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 출범 5월 예상…'전문가평가제'단기 성과 통해 가능성 입증
"선진국은 이미 100년 전부터" WHO, 의사면허관리기구 설립 권유
의사 스스로 면허를 관리하면,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관리가 가능할까? 아니면 '제 식구 감싸기'가 이어질까?
대한의사협회가 "의사면허의 체계적·효율적 관리를 위해 (가칭)대한의사면허관리원 설립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최대집 의협 회장은 20일 의협 용산 임시회관 7층 회의실에서 '대한의사면허관리원 설립 추진 및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 중간보고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이같이 공표했다.
의료계는 의사면허 관리를 자율적으로 하게 된다면, 일반인들이 볼 수 없는 시각으로 법보다 냉철하게, 법에서 다루지 못하는 윤리 영역까지 넓고, 엄격한 잣대로 관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더불어, 자율적인 의사면허관리 기구를 통해 종합적·전문적 면허 관리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 의사면허는 발급·유지·관리·등록·갱신·신고·보수교육 등을 단계별로 공공과 민간에서 분리·운영하고 있어 종합적인 관리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해외 사례 역시 의사면허관리 기구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주장하는 주요 근거로 제시됐다. 영국, 미국, 캐나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100여 년 전부터 독립된 의료계 자체의 의사면허관리제도가 운용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지난 2013년 2020년까지 세계 각 나라에 의학교육에 관한 평가인증기구와 자율규제기구인 의사면허관리기구의 설립을 권유하는 내용의 '보건의료인력 세계전략 2030'을 제시한 바 있다.
우리나라에도 의료계 자체적 감시 기능을 하는 기구가 있다. 의협 중앙윤리위원회(이하 중윤위)다. 하지만, 징계 기능이 가진 태생적 한계 등으로 제 역할을 해내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
중윤위 징계 최소수위는 3년 이하 회원 권리 정지. 이마저도 회원이 비협조적인 경우, 강제할 수 있는 수단 역시 전무한 상태다. 현재 의사면허에 조금이라도 영향력을 가진 의료인 자체 기구는 중윤위가 유일하지만 유일한 존재감에 비해 권한은 생각보다 폭이 좁다.
임기영 의협 중앙윤리위원회 위원은 특히 의사 면허에 대한 적은 영향력이 국민들에게 의사 단체가 "제 식구 감싸기를 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고 짚었다. 최고 수위의 징계를 내려도 국민 눈높이에 턱없이 낮은 징계로 보이기 때문에 국민적 신뢰성을 상실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다시 말해, 아무리 비도덕적인 행위를 한 경우라도 중윤위는 면허에 흠집 하나 낼 수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독자적 면허관리'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 '형평성' 문제다. 국민들의 시각에서 봤을 때, 제대로 된 감시나 관리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이에 '정말 잘 운영될 가능성'이나 '자율관리의 강점' 등을 판단할 근거로, 2016년부터 운영된 '의사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평가제 시범사업은 의료인 전문성을 토대로 한 자율규제 강화를 위해 추진됐다.
2016년 11월 광주광역시, 울산광역시, 경기도의사회 3개 지역에서 제1기 시범사업을 추진했고, 2019년 5월부터는 서울, 인천, 대전, 광주, 부산, 울산, 대구, 전북 의사회 등 8개 시도 의사회로 참여지역을 확대해 현재까지 제2기 시범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박홍준 서울시의사회장은 서울시의사회에서 진행 중인 '전문가평가제' 현황을 보고하면서 경찰서에서 수사 중, 전문가평가단의 자문을 요청했던 일을 언급했다.
박홍준 회장은 "작년 12월 서초경찰서에서 서울시의사회 전문가평가단에서 조사하고 행정처분을 의뢰한 '과도한 마약류 처방건'과 관련, 의료 전문가가 아니라 진료차트를 보아도 객관적으로 어떤 부분이 잘못됐는지 파악이 어렵다면서 서울시의사회 전문가평가단의 조사 자료와 자문을 요청했다"며 "전문가평가단의 전문가로서 판단이 중요하다는 것이 부각됐던 사례"라고 전했다.
이어 "전문가평가제는 대회원·대국민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역할을 했고, 회원들이 몰랐던 잘못을 인식하면서 처분 전 시정이 이뤄지는 사례를 다수 만들어내면서 회원간 자율규제 기능 확보 및 의료시장 질서 확립에 기여했다"며 성과를 밝혔다.
지난 12월 기준, 전문가평가제 조사 결과는 총 26건으로 집계됐다. 환자 유인행위, 불법 처방 등 의료법 위반사항 등에는 엄격한 잣대를 통해 중징계에 해당하는 '행정처분 의뢰'를 결정한 사례도 다수 있었다.
양동호 전문가평가단장은 "전평단 조사 결과 신뢰도 향상과 객관성 담보를 위해 전평단 조사 결과에 대한 시도윤리위원회를 통해 일차적 결정을 내리고 있다"며 "전문가평가단을 통해, 의사 스스로 비윤리적 의료행위에 대해 보다 전문적이고, 객관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의료계 내부에서도 납득할 수 있는 자율규제의 기틀을 가져갔다"고 평가했다.
의료계는 이외 코로나19와 같은 국가적 방역이 절실한 경우에도 종합적·독립적인 의사면허 관리체계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내놨다.
최대집 회장은 "의사면허 관리체계 구축으로 의료인 현황을 실시간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의료인력 수급 불균형에 따른 의료정책 개선, 의료인력 수급 예측 가능성 등 의료인력의 균형 있는 수급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의협은 대한의사면허관리원 설립 원칙을 '비정부 기구로, 독립성·전문성을 갖춘 현대적 면허관리기구 설립'으로 정하고, 선진국 수준의 자율규제 획득을 위한 전략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알렸다.
안덕선 면허관리원 추진위원장은 "면허관리원 추진위원회는 면허관리원 이사회 구성과 인선 작업을 최종 직무로 인식하고, 이를 수행한 뒤 해산할 것"이라며 "그 시기를 2021년 5월 중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면허관리원 설립 및 운영에 필요한 우선 논의과제로 ▲이사 선임 방법·근무 형태 등 조직 구성에 필요 예산에 관한 사항 ▲협회 면허신고·보수교육 등 기존 업무구조 및 제도 변경 필요 사항 ▲중앙윤리위원회 및 전문가평가제와의 관계 설정 ▲면허관리에 관한 임직원 연수 교육 및 업무분장 ▲현행 의사 면허관리제도에 관한 개선 사항 도출 ▲면허관리기구의 법적 지위 및 면허관리의 정당성 획득을 위한 법안 마련 ▲대회원·대국민·대국회·대정부 홍보 및 협조에 관한 사항 등을 꼽았다.
안덕선 위원장은 "면허관리원 설립, 운영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숙제가 산적해 있다. 처음부터 모든 것을 하겠다는 것은 아니고, 우선적으로 변호사 단체의 자율규제 수준 정도를 목표로 잡고 있다"며 "면허관리원의 설립과 운영을 통해 의사의 자율규제와 전문직업성 원칙이 우리 사회에 정착될 수 있도록 많은 격려를 바란다"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