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의가춘추] 김석호3
시론 [의가춘추] 김석호3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01.06.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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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호 성애병원 기획실장


나는 최근 당국의 무자비할 만큼 차가운 청구 진료비 삭감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선, 솔직히 말해 나는 마치 부슬비가 내리는 밤 공동묘지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은 섬뜩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다.

과연 이런 상황에 의사로서의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며, 병원 경영에 관여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어야 하고, 또 그보다도 한 인간으로서의 나는 그런 악몽에서 어떻게 깨나야 한단 말인가.

만일, 내 가족이나 나 자신이 병에 걸린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면 나는 마치 설익은 의약분업의 깊은 수렁에 빠진데다 설상가상으로 거대한 험상궂은 바위덩어리 같은 삭감제도에 짓눌려 손발하나 까닥 못하고 소리도 못 지르며 침몰해 가는 자신을 보게 된다.

최근 대형병원들은 비보험으로 널리 사용해오던 좋은 의료소모품을 더 이상 쓰지 못하게 되었다고 한다. 질병 치료와 예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수한 그러면서 비싸지도 않은 의료소모품을 쓰지 못한다면 이는 마치 의료를 30~40년 뒤로 후퇴시키는 꼴이 된다.

이들 비급여 소모품은 보기에 간단하고 덤으로 쓰이는 것 같지만 의료 현장에서 보면 꼭 필요한 것들이다. 그것들은 결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하찮은 것들이 아니다. 그런데 정부는 바닥난 재정에 보태 볼까 그 알량한 보험급여 마저도 끊어버리고, 한 수를 더 떠 민원발생을 막기 위해 환자부담 마저도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정부가 준비를 잘 못해서 환자에게 좋은 것을 못줄 바에야 스스로가 찾아 받을 수 있는 좋은 의료혜택마저도 못 받게 하겠다는 심사인지. 한마디로 이해할 수 없는 야릇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전세계는 인류 행복을 위해 의료의 질 향상에 다투어 막대한 투자를 하고 기술개발과 인력양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 의료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해 가고 있다. 이런 세계적인 흐름 속에 끼어 들지는 못할 망정 눈 번이 뜨고 퇴보를 자초해서야 되겠는가.

정부는 재정압박을 이유로 진정으로 환자에 도움이 되는 진료의 질 향상보다는 오히려 일시적이고 피상적으로 환자가 좋아할 것 같은 얄팍한 일에만 정신을 팔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이 된다.

지금 의사들은 어느 선택이 양심적이고 현명한 것인지 고민을 하고 있다. 보험 규정대로 하자면 환자가 고생을 하고, 환자를 생각해서 비급여 처리를 하면 범법자로 몰리게 되는 어이없는 상황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 흔히 사용하는 폴리 카테터의 예를 보자. 보험인정기준은 1주 이상 유치해야 할 상병에 한하여 월 2개를 산정 하라고 적기하고 있다.

그러나 급박하게 전개되어 가고 있는 임상 현장에서 그런 장삿속 같은 기준을 기억하면서 카테터를 꼽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겨를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눈앞의 환자는 의사의 얼굴만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의학의 이치에도 어긋난다.

불 난 현장에는 우선 물을 뿌려야 한다. 얼마만한 물을 얼마동안 뿌리는가를 계산하면서 불을 끄라는 말인가. 의사는 오직 병을 고치기 위해 금전과는 상관없이 환자에게 유익한 순수한 의료행위를 수행할 뿐인데, 심지어 이런 상황에서까지 보험당국은 의사들에게 돈 셈을 하면서 치료를 하라는 것이다.

지혜롭고 생각이 깊은 당국자는 알뜰하기 이를 데 없는 이런 사소하나 큰 구실을 하는 소모품까지도 정성을 들여 챙겨야 할 것이다. 좋은 의료소모품의 적절한 사용은 튼튼하고 수준 높은 그러면서도 결과적으로 경제성 있는 실속 진료의 대전제가 된다.

당장에 정부에 돈이 없어 그것마저도 허리띠를 졸라매는 심정으로 눈물을 머금고 깎아내야 할 처지라면 사보험제도를 적극적으로 권장하여 국민의 건강을 지켜주기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지나가는 불평이나 부르짖음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충정에서 나오는 간절하고 절박한 충고이자 외침이고 한 배운 사람이 다른 한 배운 사람의 가슴을 치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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