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8 17:53 (일)
청진기 의료사고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청진기 의료사고는 우리 가까이에 있다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3.12.09 11:36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석 재(공보의 경기도립 파주병원 응급의학과 )

▲ 최석 재(공보의 경기도립 파주병원 응급의학과 )

날씨가 갑자기 추워진 어느 날, 80대 할머니 한 분이 보름가량 지속된 오한과 발열을 주소로 응급실을 방문했다. 열은 39도, 혈압은 낮지 않았고 기침이 있었다는 것 외에 복통 등 특별한 다른 증상이 없었다.

기록을 살펴보니 3일전 응급실을 방문해 피검사를 했고 염증수치가 약간 증가한 것 외에 다른 검사상 이상 없었으며 열도 없어 단순 감기 추정 하에 귀가했고 증상이 계속돼 내원했다 한다.

감기증상이 있었다기에 폐렴인가 싶어 청진을 확인했는데 왼쪽 호흡음이 감소해 있었다. 복부진찰은 압통부위 없었고 양측 신장부위도 두드려봤지만 통증은 없었다.

수액 및 피검사·소변검사를 시행하기로 하고 먼저 흉부 X-ray 를 확인해보니 왼쪽에 저명한 폐렴소견은 없으나 심비대가 있어 보였다. 고혈압 약을 복용중인 고령의 환자에게 흔히 보이는 소견이라 그러려니 하면서 마침 1년 전 본원에서 찍었던 X-ray와 비교해보니 그 때엔 심비대가 없는 것 아닌가? 할머니 다리가 부은 것도 없고 숨차단 얘기도 없는데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심초음파를 확인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으나 마침 심초음파가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보호자에게 만에 하나 심장에 문제가 있으면 대학병원으로 전원해야 할 수도 있다는 설명을 해두었다.

잠시 후 나온 피검사는 3일 전과 같이 염증수치 상승 외 심장효소수치 등 다른 이상 소견이 보이지 않았고 보호자는 가능하면 전원 가기를 원치 않는다고 해 다음날 심초음파를 확인하기로 하고 현재 가능한 복부초음파만 확인하고 입원하기로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영상의학과에 심낭삼출액이 있지는 않은지 함께 확인을 부탁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 아니나 다를까 영상의학과에서 연락이 왔다. 상당한 양이라 할 수 있는 13mm 두께의 심낭삼출액이 확인돼 보호자에게 설명하고 입원 취소 및 급성 심낭염 추정 소견으로 대학병원으로 급히 전원하기로 했다.

응급실을 내원하는 흔한 증상 중 하나인 열은 진단이 쉽지 않은 경우가 많은데 특히 오래 지속되는 열의 원인은 참 여러 가지이다.

처음에 할머니를 진료하면서 폐렴·신우신염·복강 내 감염·말라리아·쯔쯔가무시·한타바이러스·류마티즘 열·단순 감기 등을 고려하고 진찰했지만 흉통도 없고 혈압도 정상, 심근효소 수치도 정상인 상황에서 심낭염은 솔직히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 년 전 수련 받았던 인천의 한 대학병원에서 응급의학과 전공의로 하루 200명가량의 환자를 보면서 몇 번의 뼈아픈 실책을 했던 경험을 고백하고 이야기를 진행해야 할 것 같다.

구토·열감으로 왔던 젊은 여자환자가 과거력으로 갑상선항진증 약을 먹고 있었고 며칠간 약을 먹지 않았다는 얘기를 먼저 확인하지 못하고 두 시간 여 동안 수액치료와 피검사만 기다리고 있다가 갑상샘 중독발작으로 환자를 잃을 뻔 했던 경험, 복통과 복부팽만으로 내원한 할아버지 환자를 증상조절하고 수액 치료만 하고 두 시간여 지켜보다 장간막 경색에 의한 패혈증으로 심장마비까지 발생해 결국 할아버지의 생명을 놓쳤던 가슴 아픈 기억도 있다.

이번 급성 심낭염 환자도 가슴사진을 확인하면서 과거 사진과 비교하지 않았거나 보호자가 전원을 원치 않는다는 핑계로 심초음파는 내일 확인하자 하고 입원 진행시켰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결과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전공의 3년차 때 1~2년차 후배들에게 항상 하던 이야기가 있다. 환자 퇴원 결정하기 전에 이 환자가 1% 이하의 위험성을 갖고 퇴원하는 건지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의료사고 위험성이 1%라고만 해도 하루 200명 환자를 보면 그 중 두 명은 사고가 나는 것이니 아찔하지 않겠는가.

최근 들어 정부차원에서 원격의료를 진행하기 위해 법을 손질 중에 있다고 들었다. 눈앞에서 직접 보고, 만져보고, 눌러보고, 들어보는데도 이렇게 어렵고 위험한 게 사람 생명에 다가서는 일인데 이걸 원격으로 한다니….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자신의 양심에 되물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정말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서 진행하는 것, 맞는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