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의 '1984'

조지 오웰의 '1984'

  • 문석균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21.06.15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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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술실 CCTV 설치 '감시 사회' 옳지 않아
위험한 수술 회피 '외과 의사' 사라질 것

문석균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의협신문
문석균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의협신문

TV의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관찰 예능이 대세인 것 같습니다. 채널을 돌리는 곳마다 사람 사는 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담겨 있고, 자극적이지 않은 잔잔한 일상들이 노출됩니다. 현대인은 다른 사람의 삶이나 사는 집을 보면서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을 공유하고, 거기에서 소소한 재미를 찾으면서 힐링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우두커니 보고 있노라면, 필자도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이러다가는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면서 관찰하고 있어도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사회적으로 이슈화가 되고 있는 몇 가지 법안 중 '수술실 CCTV 설치법'이 있습니다. 사실 이 논쟁이 시작된 계기는 2016년 9월 서울 강남 한 성형외과의 수술실에서 발생한 '권대희 의료사고 및 사망 사건'입니다. 권대희 군은 양악수술을 받던 도중 과다출혈이 발생했는데, 의사가 이를 간호조무사에게 맡기고 방치한 채 수술방을 떠나서, 끝내 숨지게 되는 안타까운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국민 여론이 형성되게 된 이유는 고인의 사망원인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수술실 CCTV가 도움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국민들로 하여금 수술실을 은밀하고 폐쇄된 공간으로 여기게 하였고, 수술실은 더 이상 의사들의 전용 공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21년 5월 인천의 모 척추병원에서 대리 수술 의혹이 불거지면서 이 이슈가 다시 떠올랐고, 국민적인 공분을 사면서 수술실 CCTV 설치에 대한 강한 공감대가 형성되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국민들의 설치 요구가 높아졌습니다. 충분히 이해되는 주장이지만 무조건적인 설치보다는 설치의 장점과 단점을 살펴보았을 때 어떤 것이 더 공익에 이로울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사실 지난 약 3년간 적발된 대리 수술 사건이 112건이었고, 이는 의료기관에서 시행된 전체 수술 중 단 0.001%에 불과합니다. 단 1건이라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긴 하지만, 범죄행위로만 본다면 다른 범죄 발생률에 비해서는 아주 미미한 숫자이긴 합니다. 

또한 전국의 수술실과 분만실에 CCTV를 설치할 경우 설치에만 약 3,0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고 합니다. 비용 대비 억제 효과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한 번쯤은 고민을 해봐야 하는 수치입니다. 과연, 수술실에 CCTV를 설치하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요? 

수술실CCTV. [그래픽=윤세호기자] ⓒ의협신문
수술실CCTV. [그래픽=윤세호기자] ⓒ의협신문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 의료진에게 환자의 치료와 더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개인 정보 보호입니다. 수술실에서 환자가 마취에 들어가고 나면 수술 부위의 신체 노출은 불가피합니다. 그리고 다양한 수술 지표를 확인하기 위해 대부분의 수술에서는 실제 수술 부위보다 크게 신체를 노출해야 합니다. 산부인과 수술, 비뇨의학과 수술, 유방외과 수술 등의 민감한 수술 부위뿐 아니라 3시간 이상의 장기간 마취를 유지해야 하는 수술에서는 수술 중 생체징후 확인을 위해 소변 줄을 유치해야 합니다. 개인의 민감한 부위가 CCTV에 전부 녹화될 뿐만 아니라 컴퓨터 하드웨어에 어느 정도 일정 시간 저장되어야 합니다. 환자의 신체가 노출되는 영상이 존재한다는 것은 탈의실에 CCTV가 있는 것보다 더 큰 문제입니다. 

또한 이 영상들의 유출을 막기 위해 완벽에 가까운 보안이 필요합니다. 보안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다수의 보안 전문가를 비롯하여 많은 인적, 물적 장비가 필요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유출을 막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에는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 사건, 예전에는 청와대나 금융기관 해킹 사건 등 최고의 IT 및 보안 전문가들이 근무하는 곳도 해킹이 되었습니다. 작은 병원들이 자료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을까요? 보안에 구멍이 생겨 수술방에서 촬영한 환자의 신체 영상이 만에 하나 유출이 된다면 그 사회적 파장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이것은 주민등록번호, 주소, 전화번호 같은 개인정보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SNS나 블로그로 삽시간에 퍼져 다수의 사람이 보는 상황은 쉽게 상상 할 수 있습니다. 유출된 후에 법적인 조치를 한다 하더라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외과계 의사들이 사라질 것 같습니다. 지금도 전공의들이 외과, 흉부외과, 비뇨의학과, 신경외과, 산부인과 등 생명과 관련된 수술을 하는 과를 기피하여 해당과의 의사 인력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기피 이유는 수가 문제, 노동의 강도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의료 소송이나 분쟁이 다른 과보다 많아서 지원을 안 하려고 합니다. 만약 수술실 CCTV 설치가 의무화가 된다면, 의료 소송 건수는 더 많아질 것이며, 기피 현상은 더욱 가중될 것입니다. 현재 의료계 기피 과들은 환자의 생명을 다루는 막중한 역할을 하는 과입니다. 의료계는 이런 과들의 전공의들을 위해 자체적인 지원금, 근무시간 준수 등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이 노력이 소용없게 되어, 의료의 미래는 사라지게 됩니다. 나중에는 수술받고 싶어도 수술할 수 있는 의사가 없는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셋째, 난이도가 있는 수술은 피하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난이도가 높은 수술은 그만큼의 합병증 발생 위험 또한 높기 때문에 의사는 난이도가 높은 수술을 행하기 전에 환자와 보호자에게 발생 가능한 합병증과 대처 방법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동의를 얻습니다. 

그러나 만약 CCTV가 지켜보고 있는 입장에서, 아무리 환자에게 설명하고 동의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합병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은 부분을 수술하여 실제로 합병증이 생길 수 있다면, 집도의는 본인이 잠재적인 범죄자가 될 수도 있다는 부담감에 과감한 수술을 하지 못할 것이 자명합니다. 아무리 실력이 좋은 의사라도 어렵고 위험한 수술은 꺼리게 될 것이고 이것은 환자가 받을 수 있는 의료 기회가 줄어든다는 의미입니다. 

대리 수술이나 의료사고는 분명 없어져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래서 의료계는  수많은 역기능이 있는 수술실 CCTV 설치 대신에 대안으로 수술실 출입 지문인식기, 출입자 명부작성, 수술실 입구 CCTV 설치, 강화된 윤리교육 등의 여러 방안을 제안하는 겁니다. 불법적인 의료행위는 차단하면서도 의료혜택을 국민들이 누릴 수 있도록 최선의 방법을 도출해 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술 행위의 중심인 의료인들의 합의를 끌어 내 자율성에 기인한 방법이 되어야지, 수술실의 CCTV를 강제적으로 의무화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이 다 탈 수가 있습니다.

필자는 사람의 마음엔 귀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게 양심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고 있을 뿐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연(緣)이 있고, 그 연(緣)을 따라 각자의 마음이 이어진다면, 감시하는 사회는 옳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따라 조지 오웰의 '1984'가 생각이 나는 이유는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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