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술실 CCTV 다르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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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영재 기자 garden@kma.org
  • 승인 2021.06.0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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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재 의협신문 기자 ⓒ의협신문
이영재 의협신문 기자 ⓒ의협신문

해묵은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 법안은 이번 국회에서도 여지없이 발의돼 6월 중 의안 심사를 앞두고 있다. 폐기와 발의를 10여년째 되풀이하고 있다. 

늘 환자의 알 권리를 살천스레 앞세운다. 법안 발의 목적이 포퓰리즘에 영합하는 게 아니라면 왜 한 번 쯤 고민하지 않을까. 

정보인권, 감시·통제, 프라이버시 등 더 세심하고 엄중하게 접근해야 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정보인권에 대한 요구는 시민사회로부터 시작됐다. 정부 주도의 정보화 확산 과정에서 시민들의 의견이나 참여가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2013년 1월 발간한 <정보인권보고서>에서 개념을 정리했다.

"정보인권이란 정보통신 기술에 의해 디지털화된 정보가 수집·가공·유통·활용되는 과정과 그 결과로 얻어진 정보가치에 따라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고 자유롭고 차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기본적 권리다."

이 정의의 방점은 어디에 찍힐까. 국가 주도의 정보 독점을 막기 위한 '자유롭고 차별없이 이용할 수 있는'일까. 아니면 존재 그대로의 가치인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되지 않고'에 있을까.

정보인권의 중요성은 지난 2003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NEIS)을 통해서도 부각됐다. NEIS는 시·도교육청 및 교육인적자원부에 시스템을 구축하고 모든 교육행정기관 및 초·중등학교를 인터넷으로 연결해 교육행정 전반 업무를 연계처리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정보주체의 동의나 법적 근거 없이 정부가 전자 정보를 수집·처리하는 정보인권 침해라는 지적이 비등했다.

다시 수술실로 시선을 옮겨 보자.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고 알권리를 위해 환자의 동의만으로 영상을 촬영한다면 정보의 또 다른 주체인 의사·간호사·의료기사 등의 정보인권은 어떻게 보호받아야 하나. 인권에 무겁고 가벼움이 있나.

법안 발의 때마다 등장하는 또 다른 '단골 이유'는 '의료사고 예방'이다. CCTV로 의료사고를 예방한다는 발상은 더 큰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미셀 푸코는 <감시와 처벌>(Discipline and Punish·1975)에서 현대의 컴퓨터 통신망과 데이터베이스가 마치 죄수들을 감시하는 '파놉티콘(Panopticon:원형감옥)' 처럼 개인을 감시하고 통제한다고 지적했다. 

파놉티콘은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제러미 벤담이 제안한 교도소의 형태다. 교도소에서 중심에 위치한 감시자들은 외곽에 위치한 피감시자들을 감시할 수 있으나, 감시자들이 위치한 중심은 어둡게 돼 있어 피감시자들은 감시자들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수 없다. 죄수들은 자신들이 늘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되고, 결국 죄수들은 규율과 감시를 내면화해 스스로를 감시하게 된다.

다시 수술실이다. 의료진은 생명을 살리기 위해 촌각을 다투며 작은 빈틈도 허용치 않는 긴장속에서 환자와 마주한다. CCTV 앵글 속으로 일거수 일투족을 영상에 기록하는 상황이라면 그 긴장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의료진에게 CCTV는 감시장치다.

CCTV가 의료사고를 예방하는 게 아니라 유발하게 된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것인가. 만약 당신이 수술을 받는다면 감시당하는 의사와 그렇지 않은 의사 중에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어쩔수 없이 신체 노출을 해야 하는 수술실에서는 프라이버시 역시 절대적인 가치다.

그런데 모든 수술 상황이 영상에 담기다보면 환자 개인의 민감한 신체 부위 역시 노출될 수밖에 없다. 

CCTV가 설치되는 순간 모든 영상은 '자료'이고 '정보'다. 

아무리 정보 보안을 강화하고 법적 제재 수위를 높여도 악의적 의도를 지닌 사람과 기술을 막을 수 있을까. 현재의 디지털 수준은 그런 욕망을 얼마든지 메운다. 

아직도 수술실 CCTV 설치를 반대하는 게 의사들을 위해서라고 생각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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