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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과 신뢰

계약과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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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8.27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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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동현(한국애보트 전무이사)

글로벌 회사에 근무하다 보니 일과 관련된 계약은 작은 것이라도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법적인 검토와 승인을 받는 것이 생활화 되었다. 그럼에도 막상 고객이 계약을 어긴 경우, 고객에게 계약서대로 책임을 따져 묻는 것은 비즈니스를 망쳐도 좋다고 각오하기 전에는 매우 어려운 것이 우리 현실이다.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보험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약관에 대하여 꼼꼼히 읽어 보는 경우도 없고, 내 돈으로 서비스를 구매할 때조차 이리저리 따지는 것이 모양없어 보여 포기하고 만다. 개인적인 계약서에 다툼이 생겨 지인이 소개한 제법 규모가 있는 로펌에 의뢰를 하였다.

재미있는 일은 계약위반 건을 맡은 변호사에게 수임계약에 대해 질문하니, "많이 안 받을 테니 걱정마시고 나중에 연락하면 송금하세요"라고 대답하였다. 결국 수임료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는 채, 그냥 송금했던 기억이 있다.

지난 주의 일이다. 친구의 어머니가 관상동맥확장술을 받으셨는데 선생님께 비용을 물어보는 것이 실례인 듯 해 미리 물어보지 않고 의료보험만 믿고 퇴원하러 갔는데, 본인부담금이 생각한 것 보다 너무 많이 나왔다며 좀 알아 보아 달라는 전화가 왔다. 원무과에 비보험 내용을 문의하여 알려 주었지만, 몇 백만원이란 큰 돈을 부담해야 하는 시술에 대하여 사전에 서로 이야기 조차 하지 않는 우리 계약 문화와 관행에 대한 회의가 강하게 생겼다.

위의 예들이 마치 변호사와 의사들의 문제인 듯한 인상을 줄 수 있으나, 사실 우리 주위에 자기가 합의한 계약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고 또 서명한  후 어떤 의무와 권리가 생기는지 고민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보인다. 노조와의 단협 협상에서도 흔히 듣는 말은 "너무 자세한 사항을 넣고자 하는 것은 노조에 대한 신뢰가 없는 증거이니 그냥 선언적으로 가고 나머지는 관행대로 합시다"라는 말일 것이다. "신뢰 관계보다 계약서가 중요하다." 한국인들이 중국에서 투자에서 실패하는 큰 원

중의 하나가 계약서를 잘 못쓰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보도한 기사의 제목이다.

한미 FTA나 다른 외교 합의 내용에는 지나칠 정도로 민감하고 비판적인 우리가, 유독 자신과 관련된 계약관계에 있어서는 관대하거나 세심하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한국인은 사람을 믿으려 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친해졌다 싶으면 세세하게 따지는 일이 남자답지 못하고 상대방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대세인 듯하다. 그러나 계약을 가볍게 생각하는 우리 무의식 저 밑에 "대충 계약하고 나중에 우기면 되겠지" 하는 생각은 없었을까.

이러한 우리의 계약에 대한 안이한 태도가 점점 높아지는 개방의 파고와 글로벌 경영이라는 숙제 앞에서 어떻게 변해갈 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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