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51주년 기념특집
4차 산업혁명 의료를 바꾼다
'제4차 산업'에 대해 학술적으로 맞는 용어 사용이 아니라는 비판이 있다. 상당부분 타당한 지적이다. 사실 4차 산업이란 단어는 미래에 일어날 현상을 강조하기 위한 '마케팅 구호'에 가깝다.
그럼에도 '4차 산업혁명'에 대해 대부분의 기업과 국가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인공지능의 빠른 발전, 또는 자율주행 자동차나 대화가 가능한 로봇의 등장 등은 우리 삶에 큰 변화를 불러올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기업이나 국가에 있어서는 도전이자 기회가 된다.
4차 산업시대의 혁신적 변화는 여러 분야에 걸쳐 큰 도전으로 등장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의료분야는 더 심할 것이 예상된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의료비용 증가와 적합하지 않은 효율성으로 골치를 썩고 있고, 그 답을 기술적 변화에서 찾으려는 시도를 할 가능성이 높다.
<파괴적 의료 혁신>의 저자인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병원과 은행을 비교한다. 과거 오프라인에만 존재하던 은행이 이제는 ATM 기계나 인터넷 더 나아가 스마트 폰으로 들어올 동안 병원은 어떻게 변했는가?
100년 전과 지금의 병원의 풍경은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이 없다. 그러면 어떻게 변해야 더 효율적이고 비용 절약할 수 있을까? 환자에 대한 위해 없이 말이다. 그 답을 찾기 위한 노력은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의료분야의 빅데이터 활용
4차 산업 중 가장 먼저 변화를 초래할 것은 의료분야의 빅데이터라고 할 수 있다. 빅데이터란 역시 학술 용어는 아니다. 4차 산업이란 말이 나오기 전부터 유행하던 단어기도 하다.
그럼에도 데이터의 중요도나 활용도 측면에서 이보다 더 적합한 말도 없다. 데이터는 사물인터넷과 인공지능기술의 근간이다. 딥러닝과 같은 인공지능을 구현하는 기술은 빅데이터 시대에 들어서야 가능해졌다.
활용 가능한 의료분야의 빅데이터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다. 먼저 논문을 수집해 제공하는 데이터베이스인 펍메드(PubMed)가 있다.
여기에는 전세계에서 출간하는 논문들을 바탕으로 각종 질병, 유전체 및 약물 정보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 된다. 이들 자료는 인공지능 개발에 필수적이다.
또 다른 빅데이터로 환자 개인들의 임상정보가 있다. 우리나라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라는 단일 사회보험제도를 갖고 있는데, 여기에 청구된 자료만 갖고도 많은 것들을 파악할 수도 있다. 이미 몇 년 전부터 건강보험공단은 정책 및 학술연구 등 공익적인 목적을 위해 활용하도록 빅데이터를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건강보험공단의 빅데이터는 청구자료라는 한계점이 있다. 그렇기에 환자의 진단명을 100% 신뢰하기는 어렵다. 환자들이 혜택을 보도록 진단명을 입력하는 경우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청구에 필요하지 않은 환자 정보들은 알 길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그런 이유로 전자의무기록(EMR)이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넘어야할 산들이 있다. 먼저 아무리 큰 병원이라고 할지라도 빅데이터라고 부를 만큼 자료가 크지 않다. 각 병원들의 자료를 물리적으로 합치는 것도 기술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각 병원마다 데이터를 저장하는 테이블 구조가 달라 자료를 쉽게 통합하지 못한다.
병원마다 주문제작 형식으로 전자의무기록을 만들다 보니 생긴 문제다. 의무기록이 아무리 의미 있는 자료라 한들, 현재는 가공되지 않은 원석에 불과하다.
극복하려는 노력은 두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꽤 역사가 오래된 것이 바로 서식 및 전송 표준화다. 과거 분당서울대병원을 주축으로 진행된 전자건강기록(EHR) 사업단이 추진한 모델이다. 현재도 각 병원의 자료를 통합하려는 표준화 작업 연구가 계속되고 있다.
다른 한편에서는 분산연구망을 이용한 공통데이터모델(CDM)에 대한 연구가 많아지고 있다. 분산연구망은 각 병원의 환자정보를 표준화 및 익명화한 후 데이터를 병원 폐쇄망 안에 두고 사용자의 요청에 따라서 기관 안에서 분석된 요약 집합정보를 수요자에게 회신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연구자들은 폐쇄망 안에 있는 환자의 개별 정보를 보거나 취득할 수 없지만, 전체 데이터를 모아서 분석한 것과 동일한 분석 결과를 도출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의료 분야 변화는 시작됐다
여러 기관의 자료를 통합하기 위해서는 공통데이터모델을 활용하면 된다. 공통데이터모델이란 병원들의 데이터를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정의한 표준화된 데이터 구조라고 할 수 있다.
다기관 공동 연구 수행 시에 기관별로 상이한 데이터 구조와 의미를 동일한 하나의 구조와 의미를 갖도록 변환하는 방법이다.
국내에서는 아주대병원을 시작으로 삼성서울병원 등 17개의 의료기관에서 분산연구망을 활용한 공통데이터모델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박래웅 아주의대 교수(의료정보학)는 이 모델을 바탕으로 상용화해 ㈜에비드넷에 기술이전을 하기도 했다. 빅데이터의 상업화 가능성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직 비활성화 되어 있는 환자 데이터
전자의무기록에 기록되지 않는 정보지만 굉장히 중요한 환자정보들도 있다. 모니터링 장치들은 인터페이스나 장비가 갖춰지면 지속적으로 수집할 수 있다. 생체신호를 분석하여 환자의 주요한 상태 변화를 감지하고자 하는 시도들은 계속 되고 있다.
Moss 등은 9300여건의 집중치료실 입원에서 측정된 생체신호 데이터(HR·RR·O2·SBP·DBP 등)의 변화와 기관삽관·출혈 등의 이벤트와 연관이 있음을 발표했다. 또 뇌파검사 자료를 분석해 간질성 발작을 예측 하는 연구들도 다수 발표됐다.
환자들의 병원 밖의 활동 기록도 현재로써는 진료와 관련되어 있지는 않으나, 향후 활용하게 되면 훌륭한 임상정보가 된다. 하루에 얼마나 활동했는지 알 수 있고 이를 요약정리해 보고하는 기술만 개발된다면, 의사들은 만성질환자들을 더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다.
환자들이 자신의 상태를 보고하는 정보인 PRO 역시 디지털 정보로 전환됐을 때 질병 관리 측면에 효율성이 높다.
조만간 빅데이터 활용이 현실화 될 가능성은 매우 높다. 논문 등 학술적인 연구는 이미 시작됐고, 전자의무기록의 임상의사결정지원시스템(CDSS)의 지원 및 실제 약물의 효용성 분석 등에도 사용될 것이 확실시 되고 있다.
이런 변화에 맞춰 의학 교육도 변하고 있다. 일부 의과대학에서는 의료정보학교실에서 이와 관련된 교육을 하고 있으며, 의료정보학회에서는 이미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를 대상으로 6시간씩 14주 의료정보학과정을 교육시켜 의료정보학인증의(CPBMI)로 인준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각 임상 학회에서도 관련 워크숍을 열고 있기도 하다.
'미래는 이미 와있다. 단지 널리 퍼져있지 않을 뿐이다' 란 SF 소설 작가 윌리암 깁슨의 표현이 지금 우리의 상황에 딱 들어맞는다. 자율성을 지키면서 변화를 주도해 나가기 위해서는 의사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