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실손의료보험 심사위탁 "경악 금치 못해"
"진료축소·방어진료로 국민 건강권 피해 우려"
민간보험사의 실손의료보험을 공공기관인 심평원이 심사하는 방안에 대해 의료계가 우려하고 있다. 심평원이 건강보험을 관리하는 방식으로 적정성 평가 잣대로 민간보험을 심사할 경우 국민이 충분한 진료와 보상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말 자동차보험과 같이 실손의료보험을 전문심사기관에 심사위탁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어 심평원은 4월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서면답변을 통해 '실손의료보험 심사위탁시 민간의료보험 진료비의 적정성 모니터링이 가능하고, 적정성 여부 평가를 통해 과잉진료 및 부당청구를 예방할 수 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금융위와 심평원의 기대와 달리 실손의료보험 심사위탁은 아무런 긍정적 효과도 낳지 못하며 오히려 심각한 부작용만 양산할 것이라는 의료계 지적이다. 실손의료보험은 현행 건강보험제도에서 제한적으로 제공되는 보편적 의료서비스의 범위를 초과하는 비급여 진료비를 보장받기 위해 가입하는 상품으로서 국민의 건강권·재산권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대한의사협회(회장 추무진)는 16일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위탁심사가 이뤄질 경우 심평원의 예측처럼 적정성 평가를 통한 적정 진료 가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건강보험에 적용되는 제한적이고 경직된 심사기준을 인용함으로써 의료기관의 진료축소와 방어진료라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며 "결국 충분한 진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국민의 권리를 침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의협은 "실손의료보험 심사위탁은 보험료 부담 감소와 같은 긍정적 효과는 극히 미비하고 오히려 환자의 재산권·건강권을 침해하는 사회적 문제만 발생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심평원 위탁심사는 공공기관이 민간보험사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순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했다.국민건강보험을 전문적으로 심사하기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인 심평원이 보험 상품 판매로 수익을 창출하는 민간보험 상품을 심사한다는 것은 결국 심평원의 적정성 심사가 민간보험사의 이익으로 직결된다는 것이다.
의협은 "금융위가 모델로 삼고 있는 심평원의 자동차보험 심사위탁도 애초 의료계에서 우려한 부작용이 여실히 드러남에 따라 재논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답습한다고 하니 경악을 금치 못할 지경"이라고 비판했다.
심평원의 태도 변화에도 의구심을 나타냈다. 심평원은 4월 3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금융위와 위탁심사 관련 협의를 진행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가, 열흘 뒤인 14일에는 '객관적 심사가 가능하다'며 사실상 위탁심사를 맡을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의협은 "금융위가 보험사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관련 단체들의 의견도 제대로 듣지 않고 제도추진에 속도를 내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든다"면서 "지금이라도 실손의료보험 심사위탁 제도 추진 계획을 폐지하고 국민의 편에 서서 진정한 실손의료보험 안정화 방안을 다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또 "국민의 재산과 건강권을 침해하고 의료 왜곡을 일으키는 일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통해 심평원의 실손보험 심사 방안에 대해 적극 대응할 것"이라며 "금융위는 관련 전문가 단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빠른 시일 내에 논의의 장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