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증책임'에 대한 해석…민사, 형사 각각 달라
[ 시작 ]
민사는 '배상'의 문제, 돈 문제다. 형사는 '형벌'의 문제다. 민사가 유책이면, 형사도 유죄일까? 형사가 유죄이면, 민사도 유책일까? 둘은 '입증책임'이라는 측면에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
[ 사실 ]
인천의 산부인과에 독일 국적의 산모가 입원했다. 태아의 심박동수가 급저하되는 증세가 5차례나 발생했다. 산모(임신 40주 6일차)에게 무통주사액이 투여됐다. 주의와 관찰이 필요했다. 1시간 30분 동안 태아와 산모에 대한 검사가 이뤄지지 않았다. 분만 중 태아가 심정지로 사망했다. 검사는 전문의를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했다.
▲ <1심> 1심 단독 판사는 금고 8월의 유죄를 선고했다. 근거는 세 가지. 첫째, 산모와 태아의 상태에 비춰볼 때, 심박동수에 대한 세밀한 관찰이 요구됐다. 둘째, 무통주사 이후부터 1시간 30분가량 의료적인 조치를 취한 바 없다. 셋째, 세심하게 관찰했더라면 빠른 제왕절개 수술이 가능했고, 태아가 사망에 이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충분했다 등을 제시했다.
▲ <2심> 2심인 지방법원 형사부는 무죄를 선고했다. 먼저, 분만진통 중 태아관찰 상의 과실 유무가 쟁점이 됐다. 심박동수를 측정하지 아니한 과실은 인정했다. 다음으로 의사의 과실과 태아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되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첫째, 30분 간격으로 심박동수를 측정했다 하더라도 감소를 바로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둘째, 감소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소규모 산부인과 의원에서 제왕절개술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1시간가량의 시간이 소요되기에 태아의 사망을 막을 수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셋째, 부검이 이뤄지지 않아 태아의 정확한 사망원인을 알 수 없다. 넷째, 심박동수를 측정했다 하더라도 태아의 사망을 막을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등을 근거로 무죄를 선고했다.
민사, 의료상 과실·결과 인과관계 추정 '증명책임' 완화
형사, 과실·결과 '엄격책임', '증명책임' 검사에게 있어
[ 쟁점 ]
1심과 2심은 같은 사실을 두고 왜 이렇게 판단이 달랐을까? 결국은 '입증책임'에 대한 해석의 문제다. 민사사건에서는 '(원고가) 의료상의 과실 있는 행위를 증명하고, 그 결과와의 사이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한 경우에는 의료상 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증명책임을 완화한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형사사건에서는 여전히 과실 및 인과관계에 관해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의 증명'을 요한다. 따라서 '진료상 과실이 피해자의 사망에 기여한 인과관계가 있는 과실이 되려면, 그에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게을리하지 않았다면 피해자가 사망하지 않았을 것임이 증명되어야 하고, 그 증명책임은 검사에게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일관된 태도다. 한마디로 형사책임은 '엄격책임'이다.
[ 평석 ]
대법원은 2심대로 무죄를 확인했다(대법원 2018년 7월 26일 선고 2018도1306 업무상과실치사). 하지만 형사가 끝났다고 민사까지 끝난 건 아니다. 그렇다면 민사사건도 면책일까? 입증에 달려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