돔페리돈 논란으로 DUR 의무화 여론조성 시도
DUR 통한 대체조제 사후통보...심평원 "가능"
지난해 말 불거진 돔페리돈 논란은 임신부 금기 약의 '허가외 사용' 문제가 의사의 처방권 침해 문제로 불이 붙은 경우였다.
논란은 더민주당 전혜숙 의원이 식약처 국감에서 일부 의사가 임신부 금기약인 돔페리돈을 모유 촉진제로 '허가 외 사용'되고 있다고 문제삼으며 불거졌다.
전 의원의 발언 이후 의료계가 돔페리돈 허가외 사용 논란을 의사의 처방권 침해 문제로 인식해 반발하면서 돔페리돈 논란은 전 의원 대 의료계 구도로 번졌다.
전 의원은 돔페리돈 사태가 이같은 논란을 빚자 이후 열린 보건복지부·식약처 종합국감에서 자신의 발언을 해명하고 나섰다.
그는 "(돔페리돈 허가외 처방을 문제삼으려 했다기 보다는) 'DUR(실시간 처방조제 지원시스템)' 완결판을 제시하려 한 것"이라며 의사의 처방권 침해에 대한 공방은 멈추고 DUR 강화안 논의에 집중하자는 의도를 설명했다.
안전한 의약품 사용을 위해 DUR 적용범위 확대 등을 이슈화하려고 돔페리돈의 허가외 사용 사례를 지적한 것인데 의도하지 않게 의사의 처방권 침해 문제로 불이 옮겨 붙었다는 해명이다.
돔페리돈 논란은 이후 수그러들었지만 의약품 안전 사용을 명분으로 한 일련의 DUR시스템 강화 요구에 대체조제 활성화란 어울리지 않는 그림이 겹쳐져 있다는 점을 의료계는 주의깊게 들여다봐야 한다.
전 의원의 돔페리돈 허가외 사용 문제 제기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개연성이 있다.
의료법 '18조의2'에 쏠린 시선
19대 국회는 2015년 12월 새누리당 김현숙 의원과 더민주당의 전신 '민주연합' 이낙연 의원이 발의한 의료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의사·약사가 의약품을 처방·조제할때 처방금기 의약품 여부와 그 밖의 보건복지부가 정한 정보를 확인하도록 하는 내용이 개정안의 핵심이다.
의사나 약사가 의약품을 처방·조제할때 처방금기 여부 등을 확인하지 않으면 최대 과태료 300만원을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의무 확인' 조항도 있었지만 심의 과정에서 의료계의 반대로 빠졌다.
과태료 부과 규정이 빠지면서 처방금기 여부 등 의약품 관련 사항을 확인해야 한다는 조항은 일단 선언적 조항으로만 국회를 통과했다.
이때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았지만 또 하나의 중요한 규정 하나가 개정된다.
바로 '18조의2 중 3항.
신설된 3항은 의사가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정보를 '보건복지부령으로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실상 보건복지부가 의사가 처방할때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정보를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법안에는 의사가 처방금기 의약품 등을 어떤 방법으로 확인해야 하는지 명시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현재 실시간으로 처방금기 의약품 등을 확인할 방법은 DUR 뿐이 없다는 점에서 사실상 의료법 18조의2는 DUR 설치·운영 의무화 조항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
정부기관 이용한 대체조제 활성화 방안
조찬휘 대한약사회장은 2015년 1월 17일 서울 성북구약사회 정기총회에 참석해 '역대급' 말실수를 했다.
대체조제와 관련해 "새정치민주연합 최동익 의원을 선두로 10명의 국회의원으로부터 (대체조제 활성화 법안) 발의를 받아 (법제화가) 9부 능선을 넘었다"고 말한 것. "물밑에서 진행 중이던 동일성분조제(성분명처방) 활성화가 9부 능선을 넘기 전 대한의사협회에 알려져 방해를 받고 있다"고도 토로했다.
조 회장의 발언에 최동익 의원이 가장 먼저 발끈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자칫 약사의 이익을 위해 약사회가 원하는 법안을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이 밀어주고 있다는 뉘앙스를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 의원의 항의를 받은 조 회장은 곧바로 자신의 발언을 수정했지만 조 회장이 최 의원실과 대체조제를 두고 상당한 의견교환이 있을 것으로 의심할만한 발언은 최 의원에게서 이미 한 차례 나온터 였다.
조 회장의 발언이 나온기 한달여 전인 2014년 12월 18일이다.
최 의원은 약사회가 주최한 약사법 제정 60주년 기념 토론회에 참석해 "대체조제 활성화를 위해 대체조제 후 의사에게 사후 통보하는 약사법 조항의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사후 통보 완화안으로 "(약사가) 식약처에 대체조제 사실을 통보하면 식약처가 의사에게 리포트해주는 정도로 약사회와 협의하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이날 발언 역시 문제가 되자 최 의원은 "약사회와 협의한 것이 아니라 이해당사자인 약사회의 의견을 청취한 것"이라고 말을 바꿨지만 '청취를 한 것인지', '협의를 한 것인지'에 대한 논란은 이어졌다. 통보기관 역시 '심평원'을 '식약처'로 잘못 말했다고 수정했다.
안전성 논란이 어떻게 대체조제 활성화로 전환될까?
대체조제 활성화 찬성측이 대체조제 활성화 방안으로 정부 기관을 이용하는 방안을 제시한 것은 조 회장의 발언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광민 대한약사회 전 정책이사는 2010년 <의약뉴스>와의 인터뷰에서 "DUR이 가동되면 약사가 의사에게 대체조제를 사후통보할 필요없이 심평원이 약국의 대체조제 사실을 바로 전송하면 된다"고 말했다. 최소 6년 전에 정부기관 활용안을 생각했다는 얘기다.
대체조제 활성화 찬성자들이 정부기관을 사후통보 도구로 이용하려는 이유는 약사법 제27조 4항 탓이다.
4항은 '생물학적 동등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품목으로 대체조제하는 경우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 등에게 1일, 부득이한 경우 3일 이내에 사후통보'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하지만 조제 현장에서 약사가 처방전을 발행한 의사에게 직접 연락해 대체조제 사실을 사후통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 약국에 그 약이 없다'거나 '약값이 더 저렴하다'는 치료 외적인 부분이 대체조제의 이유일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런 이유로 의사와 환자를 설득하기가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평원에 따르면 한국의 대체조제율은 2015년 기준 0.12%에 불과했다.
그래서 고안된 방법이 '정부기관'을 활용하는 안이다. 정부기관이 약사로부터 대체조제 사실을 통보받아 약사 대신 의사에게 알려주도록 하자는 발상이다.
최 의원은 2015년 6월 '대체조제 사실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통보하고 심평원이 이를 의사에게 전달'하도록 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발의했으나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제대로 된 논의도 못하고 사라졌다.
20대 국회가 출범하면서 정부 기관을 활용한 대체조제 활성화 추진안은 더욱 세련된 방식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인다.
약사법 개정안에 대체조제 활성화 항목을 욱여넣는 것보다 국민건강 개선이란 명분을 갖고 제반여건을 조성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의심된다.
대체조제 활성화 칼자루 쥔 보건복지부
전략은 이렇다.
첫 단계는 우선 DUR로 대체조제 사실을 통보할 수 있도록 제반여건을 마련하고 그 다음 DUR을 의사가 반드시 확인하도록 하는 의무화 규정을 만드는 것이다. 첫 단계는 이미 의료법 18조의2 중 3 신설로 19대 국회에서 완성됐다.
두번째 단계는 의사로 하여금 복지부가 정한 정보를 반드시 확인토록 의무화하는 거다. 의무화의 핵심은 처벌규정이다. 지난 19대 국회에서 의료법 18조2를 신설해 DUR 설치와 운영에 대한 법적기반을 만든 만큼 20대 국회에서는 과태료 규정만 살려내면 된다.
남은 것은 DUR 의무화 방안 강화 찬성 여론을 조성하는 것이다.
대체조제 찬성론자 입장에선 돔페리돈 허가외 처방 논란은 DUR 의무화 필요성을 여론화하기 좋은 재료로 볼 만하다.
전 의원은 애초 의도하지 않았던 돔페리돈 논란이 일자 국감장에서 한 장의 슬라이드를 공개했다. 공개된 슬라이드 중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조제완료 보고 의무화(9번)' 규정<그림>이다.
더민주당 전혜숙 의원이 발표한 DUR 완결방안
전 의원은 DUR을 의사가 의무적으로 확인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약사가 조제내역을 심평원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의사가 처방한 것과 달리 조제될 수 있으니 조제단계에서 최종적으로 어떤 약이 나갔는지를 모니터링하자는 안이다.
대체조제 활성화를 찬성하는 입장에선 약사가 조제내역을 보고할 때 대체조제 사실을 함께 통보하는 안을 넣는다면 금상첨화다.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은 DUR을 통한 대체조제 여부 사후통보에 대해 "기술적으로, 제도적으로 가능하다"고 이미 여러차례 밝혔다.
최근 DUR과 관련된 일련의 흐름은 '의약품 안전사용'을 위해 개별적으로 추진되는 사안들이다.
흥미로운 점은 국민건강 향상과 의약품 안전사용 필요성을 부각하는 주장들에 생각하지도 못한 '대체조제 활성화'란 그림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의료계가 의약품 안전사용을 명분으로 추진되는 DUR 강화안을 주의깊에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