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항력 사고보상, 산부인과 의사 원죄 씌우나"

"불가항력 사고보상, 산부인과 의사 원죄 씌우나"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3.03.28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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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저출산 시대의 안전한 분만환경 조성 방안' 국회 토론회
김암 교수 "젊은 의사 분만 포기 예사로 넘길 일 아니다" 강조

▲ 김암 교수가 '분만 인프라 붕괴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제도'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의협신문 이은빈
불가항력적으로 발생한 의료사고에 대해 의사 책임을 일부 부담시키는 보상제도를 두고 의료계의 거부감이 확연한 것으로 나타났다.

의사의 잘못 없이 부득이하게 생긴 사고에 대한 보상금을 원죄적 의미로 분담토록 강요한다면, 분만 기피로 인한 인프라 붕괴가 가속화될 것이란 지적이다.

김암 울산의대 교수(서울아산병원 산부인과)는 28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새누리당 문정림 의원 주최로 열린 '저출산 시대의 안전한 분만환경 조성 방안' 토론회에서 "분만을 받는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담당 의사들을 죄인시하고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이 같이 밝혔다. 

김 교수는 "분만이란 어떤 의료행위보다 의료분쟁 가능성이 높은 분야 중 하나"라며 "지금과 같은 사회적, 제도적 소외에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제도라는 법적 편견까지 도입된다면 분쟁 발생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김 교수는 "안전한 분만환경 조성이라는 법 취지를 고려해서라도 보상재원 마련의 책임은 국가에서 전적으로 부담함이 타당할 것"이라면서 "더 나아가 젊은 의사들이 기꺼이 산부인과를 택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분만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꿈과 자긍심을 심어주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는 의료분쟁조정법 시행 이후 의료계의 비협조로 분쟁조정이 원활히 되고 있지 않다며 난색을 표시했다. 불가항력 의료사고 보상제의 경우 의사들이 책임이 없다는 점을 들어 계속 거부한다면,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복지부 "의료계 참여 거부로 분쟁조정율 60% 불과" 쓴 소리

곽순한 보건복지부 의료기관정책과장은 "오랜 조율을 거쳐 의료계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만들었는데, 이제 와서 못한다고 하니 정부 입장에서는 적반하장인 격"이라며 "조정제도는 주로 환자쪽에서 신청하는데, 의료인이 참여하지 않겠다고 하면 진행이 되지 않아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지금까지 의료분쟁중재조정원에 누적된 접수건수는 777건. 이 가운데 의료인이 참여를 거부해 조정 자체가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60% 정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곽 과장은 "조정 결과를 보면 반드시 환자에게만 유리한 제도라고 단정할 수 없는데, 이런 사실이 널리 알려진다면 불신이 다소 해소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서 "피신청인(의사)의 절대적인 선택권에 조정 성사 여부를 맡기는 게 과연 옳은지, 절차를 의무적으로 변경하는 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불가항력 보상 제도의 경우 의료인이 부담하는 비용과 책임 중 무엇이 문제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면서 "분담비율을 재검토해서 비용 문제는 개선할 수 있지만, 책임 문제라면 국가가 전액 보상하는 대신 보상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제도 자체를 원점으로 돌리는 안을 언급함으로써 그간 의료계에서 "의사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제도"라며 국가의 전적 부담을 주장해온 것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 ⓒ의협신문 이은빈

유사한 위기 겪던 일본, 수가인상 및 파격 국가지원으로 돌파

토론에 나선 참석자들은 안전한 분만환경 조성 차원에서 국가가 불가항력적 의료사고 보상제도에 필요한 재원 전액을 부담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화진 변호사는 "법률에 부담금의 부과요건, 산정기준 등이 구체적으로 규정돼야 함에도 부담주체만 규정하고, 대통령령에 포괄적으로 위임하고 있는 것은 법률 유보 및 명확성 원칙, 포괄위임입법금지 원칙에 반한다"며 "원칙적으로 국가가 사회보장적 견지에서 부담하는 게 타당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신정호 대한산부인과학회 사무총장은 분만수가 대폭 인상과 함께 불가항력적 사고에 대한 국가지원 제도를 만들어 위기를 극복한 일본 사례를 들어 "어떤 면에서 일본보다 훨씬 힘든 상황에 놓여 있는 한국이 일본 정부가 추진한 사안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도입하지 않는다면, 우리에겐 더 심각한 위기가 닥쳐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정적인 분만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장기적 관점에서 의대생의 분만 참관에 대한 사회적 동의부터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조원일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장(순천향의대 본2)은 "산부인과 의사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실에서 양에 대한 고민을 넘어, 의료의 질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라며 "실습하다 보면 남자 의대생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데, 교육의 질을 제고한다는 관점에서 산모들의 협조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문정림 의원은 "의료사고 보상사업의 재원을 민간에 분담토록 하는 것은 분만 의료기관과 전문의의 분만 참여 의지를 떨어뜨리는 것이다. 공공성이 강한 분만 관련 보상은 법적인 근거 하에 국가가 전액 부담하는 게 타당하다"면서 추후 각계 의견을 수렴해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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