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의료원 응급실 실장이었던 김태훈 원장 "꿈꾸던 지역응급의료, 하루아침에…"
호신용 스프레이 썼다고 특수폭행 기소, 전문가 무시하는 '행정폭력'에 좌절
"쫓겨 나온, 그리운 고향 응급실…현장 전문가 의견 반영돼야 돌아갈 수 있다"
응급의학과 전공의 충원율은 해마다 최저치를 경신하며 70%대에 진입하고 1년차 중도포기율이 10%를 넘어가는 등 응급의학과 기피는 거듭 심화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열린 대한응급의학의사회 학술대회에서는 '개원팁' 세션이 젊은 응급의학 의사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기도 했다.
개원 세션 연자를 맡았던 응급의학 전문의 김태훈 원장(쌍용메디컬의원)은 후배들을 향해 '나 역시 잦은 야간당직과 형사고발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응급실 근무를 놓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의협신문]은 평생을 지역 공공의료기관에서 응급실 의사로 살기를 꿈꿨지만 이제는 개원가 2년차인 그의 사연을 들어봤다.
= 처음 응급의학과를 택한 계기는 무엇이었나
처음부터 거창한 목표가 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응급의학과 교수님과 선배들이 너무 좋았고, 어찌 보면 이것저것 계산하지 않고 응급의학의사의 길을 걷게 됐다. 이 사람들과 계속해서 함께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덕에 응급의학 수련과정이 힘들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 그래도 응급의학과 수련은 중도포기율이 높을 정도로 상당히 힘들다고 들었다. 수련 중 어려운 시기는 없었나
사실 너무 힘들어서 도망간 적도 한 번 있다. 체력도 체력이지만 누군가의 생과 사의 갈림길에 항상 개입된다는 게 심적 부담감이 굉장히 크다.
그런 내가 응급의학과에 확신을 갖고 일할 수 있었던 건 '못난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교수님의 한마디였다. 나처럼 못난 사람이 못난 일을 하더라도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교수님도 선배들도 흠을 덮어주고 항상 다독여 주고 이끌어줬다.
한 명의 의사를 키워내려면 고난의 순간에 손을 내밀어주고 격려해줄 많은 동료와 선배들이 필요하다는 걸 직접 체감했다. 그래서 단순히 강의실을 넓히기나 지식을 전수하는 것으로 의사를 양성해 내려는 현 상황에 더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 응급의학과 석·박사 학위도 취득했고 임상교수(조교수)직도 지냈다. 응급의학과에 전문성을 함양하고자 상당히 노력했는데, 본래 평생 응급실 의사로 일할 마음이었는지
계속 응급의학의사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상당한 시간과 비용도 투자한 거다. 학교부터 수련병원까지 모두 천안에서 나왔고, 천안의료원 응급실 실장으로 있으면서 지역응급의료의 청사진을 그리고 평생 일하고 싶었다.
팬데믹 때도 코로나19 전담병원의 선별진료소장을 맡았고 어찌보면 사회에서 요구하는 지역의료, 공공의료, 응급의료를 모두 수행하고 있었던 거다. 물고기가 물에서 사는 게 가장 행복하듯 나 또한 응급의학의사로서 사는 게 가장 행복했으나,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 응급실 폭력과 고소 등 법적 부담이 응급실 기피의 대표적 원인으로 꼽힌다. 폭력 가해자로부터 되려 고소를 당했다는데
2018년의 일이다. 응급실 주취자 난동이 급격히 많아지고 정도도 갈수록 심해지기에, 나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안전까지 걱정돼 호신용 후추 스프레이건을 샀다.
스프레이를 사고 몇 개월 되지 않아 어느 날 밤 9시경, 한 만취자가 배고프니 3일간 입원시켜달라고 난동을 부렸다. 제압을 위해 스프레이를 쐈는데 오히려 내가 폭행죄로, 심지어 특수폭행죄로 기소되더라. 특수폭행죄는 정말 조폭이나 야쿠자 정도에 적용되는 죄목인 줄 알았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보안 인력 고용을 요청했지만, 응급실은 적자 폭이 크기에 병원 경영 사정상 보안인력을 둘 수 없었다. 다행히 무죄로 결론이 났지만 조사받는 과정에서 마음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건 이후로는 응급실에서 호신용품조차 쓰지 못했다. 그냥 맞거나, 경찰이 올 때까지 열심히 피해 다닐 수밖에 없다.
동료 중에는 진료 과정에서 법적 분쟁에 휘말린 이들도 너무 많다. 응급의학과는 그래도 일정 수준의 충원율이 유지되던 곳인데, 폭력이나 사법적 부담으로부터 안전한 진료환경이 되지 못한다는 문제가 십수년간 누적됐다. 응급의료법이 강화되기 전엔 응급실 취객 난동 정도는 벌금까지 갈 것도 없이 거의 훈방조치되지 않았나.
많은 언론에서는 응급의학과 기피가 의사들이 힘든 일을 하기 싫고 경제적 이득을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보안이나 물리적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응급실을 어떻게 후배들에게 권할 수 있을까. 개인의 이득과 영달을 추구할 거라면 애초에 바이탈을 하지 않았다. 지역 응급의료기관을 기피하는 것은 배후진료 인프라가 없기에 전원이 쉽지 않아 법적 분쟁 위험이 높고, 소신 있는 지역응급의료 수행이 불가하기 때문이다.
= 사건이 일어난 2018년 이후 코로나19 팬데믹 당시에도 응급의학의사로서 활약했다. 지역공공의료기관 응급실에서 개원가로 나온 결정적 계기가 따로 있나?
특수폭행으로 고소당한 일로 (응급의료를 계속하겠다는)마음에 금이 간 상태긴 했지만, 이 사건만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도 응급실에 있었을 거다. '행정폭력'으로 인해 내가 평생 일하려 마음먹었던 응급의료환경이 하루아침에 망가졌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날 무렵 경찰 고위 관계자가 찾아와 응급실에 주취자센터를 둘 것을 강권했다. 파출소에 있던 취객이 다음날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두부외상이나 뇌 손상 등 중증 외상의 위험성을 우려해 주취자센터가 필요하다는 건데, 당시 우리병원은 응급 뇌수술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정말 환자를 살리려면 신경외과 수술이 되는 곳이어야 한다고, 우리병원에 센터를 만들면 오히려 환자에게 위험하다고 설명하기 위해 논문과 자료도 많이 준비해 갔지만, 돌아온 답은 '됐고 논문은 혼자서나 많이 보라'는 것이었다. 전문가로서 마땅히 의견을 피력하고 싶었을 뿐인데 모독당한 기분이었다.
가져온 자료는 보지도 않고, 거부 시 지원금에 불이익이 있을 거란 뉘앙스로 강요했다. 후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데 약속한 예산도 지원을 해주지 않아 전화를 걸었는데, 다른 부서로 옮겼다며 자기 일이 아니라는 식으로 얘기하고 끝내버리더라. 이후 소아의료가 이슈가 되자 주취자센터와 같은 공간에 소아응급센터를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응급의학과는 지자체 등의 지원금 없이 진료수가만으로 자생이 불가능하기에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지역사회 응급실에 있으면서 나름의 철학과 사명감, 그리고 평생 지역응급의료 청사진이 있었는데 그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졌다. 응급실은 정치적 논리나 잣대로 흔들리고 언제든 뒤집힐 수 있는 곳이며, 의사로서 진료철학과 사명감을 갖고 일할 공간이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내가 결코 떠나고 싶지 않았던 곳(응급의료)은 현장 전문가 의견이 무시되고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것들을 끼워넣는, '누더기'가 됐다.
당시 상실감에 빠져 많이 힘든 상태였는데 (수련병원 졸국)응급의학과 1기, 3기 선배님들이 '꼭 이 길만이 의사의 길이 아니고, 지금이 끝이 아니다. 다른 길을 한번 경험해 보지 않겠느냐'고 권해주어 함께 의원을 운영하게 됐다. 은인이시고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한다.
= 응급의학의사들과 함께 야간·주말 진료까지 보는 의원을 하고 있다. 응급의학 전문의로서 개원의의 일은 어떤가
야간진료를 하며 응급실에 갈지 망설이거나 어려워하는 KTAS 4~5등급의 환자들을 주로 보고 있다. 환자분들도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진료를 많이 좋아해 주시고 신뢰해 주신다. 추후에는 CT도 도입하고 영상의학과 전문의도 초빙해 검사까지 종결할 수 있게 하려 한다.
경증 환자들이 응급실로 몰리는 게 문제라면 야간 운영 1차 의원 모델을 도입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보면 응급실에 갈 수 있는 경증환자들을 보면서, 응급의학과에 한발이나마 걸치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또 응급의료법안에 의견조회를 하거나, 충남 응급의료위원회 위원으로 있으면서 응급의학 전문의로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의사회 활동도 활발히 하며 생생한 현장의 의견을 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 이따금씩 응급실 현장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는가?
늘, 항상 돌아가고 싶다. 정말 그곳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그때가 의사로서 인생에 가장 보람되고 참 행복했던 황금기였다. 응급의료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충실히 반영하는 구조가 된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고 싶다.
당시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응급실 식구들도 항상 그립고 지금도 많이 생각난다. 지금이라도 그대로 같이 일하고 싶다. 다른 배후 진료과 전문의들과 소통해 환자를 진단해내고, 환자가 회복돼서 병원을 나가는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낀다.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
결코 자의로(응급실을) 나온 게 아니다. 응급의학의사를 하기 위해 인턴·레지던트부터 석박사 과정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어렵게 취득한 전공과목을 버린다는 건 단순히 이득을 추구하기 위해서일 수 없다.
마치 쫓겨나온 난민 같은 거다. 고향이 위태로워 빠져나온 난민들이 고향이 안정되면 돌아갈 게 당연하듯, 응급의료환경이 좋아지면 당연히 내 고향(응급의료)으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겠나. 빠르게 환경이 개선된다면 돌아가겠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 새로운 환경에 뿌리내리면 그 이전까지의 (응급의료)경험들이 사라져 가고 싶어도 갈 수 없게 될 거다.
= 응급의학과 사직 전공의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나 역시 하루아침에 권력자들에 의해 속한 곳의 의료환경이 망가지는 상실감을 겪었다. 사직 전공의 개개인도 그런 심정으로 사직을 결정했을 거다.
내가 더 이상 응급의학의사로서 소신을 갖고 일할 수 없는 환경이 돼 좌절한다 해도, 어떻게든 의료를 펼칠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걸 전하고 싶다. 응급의학의사회 학술대회에서 개원 세션 발표를 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이제까지 걸어온 그 길에 성실성과 책임감이 이미 담보돼 있다. 앞으로 사직전공의들이 어떤 길을 가도 좋은 결과가 나올 거라고,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결국 다른 이들을 이롭게 하는 좋은 일을 할 거란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