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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성분명 처방과 한국 의료의 미래

시론 성분명 처방과 한국 의료의 미래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6.10.30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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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응수(서울·좋은가정의학과)

지난 10월 13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회 국정감사 답변에서 "의사들의 성분명 처방에 대해 우선 공공의료기관에서부터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앞으로 성분명 처방이 의료계 전체로 확대되어 갈 예정임을 보여주고 있다. 성분명 처방은 약국의 재고약 처분을 위한 목적의 제도이고 대선 공약 실천이라는 정치적 배려를 담고 있다.

모든 의사는 최고의 치료를 하고 싶어하며 환자가 나아지는 과정에서 보람과 만족을 얻는다. 의사는 자신이 아는 최선의 효과를 가진 약을 처방할 의무가 있으며 환자는 의사에게서 그런 약을 처방 받을 권리를 갖고 있다. 성분명 처방은 최선의 효과보다는 약사가 경제적으로 이득이 가는 약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으므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또한, 최종적인 약에 대해 의사, 환자 모두 알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약효에 대하여, 부작용에 대하여 불확실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환자는 자신이 복용하는 약을 의사가 확인 못한다면 의심과 불안이 심해진다. 언론을 통한 의사에 부정적인 뉴스로 인해 병원에 대한 불신이 많은 요즘이다. 얼마 전엔 독감백신을 맞고 그 상품명을 적어달라는 환자도 있었다. 혹시 싼 백신을 맞추고 환자에게 바가지 씌우려는 것으로 오해하신 것으로 짐작된다. 상품명이 아닌 성분명으로만 처방이 나간다면 병원에서 가장 필수 요소인 의사-환자간의 신뢰관계는 손상 받는다. 약사가 그 관계에 개입하게 됨으로서 치료 효과의 저해와 상호 불신감 상승을 가져오게 된다.

중요한 문제는 법적인 책임 여부이다. 약국에서 상품명 조제 받아 약 부작용이나 약효가 떨어져 사고가 나는 경우 의사, 약사 공동에게 책임을 부과할 수 있는가? 서로 책임을 질 수 없다면 피해자 환자의 경우 보상을 못 받는가? 만일 약사가 국가가 입증하는 생동성 시험을 거친 같은 성분약으로 조제한 경우 국가의 책임을 인정할 것인가?  물론 아닐 것이다. 의료사고시 의사가 무관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패소하는 판례를 적용한다면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확인 못한 의사의 책임이 지워질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성분명 처방이 이루어진다면 의사는 제도의 희생양이 된다.

성분명 처방이나 대체조제의 최소한의 기본 전제는 생동성 실험 통과 여부이다. 얼마전 드러났듯이 생동성 실험 조작 파문은 대한 민국의 약 평가 시스템에 근본적 의문을 가지게 된다. 문제되는 약은 많으나 책임지는 기관은 적은 게 현실이다. 이런 상태에서 강행하는 것은 국민 건강을 심하게 해칠 것이다.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에서 보듯 하나하나 단계를 밟지 않고 무리수를 두면 대한민국 의료가 무너질 수 있다.

성분명 처방의 도입은 의료 전체를 고려할 때 득은 없고 실이 많은 정책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의료정책은 이해단체의 압력과 정치적 득실에 따라 결정될 수 있는 위험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2000년 의약분업 시행 당시를 거슬러 보면 더욱 명확해진다. 전문가인 의사의 의견은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고 정부와 시민단체의 일단 실시해보자는 압력에 굴복하였다. 현재 의약분업의 재평가는 제대로 실시되지 않고 있으며, 의약분업에 목소리 높이던 시민단체는 다른 이슈를 따라 떠나가 버렸다. 또한, 그 과정에서 의사는 도덕성에 심각한 타격을 받아 지금까지도 의사는 부정적 이미지의 대명사가 되고 있다. 그랬던 이유 중 하나는 국민을 효과적으로 설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홍보방법이나 추진과정에서 미리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했고 국민의 눈높이에서 말할 수 있어야 했다. 문제가 터지고 나서야 허겁지겁 해결하려는 모습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현재는 의협이 혼란스러워 시기는 더욱 안 좋다.  

보건복지부는 3개월 전만 해도 시기상조라면서 시행 못한다고 하였다가 이번에 강행하려 하고, 국회의원의 질의를 통해 성분명 처방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면 일반인들에게는 곧 시작될 정책으로 인지될 것이다.

의약분업이 도입 될 때의 시행착오는 다시는 겪지 말아야 한다. 이슈가 등장한 후 매번 실었던 신문광고는 이제 배제 되어야 한다. 어렵고 낯선 구호로 가득 차 일반인들은 거리감만 느낀다. 국민들은 아직 성분명 처방이 무엇인지 모른다. 차라리 각 병·의원에 붙이는 포스터가 효과적이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읽으셔도 이해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쉬운 내용이어야 한다. 일반 국민들에게 설문조사도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환자의 약 선택권을 누구에게 주어야 합니까?'하는 질문을 던져 홍보와 교육 효과를 동시에 얻을 수 있다.

성분명 처방은 먼 미래가 아닌 지금, 당장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아무도 대신해주지 않는다. 시간이 흘려 우리의 후배들과 자손들은 대한민국의 기형적 의료의 책임을 여러분에게 돌릴 수 있다. 과거 역사를 통해 배우지 않는다면 미래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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