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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협, 의사들의 정치

시론 의협, 의사들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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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8.3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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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은 바야흐로 정치의 계절이다. 개기일식이 일어나듯 대선과 총선이 겹친다. 그야 말로 지난 20년을 되돌아보고 결산하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니 헌법의 개정에 대한 의견까지도 표출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지난 10년 분배를 우선하는 정책과 함께 북한을 포용하는 정책으로 세상이 많이 변한 듯하다. 시류의 변화에 전혀 무관하게 보이던 의협이나 의사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이른바 3김의 정치 구호인 '민주화'에 영향을 받아 일반 회원의 발언권이 예전과 같지 않다. 모든 것이 정치화된 느낌이다. 이제는 의료계도 좋든 싫든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정치학자인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를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으로 정의한다. 의료서비스를 포함하여 모든 재화의 분배는 가치를 따지고 또 마지막에 정치적 고려(협잡이 아닌)를 해야 한다. 이런 일을 하려면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사람들을 대하는 데 보통 3가지 원리를 말한다. 즉 권위, 설득, 그리고 교환이다. 의료계가 남들과 대화를 하여 무엇인가를 이루려면 위의 3가지를 적절히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것은 권위로 밀어붙이고, 어떤 것에는 교환 혹은 설득의 원리를 적용해야 하는지 사전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사람사이의 대화에는 신뢰와 호혜가 바탕에 깔리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개인이든 단체든 마찬가지일 것이다. 의사들에게 지난 10년은 참으로 힘든 세월이었다. 왜냐하면 정부나 진보적 인사들의 마인드가 기본적으로 '제로섬'이기 때문이다. 국민 혹은 환자의 불행이 의사의 행복이라는 관념, 더 나아가 '의사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생각이 그들을 지배한 것 같다. 그러니 만나도 대화가 되지 않는다. 언젠가는 진실을 알게 되겠지만 꾸준한 설득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의사들의 위기는 경제적인 게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이다.

의사의 권위로 밀어붙여야 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과학적인 혹은 전문적 사안들이다. 성분명 처방이 해당할 것이다. 그러나 당연한 만큼 수월하지도 않다. 그래서 의사의 권위는 남들이 인정해주어야 행사가 가능하다. 그리고 인정을 받으려면 탄탄한 이론적 배경과 공중의 신뢰가 필요하다. 물론 한국은 이론대로 되는 풍토가 아니다. 그런데 이론이 없으면 말을 붙이기조차 어렵다. 즉 현실세계가 그리 만만하지 않다. 말 많고 골치 아픈 사람이나 협잡꾼에 준하는 인간들이 무수히 널려있고 의사들의 약을 올릴지 모른다. 그래도 참고 설득이나 교환을 시도해야 한다. 그래서 의사의 권위, 의료계 혹은 의협의 권위는 매우 중요하다.

아마 전문직처럼 취약하고 깨지기 쉬운 사회조직체는 없을지 모른다. 심지어 어느 학자는 중세에서 운 좋게 살아남은 직업이라고까지 평가한다. 큰 사회 속에 의료계라는 아주 단단한 작은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와 이익을 교환하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인식시켜야 한다. 신뢰를 담보하기 위해 일부 명예롭지 못한 회원들도 계도해야한다. 제도의 불비를 탓하며 그들까지 보호하는 것은 김정일을 포용하는 것보다 더 비현실적일 수 있다. 그리고 너무 성(聖)스러운 얘기만 입에 담는 의사도 경계해야 한다. 구름 위에 살고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거나, 공익을 빙자하고 사익에 눈독을 들이는 사람일 수 있다.

신뢰란 상대적이다. 나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듯이, 거꾸로 남이 우리를 미덥지 못하게 볼 수도 있다. 하나의 집단이 대표성을 갖고 외부에 행세하려면 내부의 결속이 중요하다. 마치 일부 노조처럼 대표자가 협상에 타결하고, 또 전 조합원 투표를 거치게 되면 그만큼 믿기 어려운 단체가 된다. 구성원들은 대표자의 권위를 인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체적인 분위기는 인기영합주의에 흐르기 쉽고, 그것이 외부의 신뢰를 확보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매년 상반기에 회원들의 정서는 공익단체이고, 후반기에 수가협상을 벌이면 사익에 비중을 둔다. 또 의협은 비교적 매사에 공익의 관점을 갖고 있으나, 지역과 개원의 단체로 갈수록 실질적 이익에 충실하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공익과 사익을 완전히 구분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에 어느 쪽이든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공익에 치우치면 잠시 내가 세상의 중심에 선 듯  뿌듯하지만, 돌아서면 곧바로 공허해진다. 반면 실익에 비중을 두면 의사란 전문직은 옹색해 보이고 남들을 설득하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지금의 정부처럼 매사에 공공성을 앞세우면, 의사단체의 운신 폭이 매우 좁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표-2>의 의료체제 비교에서 잘 나타난다.

 

      <표-1> 전문직 협회의 권력

 

 

의사집단

 

 

조합주의

비조합주의

타 직업집단

비조합주의

매우 강함 : 미국(A)

적당히 약함, 타 직종과 대등 : 구소련(B)

조합주의

적당히 강함 : 스웨덴(C)

매우 약함 혹은 협회가 없음 : 멕시코(D)

 

<표-2> 의료체제의 비교

의료체제

다원적

NHI

NHS

사회화

전국협회의 역할

+++

++

+

+/-, -

정부의 역할

보조적/간접적

중심적/간접적

중심적/직접적

국가의 전횡

 

의료계는 이미 오래 전에 균열될 소지를 안고 있었다. 그리고 특히 2000년 이후 정부는 의료계의 힘을 빼기 위해 노력해왔다<표-1 참조>. 즉 2000년 이전에 의료계는 (C)의 상태를 유지했다. 의협은 병협과 의학계를 아우르며 타 직업단체나 정부를 상대한 것이다. 그러나 2000년 이후 구소련보다도 못한 (D)의 상태에 빠진 듯하다. 즉 의사집단이 내적·외적으로 분할된 데 기인한다. 게다가 의사를 시기하는 세력은 이런 절호의 찬스를 결코 놓치지 않는다. 최소한 2008년 2월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것도 운이 좋으면 이라는 단서가 붙는다. 그래서 의협 회장의 직선제 혹은 간선제 여부보다는 전체 구성원이 회장의 권위를 인정하고 따르는 게 중요하다.

의사들이 정책에 합일을 이루어야, 아니면 최소한 정부나 사회를 피곤하지 않게 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의료계를 분할하고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판을 짜려 할 것이다. 게다가 전체 의사들의 권한은 줄이고, 그들이 편하게 상대할 수 있는 직업의 영역은 넓혀주려 할 것이다. 말을 바꾸면, 내부의 구심점과 외부의 지원이 분파주의에 의해 와해되거나, 혹은 전반적 회의주의나 무관심에 의해 약화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협회와 구성원들의 공식적 위치는 시간을 두고 서서히 무너지며 결국 빈 껍질만 남을 수 있다. 궁극적으로 그들의 위치는 평판이 좀 더 좋은 다른 학문분야에 의해, 혹은 원형을 아예 녹여버릴 정도가 아니라면 분해시키려는 분열주의 운동에 의해 강탈당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무조건 협회를 지원하고 회장을 따라야 한다. 그리고 협회는 모든 의사를 포괄하며 미래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도록 철저한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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