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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8 19:59 (일)
"수가인상 우리손으로" ①

"수가인상 우리손으로" ①

  • 송성철 기자 songster@kma.org
  • 승인 2010.03.0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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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자원 배분 불균형…동네의원 '흔들'

의료계의 의료전달체계 개선 요구는 지난해 11월 보건복지가족부 산하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통해 공식화 되면서 추진력을 얻었다. 건정심은 본인부담률·신상대가치제도 구조 개선을 비롯해 의원 경영 개선을 위해 가입자·공급자·공익이 적극 협력키로 결의하고, 수가결정방식도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당시 수가 결정과정에서 의·병협은 의료공급자가 주도적으로 참여해 약품비를 절감하겠다는 카드를 꺼냈고, 건정심은 예상치 이상 절감했을 경우 절감액의 절반을 수가인상에 반영키로 했다.

본지는 '기획 시리즈-수가인상 우리 손으로'를 통해 약품비 절감을 둘러싼 건강보험과 의료정책 환경을 살펴보고, 동네의원을 살리기 위해 어떠한 의료환경을 만들어 가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2년 전 지방 중소도시에 개원한 A원장은 착실한 진료와 친절한 설명으로 지역사회 주민들 사이에 평판이 좋았다. 단골환자들도 제법 늘어 몇 년만 더 고생하면 초기 개원비용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희망도 생겼다. 하지만 "임대료를 두 배 올려달라"는 건물주의 부당한 요구 앞에 희망은 물거품이 됐다. 결국 2년 동안 밤낮으로 공들여 가꿔온 의원 문을 닫고, 다른 지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부분 나홀로 개원을 할 수밖에 없는 개원의들은 자기 자본 만으로 개원자금을 조달하기 힘들고 금융권에서 4∼5억원 가량의 빚을 내야 한다. 보증금 1∼2억원에 월임대료 800∼1000만원, 여기에 유지·관리비까지 감당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간호인력 월급과 의료장비 리스료에 은행이자 등을 합하면 월 1000만원 가량이 듭니다. 하지만 하루에 30∼40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나면 남는 게 없습니다."

부동산 업자나 건물주들의 횡포로부터 영세 임차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고 과도한 임대료 인상을 막기 위해 제정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도 대통령령이 정한 보증금액(서울 2억 6000만원,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2억 1000만원, 광역시 1억 6000만원, 그밖의 지역 1억 500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는 제외돼 있어 법적인 보호망에서 벗어나 있다.

A원장은 "여기에서 자리를 잡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앞으로 몇 년 더 고생할 각오를 하고 있다"고 했다.

서울에서 개원한 B원장도 막대한 초기 투자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채 막대한 인테리어 비용만 날리고 3억원 가량의 빚을 떠안아야 했다.

임대료가 저렴한 외곽지역을 타진해 봤지만 보증금 1억원에 월임대료 300∼400만원을 각오해야 한다는 소리에 다시 개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B원장은 당분간 월급을 받는 병원의사의 길을 걷기로 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건강보험심사평가원 자료 재구성

개원비용·임대료 감당 못한 채 폐업

동네의원의 경영위기는 1989년 의료보험제도 도입과 함께 시작됐다. 일반 진료비용의 50% 이하에서 수가를 정한 의료보험제도 도입으로 의료기관들은 직격탄을 맞았다. 정부는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면서 적게 내고, 적게 보험 혜택을 받는 '저부담-저급여' 구조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보험료 납부로 인한 국민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의료공급자들의 희생을 요구했다. 의료보험 진료비를 절반 수준으로 정한 것이다.

제 2의 경영 위기는 2000년 건강보험 관리운영체계 통합과 의약분업제도 도입과 함께 시작됐다. 누적 적립금까지 바닥이 나는 재정 적자 사태가 불거지자 2001년 김원길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5월 31일 '건강보험재정안정 및 의약분업 정착 종합대책'이라는 공급자 쥐어짜기 카드를 꺼내들었다.

재정안정대책의 주요 내용은 ▲진찰료·처방료 통합 ▲주사제 처방·조제료 삭제 ▲차등수가제 ▲야간가산 시간 조정 등이었다. 사실상의 수가인하를 단행한 것이다. 그해 10월 5일에는 ▲수진자 조회 ▲진료비 현지 심사·실사 강화 ▲청구대행 실태 파악 및 부조리 근절 ▲약품비 절감 등 2차 대책도 내놨다. 2002년에는 사상 처음으로 수가를 2.9% 인하했다.

학계에서는 1, 2차 건강보험재정안정 종합대책으로 의료공급자 부문에서만 연간 2조원 이상을 절감했을 것으로 추계하고 있다. 의약분업 시행 과정에서의 수가인상 비용을 대부분 회수해 간 셈이다.

건강보험 재정파탄이라는 위기상황에서 강행한 1, 2차 건강보험재정안정 종합대책의 대부분은 건강보험재정이 흑자로 전환된 이후에도 폐지되지 않은 채 현재까지 계속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문제는 대부분의 재정안정화 종합대책의 약발(?)이 의원급 의료기관에 집중적으로 발휘되고 있다는 것이다. 진찰료 이외에 별다른 비급여행위를 하기 어려운 의원급 의료기관은 재정안정화대책의 후폭풍을 고스란히 감당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것이 병원급은 제외한 채 의원급 의료기관에만 적용하고 있는 차등수가제도. 의사 1인당 1일 75명까지 진료한 경우에만 진료비를 인정하고, 75명 이상∼100명 미만은 기본진료료에서 10%를, 100명 이상∼150명 미만은 25%를, 150명 이상은 50%를 삭감하는 것이 차등수가제도다.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를 통해 "차등수가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차입경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위기상황에 놓이자 적자를 만회하고자 지출을 줄이기 위한 편법으로 시행한 조치였다"며 "의원급의 진찰료를 병원급 이상의 진찰료보다 낮게 지급하면서 여기에 더해 의사의 진찰료를 건수에 따라 10∼50%까지 감액지급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관료적 행정편의주의의 이익침해에 불과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정부도 최근 들어 불합리적인 차등수가제를 개선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언제쯤 대안을 내놓을지는 미지수다.

건강보험재정안정화 종합대책 동네의원 직격탄

재정안정화 종합대책의 집중포화가 의원급 의료기관에 집중되면서 1차의료가 주춤하고 있는 사이에 대형병원의 병상 신증설 경쟁과 고급화·첨단화 경쟁이 심화됐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전국 종합병원 이상 의료기관의 급성기 병상은 2001년 10만 8224병상에서 2007년 12만 5840병상으로 1만 7616병상이 늘어났다. 이중 절반 가량의 병상이 수도권 지역 대형병원에 의해 신증설됐다.

2009년 한 해 동안 서울·경기·인천 지역에서만 2000병상이 늘어났고, 2015년까지 또 1만 여개 병상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무분별한 병상 증설·외래 확장·고급화·첨단화 경쟁과 환자들의 대형병원 선호현상이 상승효과를 발휘하면서 환자 쏠림현상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국의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려들었고, 건강보험 진료비 역시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가 고착화된 것이다.

2001년 의원급의 진료비 점유율은 32.8%로 병원급 이상 요양기관(31.8%)이나 약국(25.7%)보다 높았다. 하지만 7년이 지난 2008년 의원급 진료비 점유율은 23.5%로 병원급 이상 요양기관(41.6%)은 물론 약국(27.3%)보다 낮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점유율 1위에서 7년이 지난 후에 꼴찌로 주저앉고 말았다.

건당 진료비도 의원은 2000년 2만 4871원에 달했으나 2009년 상반기 1만 8154원으로 무려 -27%(6717원)를 기록했다. 반면 같은 기간 약국은 117%, 병원은 81%, 종합전문요양기관은 46.5%, 종합병원은 32%가 증가했다. 의원급만 유일하게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수도권 대형병원으로의 환자쏠림 현상이 가속화되고, 동네의원이 설 자리를 잃게 되면서 의료전달체계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

건당 진료비 의원급만 감소…동네의원 설자리 어디에

2009년 상반기를 기준으로 일평균 진료건수가 50건 미만인 의원급 의료기관은 48%에 달한다. 이중 의료기관 운영이 사실상 불가능한 20건 미만도 16.6%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막대한 투자비와 운영비를 감당하지 못해 폐업한 의원은 2004년 2만 4301곳 중 1593곳(폐업률 6.6%)이었으며, 2008년 2만 6528곳 중 2061곳(폐업률 7.8%)으로 상승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당시 민주당 전현희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건보공단이 기업은행과 체결한 '메디컬네트워크론'을 이용하는 의료기관은 2005년 3895곳에서 2008년 3914곳으로, 같은 기간 총대출액은 8263억원에서 1조 4000억원으로 68%가 늘었다.

메디컬네트워크론은 요양기관이 공단에 청구하는 진료비를 담보로 시중 은행보다 조금 낮은 이율을 적용하고 있기 때문에 점차 이용률이 올라가고 있다.

늘어나는 빚을 감당하지 못해 서울지방법원에 회생 절차를 신청한 의사·한의사는 2006년 15명에서 2009년 88명으로 늘어났다.

민주당 전현희 의원은 "동네병원의 위기와 몰락은 생활밀착형 건강관리시스템의 붕괴로 이어져, 결국은 의료비가 증가하는 부메랑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전 의원은 "1차 의료기관은 실제 주치의로서 환자 밀착관리의 역할을 맡고 있는데, 1차 기관이 몰락할 경우 예방과 조기발견이 점차 어려워진다"며 "결국에는 질병을 치료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전 의원은 "앞으로 건보공단은 대출지원사업 외에도, 1차 의료기관의 역할강화와 병원, 종합병원, 상급종합병원 등 의료기관 종별로 역할부담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원-병원-종합병원-상급종합병원으로 연결되는 의료의 균형이 붕괴되고 있는 현실 속에서 서서히 무너지고 있는 동네의원을 살리기 위해서는 '1차 < 3차'로 기울어진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외부 투자를 받지 못하는 현재의 경영환경 속에서 차입 경영으로 빚부터 지고 개원할 수밖에 없는 동네의원의 부실한 기초체력으로는 현재의 불균형적인 건강보험재정과 의료자원 배분 환경 속에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의협은 1차 < 3차로 기울어진 균형점을 되찾기 위해서는 건강보험재정과 의료자원의 불균형적 배분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점을 줄기차게 강조해 왔다.

정부와 국회도 의원급 의료기관은 외래환자를, 병원급 의료기관은 입원환자를 대상으로 의료행위를 하는 곳으로 역할과 기능을 구분하도록 의료법을 개정, 올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의료법 개정의 취지는 불균형적인 의료자원 배분 구조를 바로잡자는 것이며, 그 첫 작업이 의료전달체계 개선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15일 박하정 보건의료정책실장을 단장으로 의료전달체계제도와 관련이 있는 보건의료정책과장을 비롯한 과장급 11명과 의료계·학계·유관기관 등 총 25명으로 구성된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TF'를 구성, 본격적으로 의료전달체계를 정비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복지부는 3월 중에 연구용역을 발주, 구체적인 실행안을 도출할 계획이다.

의협은 의료기관 기능 재정립 TF에 의원급 외래 분야에 대한 직·간접적인 수가인상 요구와 함께 의료전달체계 재정립 방안을 제안했다.

부실한 동네의원의 기초체력을 확보하고 의료자원 배분의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의원급 외래분야의 수가인상이 이뤄져야 한다.

이제 해결해야 할 난제는 어디에서, 어떻게 수가인상을 위한 재원을 마련할 것인가다. 의협이 약품비 절감카드를 꺼내든 것도 의료전달체계를 정비하고, 동네의원의 기초체력을 확보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다. 약품비를 절감해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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