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청구대행, 가입거부 자료 악용될 것"

"실손보험 청구대행, 가입거부 자료 악용될 것"

  • 고수진 기자 sj9270@doctorsnews.co.kr
  • 승인 2016.03.12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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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관, 환자-보험사 사이에서 분쟁 소지 높아
과도한 행정부담에 환자 진료에도 '영향'

금융위원회가 기존에 환자들이 해오던 실손의료보험 청구 업무를 의료기관에 대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히면서, 의료계의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앞서 금융위원회 올해 초 업무보고를 통해 '실손보험금 청구절차 간소화'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고 밝힌바 있다.

그동안 실손보험 가입자는 진료를 받고 의료기관에 비용을 지불한 후에 구비서류를 해당 보험회사에 청구하는 방식이다. 금융위는 이번 시범사업을 통해 가입자가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에 환자가 아니라 의료기관에서 직접 가입된 보험회사에 진료기록 등을 보내 보험금을 청구하는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

금융위는 실손보험금 청구를 의료기관에서 대행하면, 복잡한 청구서류가 사라지고, 실시간 간편한 전송이 이뤄지면서 가입자의 편의성을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환자 진료기록 유출...보험가입 '거절'에 악용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의료기관이 청구를 대행할 경우 환자의 민감한 진료기록이 유출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보험사는 의료기관으로부터 전자 방식으로 진료기록 등을 전달 받게 된다. 그러다보면 데이터는 쌓이게 되고, 보험금 지급이나 계약·갱신에 가입자에게 불리한 자료로 악용될 가능성도 매우 크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정의당 정진후 국회의원과 시민단체가 공동으로 조사한 실태조사에서도 실손보험 가입 거부 사태가 여실히 드러났다.

▲ 노후실손의료보험 가입가능 여부 실태조사 결과
실태조사를 보면, 노인 106명 중 75명(70.7%)는 노후실손의료보험 가입을 거부 당했다. 보험사로부터 가입이 거부된 75명의 노인은 고혈압(43명)·당뇨병(27명)·암질환(7명) 등이 있다는 이유(중복집계)에서 였다.

이와 달리 31명은 과거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이 없고, 과거 입원병력이나 현재 약물복용력이 없다는 이유로 가입이 가능했다. 질병이 없고 건강한 노인만 선별해서 가입시킨 결과인 것이다.

이런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됐듯이, 보험사에 쌓인 진료기록 데이터를 통해, 손해 보는 환자는 실손보험 가입이 거절되거나 갱신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재연 대한개원의협의회 보험이사는 "청구대행은 국민에게 직접적인 폐해를 끼칠 것"이라며 "환자정보를 손쉽게 축적한 보험회사는 환자의 병력 등을 분석해 질병에 걸리기 쉬운 가입자의 보험금을 올리거나 가입을 거절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사본 제출은 정보 유출 막기 위한 것"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또한 실손보험 청구대행은 국민의 재산권 및 민감한 개인진료정보 침해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정책연구소는 '실손의료보험에 대한 쟁점과 의료계 대응방안'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의료기록을 문서 형태(사본)로 보험사에 제출하게 한 것은 민감한 개인건강정보의 유출을 막고자 한 것"이라며 "이를 전자의무기록 상태로 보험사에 직접 전송하게 되면 개인정보 유출 가능성을 높이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보험사의 행정업무 떠넘기기와 의료기관의 업무 방해 및 재산권 침해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책연구소는 "실손보험은 의료기관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보험사와 가입자 개인 간에 발생하는 계약 관계"라며 "그럼에도 제3자인 의료기관에게 실손보험 진료비 청구를 대행하도록 하는 것은 보험사가 마땅히 부담해야 하는 행정 업무를 의료기관에 전가하는 행태로, 의료기관에게 부당한 의무를 강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의원 등 소규모 의료기관의 경우 별도의 행정인력 없이 의사 또는 간호사가 청구 등 행정업무를 대행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에도 다양한 진료비 청구 관련 절차로 과도한 행정업무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책연구소는 "만약 실손보험 청구업무까지 의료기관이 대행하게 되면,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행정부담이 발생하게 된다"며 "의료기관의 본연의 업무인 환자 진료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고 꼬집었다.

또 보험사의 약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진료 청구액을 보험사가 의료기관에 지급하지 않을 경우에는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청구를 다시 해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렇게 되면 의료기관의 행정비용이 부담될 것이고, 의료기관에 대한 업무 방해 및 재산권 침해 여지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손보험에 대한 분쟁 발생도 많아지면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 위탁을 하기 위한 시도라는 지적도 나왔다.

정책연구소는 "의료기관은 청구 대행만 할 뿐이지만, 보험사와 환자 사이에 있으면서 고객 민원은 더 늘어날 것"이라며 "청구대행을 하면서 의료기관과 보험사의 분쟁이 많아지고, 이로인한 소송의 가능성과 법률적인 비용도 증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결국 비급여 의료비의 심사 당위성을 만들게 될 것이며, 심평원으로 심사 위탁을 확고히 하기 위한 선행적인 시도로 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실손보험 청구 대행, 의료기관 협조할 의무 없어"

실손보험 진료비 청구 대행에 대해서 의료기관은 협조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정책연구소는 "의료기관은 가입자의 실손보험 유무와 상관 없이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위해 제공하는 의료서비스"라며 "당사자가 아닌 의료기관에게 실손보험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지우거나 부과하는 것은 어떤 논리로도 타당하지 못하다"고 밝혔다.

의료기관에게 실손보험 청구나 심사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지우기 위해서는 사적 자치의 원리에 의해 보험자와 의료기관간의 합의가 있어야 하고, 그에 상응하는 경제적인 보상도 전제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 "고유 업무인 공공기능을 수행하는 심평원이 상업적으로 수익성을 추구하는 민간 보험사의 이익을 위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조직의 존재 이유와 목적에 부합하지 않다"며 "가입자의 권리 제고를 위해서라면, 민간보험사 관리 제도를 마련하고 이를 시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제재할 방안 마련을 촉구할 필요가 있다" 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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