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 없는 수은 체온계·혈압계 폐기..."어쩌지?"

대안 없는 수은 체온계·혈압계 폐기..."어쩌지?"

  • 이승우 기자 potato73@doctorsnews.co.kr
  • 승인 2021.07.14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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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 22일부터 사용금지...환경부, 8월 20일까지 폐기 계획서 제출 요구
의료계 "수은 폐기 처리업체 단 1곳·처리 비용 부담·의학적 필요성 있음에도 폐기 난감"

ⓒ의협신문
ⓒ의협신문

정부가 수은 함유 의료기기 즉, 수은 체온계와 혈압계 사용을 조만간 금지키로 하면서 의료계가 혼란에 빠졌다.

'수은'은 '석면' 등과 함께 인체 암 유발 등 유해 물질로 분류, 전 세계적으로 사용 금지 또는 자제 권고를 하고 있다. 의료계 내부에서는 국민 건강과 진단의 효율성 측면이 충돌, 사용 중단 여부를 놓고 갈등하고 있다.

환경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 부처는 오는 22일부터 수은 함유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키로 했다. 물론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의료기기는 사용을 허용하고 있지만 신규 의료기기는 사용을 금지했다.

환경부는 최근 기존에 사용하고 있는 수은 함유 의료기기 폐기 처리계획을 8월 20일까지 제출해 달라는 공문을 일선 의료기관에 발송했다.

이 조치의 근거는 지난 2013년 체결, 2017년 발효된 '미나마타 협약' 이다. 협약 효력은 2020년부터다. 미나마타 협약의 골자는 수은화합물의 노출로부터 인간의 건강과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수은화합물 사용 금지 및 자제를 권고하는 내용이다.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 미국, 유럽연합, 일본, 중국 등 114개 국가가 가입했다.

구체적 제재 대상은 수은첨가제품 8종은 전지, 일반조명용 형광램프, 일반조명용 고압수은램프, 스위치·계전기, 전자 디스플레이용 형광 램프, 화장품, 농약, 체온계, 혈압계, 온도계 등 비전자적 계측기기 등이다.

우리나라는 2019년 11월 미나마타 협약에 대한 비준 절차를 마쳤다.

미나마타 협약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는 2014년 8월 11일 개정한 '의료기기 허가·신고·심사 등에 관한 규정'을 마련해, 국제수은협약 발효일인 2020년 2월 20일부터 수은 체온계와 혈압계의 사용을 금지키로 했다. 하지만 수은 관련 의료기기 폐제품을 안전하게 수거해 처리할 수 있는 업체가 부재하고, 의료기관의 혼란을 고려해 수은 함유 체온계와 혈압계 사용금지 조치를 1년 동안 유예했다.

수은 함유 폐기물관리법 하위법령에는 병·의원에서 사용하고 있는 체온계·온도계 등 수은 함유 폐기물을 포함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환경부가 8월 20일까지 현재 의료기관에서 사용 중이거나 보관 중인 수은 함유 폐기물 처리계획서를 제출해 달라는 공문을 발송하면서 불거졌다. 환경부의 수은 함유 폐기물 처리계획서 제출 공문을 접한 전국 의료기관은 혼란에 빠졌다. 제도를 따르기 힘든 현실적인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의료 현장에서 제도에 따르지 못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수은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폐기물 처리업체·중간처리업자·이송업자가 부재하기 때문. 환경부도 이런 사정을 고려, 폐기물관리법 하위법령 개정 시까지 폐기물 처리를 올해 7월까지 1년간 유예했다.

2021년 7월 현재 전국적으로 수은 폐기물 처리업체는 단 1곳으로 파악됐다. 의료기관들은 수은 폐기물 처리업체 추가 인·허가 등에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 폐기해야 하는 수은 함유 온도계·체온계 등을 별도로 보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협신문
ⓒ의협신문

하지만 최근 환경부가 7월 22일부터 제도 시행과 함께 수은 폐기물 처리 업체 인·허가도 병행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의료계는 혼란에 빠졌다.

A 지역의사회 B 임원은 "환경부 공문에 따라 수은 함유 폐기물 처리계획서를 내야 하는데, 계획서에는 폐기물 처리 공동처리기구 구성 및 계약 등의 사항을 포함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A 지역에는 인·허가를 받은 폐기물 처리업체가 없어, 당연히 제도 시행을 유예할 것으로 봤다"고 말했다.

제도 시행에 대비해 수은 함유 폐기물을 제도 유예기간 동안 별도로 보관해 왔지만, 가까운 지역에 인·허가 폐기물 업체가 없는 관계로 제도 시행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측했다는 것.

B 임원은 "제도 시행과 함께 폐기물 처리업체 인·허가를 시작한다고 해도 당장 의료기관에서 처리 계약을 맺기까지 고려할 사항이 많다"면서 "업체 수가 많지도 않아 선택의 여지도 없다. 업체가 일방적으로 계약조건을 제시하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둘째, 폐기물 처리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의료계에 따르면 수은 체온계는 개당 5만원, 수은 혈압계는 개당 15만원의 처리비용이 드는 것으로 파악됐다.

의료기관별로 수은 함유 의료기기 갯수와 보관 기관 등에 따라 처리 비용에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처리업체가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고비용을 감담하기에는 비용 부담이 적지 않은 실정이다.

C 지역의사회 D 임원(봉직의)은 "현재 상당수 의료기관에서 디지털 방식 체온계와 혈압계를 사용하는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아직도 수은 체온계와 혈압계를 선호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의사의 의료기기 선호도와 병원 규모에 따라 처리 비용이 다르겠지만, 특정 시기에 일시에 지출하기엔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국제적 기구의 권고 취지를 따르기 위해 선택한 제도이고, 의사들도 그런 취지에 반대할 생각은 없다. 그런데 앞으로 해당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하고 활용 가치를 다한 의료기기 처리를 안전하게 하겠다는 목적이라면 의료기관의 자율적 보고에 따라 사용 기기 수량을 확인해 처리 비용을 국가에서 지원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원 비용은 일정 기간 동안 일시적으로 발생하는 비용이고, 개별 의료기관에게는 부담이 되는 비용이지만, 국가 예산 지출상으로는 그리 큰 액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 "수은으로부터 국민의 건강을 지키겠다는 정책 취지를 달성한다는 측면에서 정부의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셋째, 의학적인 문제다. 일부 의사들은 저혈압 환자의 미세한 혈압 차이를 측정하는데 있어 비수은 디지털 혈압계의 효용성에 의심을 제기하고 있다.

모 지역의사회 E 가정의학과 전문의(개원의)는 "지역별 특성에 따라 수은혈압계 사용 빈도가 다를 수 있겠지만, 아직 디지털 혈압계보다 수은 혈압계 측정 결과를 더 신뢰하는 의사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만성 질환 및 합병증 관리를 주로 하는 개원의 사이에서 수은 혈압계 사용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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