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비대위 시민 속으로…'입법정의 수호를 위한 서울 시민의 밤'
"돌봄은 간호사만? 요양보호사·사회복지사는 돌봄 못하나?"
곽지연 간무협회장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하는 간호법 반대"
대한의사협회 간호법·면허박탈법 저지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가 시민들과 함께 두 법안의 문제점과 지견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간호사의 처우 개선과 돌봄은 기존 의료법 체계에서도 충분히 가능한데 굳이 간호법을 단독으로 제정할 필요가 없다는 지적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정을 추진하는 의도에 대해 각 계에서 의구심을 제기했다.
의협 비대위는 4월 11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입법정의 수호를 위한 서울 시민의 밤'을 열고, 토크콘서트와 시민발언대 3분 스피치, 의료인 초대 가수 공연을 진행했다.
토크콘서트에서는 법률전문가, 의료인, 시민이 패널로 참석해 간호법과 의료인 면허박탈법의 문제점을 시민들과 공유했다.
한진 변호사(서울시의사회 법제이사)는 "간호사의 처우개선과 '부모돌봄'은 간호법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이고, 의료법이나 다른 법의 시행규칙과 시행령으로는 안 되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법률전문가로서 간호법이 필요한 논리적 필연성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법이 처음 제정되면 많은 부분이 비어있어 수 차례 개정을 거치기 마련이며, 현재의 의료법도 100여차례 개정을 통해 계속해서 확장돼왔다"며 "현 의료법을 보완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법에서 규정된 내용을 가져와서 굳이 간호법을 새로 제정하겠다는 것은 최초의 의료법과 같은 확장성을 누리겠다는 의도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간호협회의 요구에 대해서도 "간호사 권리 보장과 처우 개선, 인권 침해 금지, 일과 가정의 양립, 교육전담간호사 배치 등 조항이, 의료법 내에서 규정하지 않고 간호법을 분리해 제정해야만 하는 이유인가"라고 되묻고 "의료법 제정 당시보다 간호사 수가 많아졌다던가, 간호사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던가 등은 간호법 제정의 명분이 될 수 없다. 현 의료법 및 타 법률에서 규제되고 있고 규정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며 "굳이 간호법을 제정하려는 저의가 의심스럽다"고 꼬집었다.
서민 단국의대 교수(기생충학교실)는 "의사가 반대를 표명하는 사안에 타 보건의료단체들이 이렇게까지 뭉친 적이 없었다. 13개 보건의료단체 모두가 간호법에 반대하는 이유가 있다"며 간호법의 문제점을 의료인의 관점에서 지적했다.
"간호법은 간호사의 힘든 환경에 공감해주시는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얻었으나, 간호법의 실체는 간호사들이 병원에서 탈출해 지역사회에서 독자적으로 진료하겠다는 것"이라고 짚은 서민 교수는 "일단 법안이 통과되면 돌이키기는 어렵고, 독소조항을 포함하도록 개정하기는 쉽다. 세계적으로 진료 질이 뛰어난 나라임에도 간호사들에게 진료받게 하려는 법안의 실체를 국민분들이 알아채고 저지에 힘을 보태주셨으면 한다"고 전했다.
또 "간호사들이 경증 환자 정도는 볼 수 있다며 '초짜 의사보다 간호사들이 더 낫지 않냐'는 망언이 들린다. 이는 굉장히 위험한 생각으로, 훈련된 의사가 아닌 간호사가 경증 환자인지 중증 환자인지 판단할 수는 없다"며 "진료를 보고 싶다면 의과대학에 가서 면허를 따라"고 일침을 놨다.
돌봄에 대해서도 "코로나19에 모두 함께 고생했듯, 모든 보건의료인의 책무인 돌봄은 의료 직역들이 각자의 전문성을 갖고 유기적 협력을 통해 작동돼야 국민이 혜택을 받는다"며 "의사·치과의사·간호조무사·물리치료사·요양보호사·사회복지사 등은 단독법이 없으니 돌봄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돌봄은 간호법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모든 직역이 같이 해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박준모 한국미래회의 위원은 한 사람의 국민의 입장에서 본 간호법을 "처음 볼 때는 그리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는데, 보면 볼수록 이상하다고 느꼈다"고 전했다.
박준모 위원은 "의사 선생님들이 고생이 많다. 정상적 입법 과정이 이뤄졌다면 진료실이 아닌 지금 이 곳에 계실 필요가 없는 분들"이라며 "보건의료는 흥정이나 거래의 대상이 아니다. 간호법은 전 국민의 건강이 직결된 의료 인프라에 대한 문제로, 국민 모두가 모여 논의하고 결론을 내야 한다. 이를 의료단체들 간 이익과 갈등에 관련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문제"라고 짚었다.
특히 간호법의 내용이 "기존 의료법의 복사 붙여넣기" 수준이라며 "처우 개선과 돌봄을 위한 제정이라 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눈여겨볼 만한 점은 지자체의 예산 지원 근거를 만든 정도인데, 이와 관련해서도 재원을 어떻게 충당할지 등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면허박탈법에 대해서도 패널들은 성토를 이어갔다.
서 교수가 "환자가 의사를 때리기에 너무 아파서 밀쳤는데 그 바람에 환자가 다칠 경우, 금고형(집행·선고유예 포함)을 받을 수 있느냐"고 묻자 한 변호사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답했다. 박 위원도 "과잉 입법이며 헌법에도 어긋난다"고 말을 보탰다.
토크 콘서트 종료 후, 곽지연 대한간호조무사협회장은 시민발언대 3분 스피치에서 "간호법이라는 명칭 자체가 불쾌하다"며 "어떻게 당사자도 모르게 법이 제정되는 일이 있을 수가 있나. 국민이 아플 때 가장 먼저 만나는 간호인력이자 간호의 당사자인 간호조무사는 이 법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간호조무사 응시 자격을 특성화고 또는 간호학원 졸업으로만 제한시키고 전문대 교육과정에 신설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은 간호조무사를 간호사의 보조 인력으로 국한시키려는 속셈"이라며 "오전에 열린 의료현안 민·당·정 간담회에서 간협에 간호조무사의 교육 선택권에 대해 물어보니, 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는데 왜 굳이 대학에서 학비를 들여가며 공부하려 하느냐는 어이없는 답변을 받았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보건의료를 전공하는 대다수의 학생들이 간호조무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수년간 대학 교육을 받았음에도 간호조무사 응시자격 제한으로 인해, 학생들은 방학 때 시간을 쪼개가며 혹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다시 간호학원을 들어가는 일이 다반사"라고 전했다.
이어 "민·당·정 간담회에서 정부가 중재안을 내놓으며 '중재안에 대해 현장에서 근무하는 보건의료인력 회원들의 생각을 묻고 오라'고 요청하자, 각 단체장들은 수용했으나 유독 간협만 '회원들에게 절대 물어볼 수 없고 중재안을 절대 받을 수 없다'고 거절했다"면서 "간호협회가 누구를 위해 간호법을 제정하려 하는지 다시 한번 묻고 싶다"고 꼬집었다.
박종환 종로구의사회장은 "간호법이 발의된 2021년 3월 25일은 현장 보건의료인력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써가며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헌신하고 몰두하던 때였다"며 "전혀 생각도 못 하고 있던 때에 이런 법안들을 발의한 것은 400만 보건의료인과 5000만 국민을 배신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이어 "간호사 처우 개선이 간호법으로밖에 이룰 수 없는 것인가? 환자들의 기저귀를 갈며 헌신하다 돌아가시는 날까지 함께하는 요양보호사보다, 응급한 상황에서 꺼져가는 생명을 살리려 고군분투하는 응급구조사보다, 간호사가 더 대우받아야 하는가? 간호사는 간호조무사 위에 군림해야 하는가?"라고 되물었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참석한 조형곤 시민운동가(21C미래교육연합 공동대표)도 "의료계에서 헌신적으로 노력하시는 의사 등 의료인들의 헌신 덕에 전 세계에서 부러워하는 의료를 누리고 있다"며 "간호법 제정은 건강보험 지속가능성에 빨간 불을 켜겠다는 것이다. 건강보험 지속과 청년들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시민과 국민이 함께 대한민국 의료를 지키자"고 촉구했다.
이어진 공연의 초청가수로는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이기도 한 그룹 '동물원'의 김창기 회원과 밴드 '애플스'의 표진인 회원이 함께했다. 길을 지나가던 시민들도 잠시 발걸음을 멈춰서고 '입법정의 수호를 위한 서울 시민의 밤'을 함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