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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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7.1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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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애경(서울 강서·WE클리닉 원장)

쉼 없이 달려왔다.
걷다가 뛰기도 하고, 가다가 지치면 자전거도 타고 버스도 타고 때로는 기차도 타며 달려왔다. 어떤 날은 모진 폭우와 비바람에, 살을 애는 혹한에, 숨 막히는 더위에 지쳐 가던 길 멈추고 앉아 하늘 한번 보고 한 숨 쉴 새도 없이 또 다시 밤을 지새며 달려왔다. 달리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우리는 왜,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생각을 가끔은 했던 것도 같다.

우리는 왜 달리고 있는가.
밤을 지새며 돌 본 환자가 어이없게도 청량한 이슬로 사라졌을 때 가슴 내려앉는 허탈함과 무력감을 느꼈던 시절이 있었다. 개원 이후에는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어 밤을 새며 봐야 할 만큼 병세가 심한 환자가 드물지만 여전히 지금도 진료실 문만 열고 들어서면 여기 아프네, 저기 아프네, 이것이 낫지 않았네 하는 환자들과 또한 그때는 몰랐던 의료보험 청구 삭감에, 심심치않게 싸워주는 직원들까지 있으니 어찌 보면 갈수록 할일은 더 많아만 가는가도 싶다. 게다가 그 와중에 정성을 다한다고 시간 쪼개며 지켜본 아들 녀석이 '누가 언제 해 달라했어?'라며 야릇한 표정으로 반항의 소리를 한번이라도 할라치면, 또 다른 아픔으로 가슴은 사정없이 난도질당한다.

그렇게 여기까지 우리는 왔으며 또 여전히 가고 있다. 환자를 위해, 직원을 위해,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우리는 여전히 달리고 있다.

어느 누구하나 쉽게 사는 사람 있겠냐만은, 같은 일을 하는 여의사들에게는 환자 돌보는 스트레스에 가족 돌보랴, 집안 일하랴, 자식들 챙기랴 남들보다 하루를 몇 배나 더 쪼개 사는 게 아닐까 싶다. 그래도 어느 하나 잘하는 것 없어 늘 부족한 듯싶은 마음에 편하게 쉴 시간도 없으니, 하루·이틀·한 달·두 달…몇 해를 지내다보면 켜켜이 쌓인 피로가 뽀얀 먼지가 수북이 쌓인 장롱 속 빛바랜 사진의 세월만큼이나 꽤 오래된 느낌이다. 그런 피로의 세월로 여의사들의 어깨는 늘 무겁기만 하다.

나에게는 둘도 없는 친한 동료들이 있는데, 그 중 한 후배가 며칠 후면 대한민국을 떠난다.

남편의 일로 일 년 간 병원을 맡기고 떠나게 된 그녀. 주변 일을 정리하느라 여느 때보다 분주한 그녀에게서, 약간 상기된 흥분을 나는 보았다. 한 번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살아온 주부이며, 엄마이며 원장인 그녀에게 수십 년 만에 맞이하는 안식년은 한편으로는 복잡하고 분주하면서도 얼마나 마음이 설레는 일일까 하는 생각이 드니 퍽이나 부러워진다.

그녀의 황금 같은 안식년을 부러워하면서도 놀지만 말고 실험실이나 임상 외래를 알아봐 공부하면서 알찬 시간을 보내라며 노인네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니….

좋은 의사이며, 훌륭한 엄마이며, 사랑스런 아내이며, 하루를 소박하게 열심히 노력하며 살아왔던 그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안온한 휴식의 길로. 그리하여 더 성숙되고 발전한 모습으로, 그녀 돌아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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