이라고 표현했다.

"한국의사미술회 회원들은 모두 의사미술전람회(의인미전)에서 만난 사람들입니다. 의인미전에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오면서 그림 그리는 의사들끼리의 묘한 공감을 갖고 있었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고 서로의 그림을 많이 접할 수 없어서 늘 아쉬워했었습니다. 한국의사미술회는 그런 아쉬움과 간절함을 한데 엮어 만들어 낸 조직입니다."

처음 미술회를 꾸리자고 제안한 것은 전주에 있는 최인수 원장(최인수소아과의원)이었다. '갤러리 수'를 운영하고 있기도 한 최 원장이 어느 날 김정일 회장 앞으로 한 통의 편지를 보내왔다. 의인미전에 출품했던 의사 화가들을 모아 미술회를 하나 꾸리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사실 의인미전은 대한의사협회 종합학술대회에 맞춰 열리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아쉬움이 컸거든요. 3년마다 열리는데다 전시회 자체도 3일에 그치기 때문에 그림을 좋아하고 그림 보기를 좋아하는 저희들로서는 안타까움을 안은 채 다음을 기약해야 했습니다."

사실 의인미전이 시작된 지 25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한 번도 모임을 만들지 않았다는 게 이상하기는 하다. 그간 의인미전 참가자들 사이에서 미술회 창립의 필요성을 여러차례 거론해 왔지만, 조직화란 늘 제대로 발 벗고 나서지 않으면 쉽게 이뤄지지 않는 법이다.

최인수 원장의 편지를 계기로 미술회 창립 작업이 발빠르게 시작됐다. 인천에서 '혜원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는 장혜숙 원장이 마침 인터넷 사이트를 함께 운영하고 있어, 그곳을 통해 세 사람의 의견을 시시각각 조율해 나갔다.

"제가 의인미전 운영위원을 맡고 있었던 덕분에 의인미전에 출전했던 여러 회원들의 주소를 알고 있는 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들에게 미술회 창립 계획을 밝히자, 총 32명이 참석해 지난 해 8월 드디어 한국의사미술회가 탄생한 것이죠."

 

▶ 의사미술회가 우리 밥줄 끊어놓는 건 아니죠?

미술회는 서양화를 그리는 사람들로만 구성됐다. 의인미전에는 한국화나 사진·서예 등 다양한 종류의 작품들이 출품되지만 아직까지는 미술회 발기인들의 공동 관심 분야인 서양화에 주력할 계획이다.

"미술회가 한국의사미술회인 만큼 보다 역사와 역량이 쌓이게 되면 다양한 분야의 작가들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말입니다."

미술가 단체의 반응도 좋다. 미술회 창립전 개막 때만 해도 수채화협의회장 등 미술계에서 내로라 하는 화가들이 대거 참석해 그림이 좋다며 혀를 내둘렀다.

"개인적으로 미술가 단체와 교류가 많거든요. 이들이 와서 다들 좋은 반응을 보여줬습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그림도 잘 그린다'는 칭찬에서부터 '큰일 났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화가들의 밥줄 끊어놓겠다'라는 기분좋은 농담도 던지더라구요. 하하."

   

▶ 화가의 꿈, 부부전시회 열다

1년마다 정기적으로 전시회를 여는 미술회 활동과는 별도로, 김 회장은 다음 달 아내와의 공동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 '김정일 정순희 부부전'이 그것.

"화가라면 누구나 개인전을 꿈꾸고, 개인전보다는 부부전을 희망합니다. 부부전을 연다니까 모두의 부러움을 한꺼번에 샀죠."

그의 아내인 정순희 씨는 남편보다는 늦게 그림을 시작했지만 수채화만큼은 잔뼈가 굵은 솜씨다. 이번 부부전은 결혼 37주년에 맞춰 개막을 할 만큼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다.

"두 아이들도 모두 동양화과와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애니메이션·일러스트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거든요. 온 가족이 그림에 관심을 갖고 있어 뿌듯합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미술가족'에 파묻혀 사는 즐거움이 묻어난다. 얼굴에 묻어난 작은 행복을 붓 삼아 화폭에 수놓을 화가의 꿈이 아름답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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