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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보의 배치 "이건 아닌데…"

공보의 배치 "이건 아닌데…"

  • 이현식 기자 harrison@doctorsnews.co.kr
  • 승인 2010.09.03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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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촌과 거리 먼 보건단체 공중보건의 배치 '특혜'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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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건강검진센터 확장 공사 중인 서울 강서구 화곡동 한국건강관리협회 서울 서부지부. 한국건강관리협회는 이곳에 있었던 본부를 이전한 뒤, 지난 4월부터 본부가 사용했던 5, 6, 7 층을 건강검진센터로 리모델링하고 있다. 김선경기자

"일주일에 절반은 새벽 5~6시에 깨워서 나가 돈 벌어오라고 하는데….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되놈이 받는다고, 말이 협회지 공중보건의사(이하 공보의)들은 건강검진이다 뭐다 해서 혹사 당하고 있어요. 건강관리협회는 돈 버는 데 혈안이 돼 있는 단체입니다."

최근 건강관리협회에서 공보의로 근무한 적이 있는 전문의 A씨가 의협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털어놓은 얘기다.

공중보건의사 배치를 둘러싼 문제점이 다시 의료계의 담론으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다뤄질 가능성도 높다. 일각에서는 의과대학에 여학생 숫자가 늘고 의학전문대학원이 생기면서 공보의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고 말하지만, 본지 취재 결과 이건 '기우'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공보의 배치 문제의 핵심은 '공급 부족'이 아니라 '현재 불필요하게 배치하고 있는 기관을 솎아내고 공보의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것'이라는 게 결론이다.

건강관리협회에서 근무했던 A전문의의 회고를 더 들어보자. "건강관리협회·결핵협회 등 보건단체나 민간병원에서 공보의를 받는 이유는 다 똑같습니다. 수익을 올리려는 것이죠. 협회 안에 의원이 있다는 것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개원은 의사가 할 수 있는데, 협회가 건강관리의원을 열어 페이닥터(월급 받는 의사)를 바지사장처럼 앉혀 놓고 진료하는 걸 보니 기가 찼습니다." 결핵협회 산하 복십자의원도 상황은 비슷하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2008년 공보의 77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현재 근무하는 기관에 공보의 배치가 필요한가'를 묻는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74.6%가 배치가 필요하다고 응답한 반면 건강관리협회를 포함한 보건단체는 22.2%에 불과했다<그림>.

공중보건의사 77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보건단체에 공보의를 배치해야 한다는 의견은 22.2%에 불과했다. 민간병원도 55.3%로 평균인 74.5%보다 낮았다. 도서지역 같은 무의촌 오지에서 활동하는 병원선 등의 경우 100%가 공보의 배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실제 보건단체에 근무해본 공보의 대부분이 공보의를 파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권용진 서울의대 교수(의료정책실)는 "공보의를 중소도시의 민간기관이나 보건단체 등에 배치하고 있는 것은 '무의촌 해소'라는 제도의 근본적 취지에 부합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건강관리협회 관계자는 "서울·부산 등 대도시에 있는 지부에는 공보의를 배치하지 않고 있고, 전체의사 170명 가운데 공보의는 10명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그는 또 "건강관리협회가 수익사업에 전념한다는 주장은 터무니 없다"며 "검진을 통해 질병 여부를 스크리닝해서 서울대병원 등 협약병원에 의뢰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공보의 배치기관 재조정해야

2009년 2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공중보건의사 배치에 관한 보고서가 하나 나왔다. '공중보건의사 적정배치를 위한 배치기준 정립'(연구책임자 김상용)이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국민건강증진기금의 지원을 받은 것인데, 언론을 비롯해 외부에는 공개되지 않았다.

본지가 입수해 살펴본 결과 이 보고서의 주된 목적은 공보의 인력이 감소할 가능성에 대비해 우선적으로 반드시 배치해야 하는 기관이 어디인지 분류할 기준을 마련한 것으로 복지부의 공식 견해는 아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공보의 배치 현황과 문제점에 대해 매우 현실적이면서 합리적인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다.

이 보고서는 보건의료취약지역 지수를 산정해 의과 공보의 중 반드시 필요한 인력을 1110명으로 산정하고 있다<표1>.

공중보건의사가 반드시 배치돼야 할 기관에 필요한 인력은 1110명으로 나타났다. 보건단체나 민간병원은 제외됐다.   

2008년 기준 의과 공보의는 3219명에 달한다<표2>.

2008년 현재 의과 공중보건의사는 3219명에 달한다. 민간병원에 511명, 보건단체에 53명이 배치돼 있다.  

공보의가 부족하다는 일반적인 우려와 달리 꼭 필요한 공보의를 배치하고도 2000명 가량이 남는 셈이다.

물론 공보의 필수배치 인원 1110명은 공보의가 꼭 필요한 기관을 추린 것이기 때문에 나머지 배치기관이 필요 없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 보고서는 앞으로 공보의 숫자가 연차적으로 감소한다는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단계적으로 공보의 배치에서 제외하는 계획안을 담고 있다. 공보의를 배치하지 않아도 되는 기관부터 연도별로 제외하고 있기 때문에 공보의 적정 배치 문제를 살펴보는 데는 더없이 중요한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공보의 안 부족하다" 필수인력 1100명 < 현재인원 3200명

보고서는 현재 공보의를 받고 있는 기관 중 가장 먼저 제외해야 할 곳으로 건강관리협회를 비롯한 보건단체와 민간병원 등을 꼽고 있다<표3>.

앞으로 공중보건의사 수가 줄어든다는 가정하에 연도별로 배치를 감축 또는 제외할 기관을 선정한 계획안. 2012년 가장 먼저 공보의 배치에서 제외할 기관으로 보건단체 53명 전원과 민간병원 중 주위에 이용할 수 있는 의료기관이 많은 곳(민간병원 군집5) 등을 꼽고 있다.

공중보건의사가 배치돼 있는 기관의 의료취약성, 공공성, 업무의 전문성 등을 상/중/하로 분류한 표. 보건단체는 취약성면에서 '하', 공공성과 전문성면에서도 '중'으로 평가돼 배치 우선순위점수에서 기타 중앙정부 관련기관과 함께 가장 낮은 5점을 기록했다. 

민간병원 배불리는 공보의…응급실 의사 대체용

진흥원이 전문가 및 실무자 의견을 수렴한 결과 "보건단체는 대도시에 위치하고 있고 자체 인력 및 예산을 확보해 운영할 수 있기 때문에" 공보의 배치에서 제외해도 된다는 판단이 나왔다.

현재 공보의가 배치되고 있는 보건단체에는 건강관리협회를 비롯해 대한결핵협회·인구보건복지협회·한국한센복지협회 등이 있다. 모두 적절한 처우만 해주면 자체적인 의사인력 채용이 가능한 곳이다.

현재 민간병원에 배치된 공보의는 500명이 넘는다. 민간병원은 '정부지원 민간병원'과 '의료취약지병원' '응급의료지정병원'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총 230여곳에 달한다.

박광선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은 "민간병원에 배치된 공보의들의 경우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며 "민간병원에서는 별도로 의사를 고용할 필요 없기 때문에 서로 공보의를 받아가려고 줄을 선다"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 "검토 중" 답변만 되풀이

보건복지부도 공보의 배치와 관련된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공보의 적정배치 기준과 대체인력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공보의 숫자가 줄어들 경우 어떻게 제도를 유지할 것인가에 매달려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학전문대학원으로 전환했던 대학 상당수가 의과대학으로 복귀할 예정이기 때문에 공보의 수급 차질 문제는 어느 정도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며 "아직 교육과학기술부에 학제운영계획안을 제출하지 않은 대학들이 있기 때문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보건산업진흥원의 보고서에 대해서는 "이는 연구용역 차원에서 진행될 것일 뿐 정부 입장은 아니다"며 "앞으로 대응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방안이 언제 나오는지, 건강관리협회나 민간병원 등 불필요하게 공보의가 배치되고 있는 곳을 앞으로 제외할 것인지에 대해선 명확한 답변을 하지 않았다.

제도 취지 맞게 공보의 배치 바꿔야

복지부가 계속해서 공보의를 보건단체나 민간병원 등에 '퍼주는' 자세를 유지하는 한 공보의는 계속 부족할 수밖에 없다. 공보의 수요는 넘치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신성범 의원은 8월 5일 보건의료취약지역에 공보의가 안정적으로 배치될 수 있도록 장·단기 공보의 인력수급계획을 수립하도록 의무화한 농특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공보의 인력수급계획을 정기적으로 검토·수립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러한 법개정안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공보의가 부족하다는 기존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공보의 제도 취지에 맞는 배치기관을 선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수한 의사들인 공보의들을 보다 잘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모색하는 지혜가 반드시 뒤따르길 기대해본다. 

[연혁] 공보의, 무의촌 해소가 본래 목적

공보의 제도는 군의관으로 배치하고 남는 의사인력을 도서벽지에 근무하도록 함으로써 '무의촌 해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1979년부터 시행됐다. 근거법인 '국민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은 1978년 만들어졌고 1980년 제정된 '농어촌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에 흡수됐다.

이후 1991년 공보의를 농어촌 뿐만 아니라 보건소·사회복지시설 등에 배치하기 위해 농어촌 뒤에 '등'을 붙여 '농어촌 등 보건의료를 위한 특별조치법'(이하 농특법)으로 이름을 바꿨다.

1990년대 중반 의과대학 신설 붐이 일면서 공보의 숫자가 늘었고, 2002년 농특법이 개정돼 공공병원·교정시설 등 공중보건사업의 위탁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나 단체에 공보의를 배치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 권용진(서울의대 교수)
"공중보건의사의 적정한 배치를 위해 '무의촌 해소'라는 제도의 근본적 취지를 되돌아봐야 합니다. 세계화 시대에 발맞춰 '지구촌 무의촌'에 공보의를 배치할 필요가 있습니다."

권용진 서울의대 교수(의료정책실)는 "공보의가 G20 정상회의를 유치할 만큼 높아진 우리나라의 국제적 위상과 부족한 대외원조의 틈을 메워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의사인력이 최대 3년까지 근무하면서 봉사할 수 있는 좋은 조건은 공보의 외에는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는 "의사가 모자라던 시대에 무의촌 해소를 위해 시작된 공보의 제도는 교통의 발달과 의사수의 증가로 대체로 목적을 달성했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국내적인 상황일 뿐 세계에는 아직도 수없이 많은 무의촌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현재 공보의가 해외 원조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가 운영하는 국제협력의사에 지원하는 것인데, 올해 신규 국제협력의사는 20명에 불과합니다. 민간병원에 500명, 보건단체에 50명이 넘게 공보의가 배치되어 있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적은 수입니다."

▲ 박광선(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
"필수 배치기관 이외의 공중보건의사 잉여 인력으로 '국제보건의사' 제도를 개발할 필요가 있습니다."

박광선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장은 최근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로부터 '국격에 걸맞는 국제보건 기여 체계 구축을 위한 공중보건의사 잉여인력 활용방안 연구'라는 주제로 연구용역을 수주했다.

"공보의 제도 운영 경험을 해외 의료 취약지역에 전수함으로써 일회성의 의료봉사가 아닌 지역보건의료 체계 구축에 이바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해외재난 구호 전문인력을 양성함으로써 국격에 걸맞는 체계적인 대응체계를 갖추는 것이 시급합니다."

박 회장은 국제보건의사 제도를 신설해 운용할 경우 WHO 사무총장을 역임한 고 이종욱 박사나 신영수 현 WHO 서태지역 사무처장에 이어 앞으로 의사들이 다양한 국제기구에 진출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공보의는 낮은 인건비로 병원 운영에 투입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공보의 배정을 둘러싼 각종 편법이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2008년 공보의가 배치된 225개 민간병원 가운데 실제 취약지역 병원으로 분류된 의료기관은 60곳으로 25%에 미치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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