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2월 서울고등법원은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인 CT를 사용한 것은 의료법 위반이라고 확정판결했다. 당시 이 판결은 의사와 한의사의 업무범위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료계 안팎의 큰 주목을 받았다.
4년이 지난 현재 피부미용 치료에 사용하는 현대 의료기기인 IPL을 한의사가 사용한 데 대한 형사소송이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CT소송건은 진행 내내 의료계의 뜨거운 관심 속에 진행된 반면 상대적으로 IPL재판은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한의사의 IPL 불법사용 문제는 CT건보다 훨씬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다. CT는 규모가 큰 병원급에서나 쓰는 기기인 반면 IPL은 의원급에서도 흔히 사용할 수 있어서다.
의료일원화와 관련한 논쟁은 의료계의 단골메뉴이자 결코 쉽게 풀리지 않는 난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같은 현대 의료기기인데, CT가 한의사의 업무범위에 속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온 지 불과 4년만에 다시 IPL소송건이 엎치락 뒤치락하며 대법원까지 올라간 것도 쉽게 수긍이 가지 않는다.
더구나 현재 같은 내용의 1심 재판이 대구지법과 대전지법에 계류돼 있는데, 하급심이라 대법원 결과가 나올 때까지 판결을 미루고 있는 형국이다.
IPL은 하버드의대 앤더슨 교수가 <사이언스>지에 발표한 현대의학 이론에 근거해 개발했다. 현대의학 원리에 따라 외과적 레이저 시술용으로 만든 IPL에 대해 한의사들은 기원전 4~3세기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 고대문헌 <황제내경>의 한의학적 원리에 따라 사용하고 있다고 억측스런 주장을 하고 있다.
<황제내경>에는 '계절에 맞춰 햇빛을 적절히 쬐어야 한다'는 내용이 있을 뿐인데, 태양광보다 약 30만배 이상의 강한 에너지를 방출하는 IPL의 시술근거로 원용한다는 것은 지나친 논리 비약이다.
현재 대한피부과의사회가 대한의사협회와 긴밀히 공조해 IPL 소송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박기범 피부과의사회장은 '특별회비라도 걷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중대한 사안이긴 하지만 IPL건은 예산보다는 의학적 근거와 법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재판관들을 설득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했다. CT소송 때 이상으로 또 한번 의료계 전체의 관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