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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없는 공단 현지확인 위법… 서귀포시 녹취록 파문

동의없는 공단 현지확인 위법… 서귀포시 녹취록 파문

  • 최승원·고신정 기자 choisw@doctorsnews.co.kr
  • 승인 2011.11.04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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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권한없는 건보공단 월권행위 '폭로'
의사 대부분 '현지확인'·'현지조사'구별못해

 
Cover Story

'현지확인'을 마치고 사실확인서 날인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 직원이 요양기관장을 협박하고 "환수금액을 삭감해주겠다"며 흥정하는 행태가 고스란히 담긴 녹취파일이 공개돼 파문이 일고 있다.

건보공단 직원이 착오청구 사실확인서에 서명을 하지 않으면 조사기간을 자의적으로 연장·확대해 현지실사를 받도록 하겠다고 협박하는가 하면, 환수기간과 금액을 마음대로 주무르며 흥정을 시도하는 상황이 담긴 녹취파일이 공개돼 불법성 여부가 도마 위에 올랐다.

건보공단 직원의 불법적인 조사행위도 문제지만 요양기관의 장에게 제대로 동의를 구하지도 않고 무차별적으로 시행된 공단의 현지확인 방식 자체도 문제다.

건보공단이 단독으로 실시하는 '현지확인'은 조사권이 있는 보건복지부의 '현지조사(행정처분)'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행위로 반드시 조사를 받는 대상자로부터 동의를 구해야 한다.

하지만 현지확인을 당한 제주도의 최소 7곳의 의원들은 현지확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고지를 받지 않은 채 현지확인을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녹취파일 공개로 건보공단의 현지확인 과정에 대한 불법여부가 이슈로 불거지자 회원들에게 현지확인에 대한 이해를 높일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대두되고 있다.

이와함께 대한의사협회가 건보공단의 주먹구구식 현지확인으로부터 회원들을 지킬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쉿! 의협에는 얘기하면 안돼"

제주도에 개원한 A의원장은 전국의사총연합을 통해 건보공단 직원의 현지확인 과정에서 사실확인서 날인여부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며 나눴던 대화 전체를 녹음한 음성파일을 10월 27일 언론에 공개했다.

녹취파일을 풀어보면 일선 요양기관을 대상으로 한 건보공단 현지확인 업무가 얼마나 주먹구구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가늠해 볼 만하다.

당시 정황은 이렇다. 만성질환관리료를 부당청구한 혐의로 건보공단 현지확인을 받은 A원장. A원장이 억울함을 호소하며 확인서 날인을 거부하자, 건보공단 직원은 "인정 못한다는 것이냐.

그러면 공단에서 알아서 할 것이다. 법대로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인정한다. 앞으로 안하겠다'고 하면 해드릴 수 있는 부분은 해드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날인을 거부할 경우 현지조사를 받도록 하겠다"는 엄포와 확인서에 날인한다면 부당금액을 줄여주겠다는 회유책을 번갈아 내놓았다.

건보공단 직원은 먼저 "(날인을) 거부 했을 때는 문제를 만든다. 조사(기간)연장을 해서 전체적인 서류 조사를 할 것이다. 만성질환관리료 착오청구만 가지고는 보건복지부가 (현지조사에) 나설 수 없다. 그러면 더 조사해 (다른 혐의를 잡아) 복지부가 나설 수 있도록 할 것이다"고 말했다.

그래도 A원장이 날인을 주저하자 이번에는 "환수금액을 깎아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는 대화 초반에는 자료확인 결과 환수대상이 된 부분이 2008년에서 2010년까지 3년치라고 설명했지만, 몇차례 흥정을 시도하면서 제멋대로 환수대상을 2년치, 최종적으로는 1년치까지 줄였다.

최종적으로 확인서에 날인을 받는데 성공한 건보공단 직원은 A원장에게 "의협에 가서 얘기하면 안 된다. (깎아달라고) 얘기하니까 공단이 깎아주더라 이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 원장님과 담합이 되버리니까…"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건보공단 직원 개인이 조사기간을 제멋대로 늘리거나 보건복지부 현지조사를 받게 하겠다고 협박하는 등의 문제는 법적 대응이 필요할 뿐더러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지조사권이 없는 건보공단이 마치 현지조사하듯 현지확인에 나서는 행위 자체를 문제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공단의 '현지확인' 자체가 문제

건보공단의 '현지확인'은 복지부가 하는 '현지조사'와는 전혀 다른 행위다. 현지조사는 국민건강보험법에 근거한 '행정행위'지만 '현지확인'은 건보공단이 조사자의 동의를 얻어 조사하는 임의적인 요청이다. 현지확인이나 현지조사와 관련된 건보법 규정을 보면 현지확인의 한계가 명확히 보인다<표참조>.

 <표> 건보공단 '현지확인'과 보건복지부 '현지조사' 비교

  현지확인 현지조사
주체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보건복지부 장관
법적 성격 건보법에 기댄 임의적 요청 건보법에 근거한 행정조치
관련 문서 조사관련 협조공문 등 자료제출 명령서
제출거부에 따른 처벌조항 없음 1000만원이하 벌금(건보법 제95조)

건보법 제84조 2항은 "복지부 장관은 요양기관에 요양·약제의 지급 등 보험급여에 관해 보고 또는 서류제출을 명하거나 소속 공무원으로 하여금 관계인에게 질문을 하게 하거나 관계서류를 검사하게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만약 복지부 장관의 자료제출 명령을 거부하면 '서류제출을 하지 아니한 자, 허위로 보고하거나 허위의 서류를 제출한 자 및 검사 또는 질문을 거부·방해 또는 기피한 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건보법 제95조)'는 규정에 따라 처벌받는다.

현지조사의 경우 자료제출을 명령하는 규정과 자료제출을 거부할 경우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명시돼 있다.

반면 현지확인은 언뜻 현지조사와 비슷해 보이지만 서류제출 명령권한도 건보법에 명시돼 있지 않으며 당연히 처벌규정도 없다.

건보공단 역시 현지확인의 이같은 한계를 잘 알고 있다. 공단은 녹취파일 파문이 커지자 10월 28일 "조사권이 없는 공단의 현지확인은 요양기관의 자발적인 협조를 전제로 진행된다"고 해명에 나섰다.

그런데 건보공단의 해명을 듣다보면 의문이 생긴다. 세상에 어느 누가 자신의 사업 경영자료를 시시콜콜 들여다보고 심지어 가져가겠다는 요구를 자발적으로 들어주겠는가?

"거부할 수 있는지 전혀 몰랐다. 당했다!" 한목소리

건보공단의 무리한 행위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한마디로 조사권을 휘두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조사권한도 조사를 강제한 처벌 근거도 없다보니 현지조사 의뢰를 들먹거리며 의사들을 압박하고 있는 거다. 물론 조사권한이 없기 때문에 현지확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피조사자에게 고지하고 협조를 구해야 하는 절차도 가볍게 건너 뛴다.

현재 녹취파일을 공개한 A원장을 포함해 최근 한달 안에 서귀포시 공단 지사로부터 현지확인을 당한 것으로 확인된 의사는 최소 7명. 모두 조사를 나온 건보공단 직원으로부터 '조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통보를 전혀 받지 못했다. 이들은 "만일 조사를 받지 않아도 됐다면 조사를 거부했을 것"이라고 한 목소리를 냈다.

서귀포에서 내과를 개원하고 있는 B원장은 "조사를 받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며 "공단으로부터 당했다"고 울분을 토했다. 현지확인을 받은 C원장 역시 "조사자로부터 현지확인을 안받아도 된다는 말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며 "만일 조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면 누가 조사를 받겠느냐"고 반문했다.

D원장도 "공단이 현지확인을 나왔다길래 조사권한이 있나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아무 얘기도 안해줘 권한이 있는 줄 알았다"며 "최소한의 설명도 없이 이런 식으로 조사를 해도 되냐"고 분개했다. 특히 D원장과 또 다른 E원장은 건보공단의 조사결과 문제가 없어 환수조치를 당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건보공단이 별다른 혐의없이 마치 전수조사하듯 서귀포시에 있는 내과 의원과 일반 의원들을 휩쓸고 다녔다는 얘기가 된다.

조사를 받은 F원장 역시 "서귀포시 뿐 아니라 다른 곳까지 대략 20명이 넘는 의사들이 현지확인을 받았다고 들었다"고 밝혀 공단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불법적인 조사가 서귀포시 뿐 아니라 제주도 다른 지역에서도 광범위하게 이뤄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녹취파일 파문이 일파만파로 커지자 복지부도 10월 28일 "공단이 만일 의사들에게 동의를 구하지 않고 현지확인을 했다면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럼 의사들은 현지확인과 관련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런 일 하라고 의협 있는 것"

<의협신문>이 110명의 의사에게 '동의하지 않으면 현지확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물었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4명(40.9%)은 현지확인이란 공단의 조사행위 자체를 '전혀 알고 있지 못하다'고 대답했다.

10명 중 5명(50.9%)은 '현지확인이란 말은 들어봤으나 동의하지 않으면 조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밝혔다. '동의하지 않으면 현지확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응답한 경우는 10명 가운데 1명(8.2%)도 채 안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회원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우선 건보공단이 벌이는 현지확인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회원 개개인이 현지확인을 거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이번 서귀포 A원장의 사건에서도 보듯 건보공단 직원은 현지확인을 거부하면 현지조사에 나설 것이라고 의사들을 압박해 임의적인 협조사안에 불과한 현지확인을 어쩔 수 없이 받게 할 여지가 크다.

만일 건보공단 직원이 '현지확인을 한다며 협조를 요청했을 때 어떻게 하겠는지'도 물었다.

응답자 10명 가운데 4명(41.8%)이 '거절하겠다'고 대답했지만 그보다 많은 5명(48.2%)은 '보복이 두려워 어쩔 수 없이 협조할 것 같다'고 응답했다. 협조하겠다는 대답은 8.2%에 그쳤다.

사실상 아무런 법적 강제력이 없는 현지확인이 바로 이 '뒷끝'때문에 나름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래서 의협이나 지역의사회, 의사단체들의 역할과 회원들의 연대가 필요하다. 의협이나 지역의사회 차원에서 회원들이 연대해 건보공단의 현지확인을 함께 거부하면 건보공단의 현지확인은 강제력이 없기 때문에 힘을 잃을 수밖에 없다.

물론 회원들의 강한 연대를 바탕으로 단체행동을 이끌어 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의료계의 한 관계자는 "바로 그런 일을 하라고 있는 것이 의협과 지역의사회"라며 의협의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의협은 회원들을 연대시켜 단체행동을 이끌어 내는 동시에 현지확인 거부로 현지조사를 받게 되는 '표적 현지조사'를 막기 위한 방안도 마련해야 한다.

건보공단은 '특별한 사유없이 2회 이상 자료제출을 거부해 부당사실관계를 확인하지 못한 요양기관'을 복지부에 조사의뢰한다는 자체 지침을 갖고 있다. 물론 공단의 조사의뢰를 받았다고 복지부가 현지조사를 무조건 나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표적 현지조사가 이뤄질 개연성이 있기 때문에 표적 현지조사가 이뤄지는지 감시하고 표적 현지조사로 의심이 되는 경우 의협 차원의 법적 대응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의협은 현지조사나 현지확인을 당할 경우 의협 보험국(☎ 02-794-2474 내선 520/ 521)로 연락해 줄 것을 당부했다.

건보공단 협조요청 정도로 진료내역 유출 법적 문제될 수도…

행정부도 아닌 건보공단의 협조요청을 받고 환자 진료내역을 건내주는 것이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의료법에 위배되는지도 따져 볼 문제다.

서울대병원은 최근 한상대 검찰총장 후보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병역면제와 관련해 허리디스크 수술 관련 진료내역을 국회로부터 요청받았지만 자료를 제출하지 않았다. 환자의 민감한 진료내역을 함부로 유출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서울의 유력한 한 대학병원도 최근 경찰과 검찰로 부터 수사와 관련해 환자의 진료내역 제공을 요청받았지만 거절했다.

이 병원의 법무 관련 담당자는 "법원으로부터 정식으로 영장을 받아 요구하지 않는 이상 아무리 공익적인 성격을 띤 업무라도 협조요청 정도로 진료내역을 유출할 수 없다는 것이 병원의 원칙"이라고 밝혔다.

공익적인 잣대로 보자면 행정부도 아닌 건보공단의 현지확인 요청 정도는 한 국가의 검찰총장을 뽑는 인사청문회나 공공안전을 책임지는 검·경의 요구에 비해 결코 무겁다고 할 수 없다.

 행정부도 아닌 기관의 현지확인 요청정도로 환자의 진료내역을 건네는 것이 최근 강화된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의료법을 위반할 여지가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가 필요한 대목이다.

이경권 변호사(법무법인 대세)는 "환자가 진료내역 공개를 법적으로 문제삼을 경우 진료내역을 제공한 의사가 자칫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며 "면밀한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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