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IPL 판결이 주는 의미

대법원 IPL 판결이 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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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3.3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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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광 현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변호사 법학박사)

▲ 정광 현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변호사 법학박사)

의료법에서는 의사와 한의사의 면허를 매우 엄격히 구별하고 있으며, 각자에게 상대방 면허범위에 속하는 의료행위를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이원적 의료체계는 첫째, 한의사에게도 의사와 동등하게 면허를 인정해 주겠다는 정책적 표현이자 둘째, 각자가 가진 전문지식과 기술의 한도에서만 의료행위를 할 수 있게 함으로써 국민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려는 뜻이 담겨 있다.

한의학은 우리 선조들이 오랜 역사 동안 처방경험을 누적하면서 터득한 의학지식에 바탕하고 있다. 그런 처방경험은 파편적인 집적에 그치지 않고 체계적으로 정리돼 독창적 원리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는 일본과는 달리 '한의사 면허'를 독자적인 면허로 인정해 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한방의료는 현대의학의 영향을 받아 장비와 기술이 갈수록 현대화되고 있으며, 이론체계도 정치하고 분석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한방의료의 외연 확대라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의사 면허의 영역'과 '한의사 면허 영역'의 경계선은 그만큼 모호해지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의사와 한의사 사이에 종종 불유쾌한 영역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비근한 예로, 한의사가 초음파 진단기를 이용한 진단하거나 'IPL' 기기를 이용해 피부질환 등을 치료하는 문제를 놓고 헌법재판소와 법원에서 법적 공방이 벌어졌다.

한의약육성법 제2조 제1호에 따르면, '한방의료'란 우리의 선조들로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한의학을 기초로 한 한방의료와 이를 기초로 하여 과학적으로 응용·개발한 한방의료를 가리킨다. 전자를 '전통 한방의료'라고 한다면, 후자를 '개량 한방의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법에 따르면 전통 한방의료에서는 알지 못하는 현대적 기술과 장비를 사용했더라도, 한의학 원리를 적용했다고 하면, 개량 한방의료행위로 볼 여지가 생긴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는 "특정 의료기기를 한의사가 사용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의사가 해당 의료기기의 사용방법을 교육받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돼야 하며, 환자의 질병 상태, 해당 의료기기의 작동원리 및 이를 이용한 진료행위가 한의학적 원리에 따른 것인지 여부 등이 종합적으로 고려, 판단돼야 할 것"이라고 기준을 밝힌 적이 있다.

한의학 원리를 간략히 묘사하자면, 그 요체는 정기(正氣)를 보강하고 사기(邪氣)를 약화시켜 신체의 생리적 조화를 회복하는 데 있다. 외부에서 직접적으로 병인(病因)을 제거하려고 하기보다는 신체 내부의 기력을 상승시켜 자생적으로 질병을 이겨 낼 수 있게 하는 데 치료의 주안점이 놓인다.

그 상용수단으로는, 내치법으로서 약물요법과 외치법으로서 침구요법이 있는데, 특히 한방에 고유한 침구요법은 경혈을 자극해 경락 내 기혈 운행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한의학 원리에 따라 현대적 장비로 구현된 것이 레이저 침이다.

레이저 침은 저강도의 빛이 가지는 온기로 다양한 광생물자극을 줘 세포의 회복을 촉진하는 장비다. 플로크라는 독일인 학자는 동양의 경락이론과 침구학을 연구한 후, 전통적인 침 치료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헬륨-네온 레이저를 개발했다.

반면, IPL 시술은 선택적 광열분해 이론에 기초해 빛에너지로 표적조직에만 열손상을 가하는 치료법이다. 표적조직 이외의 정상조직에는 복사열이 전달되지 않도록, 표적조직이 특히 잘 흡수하는 특정 파장의 빛을 선택하고, 그 빛을 집약해 1000분의 1초 단위의 짧은 시간 내에 병변에 조사함으로써 표적조직만 파괴·소멸시키는 일종의 외과적 치료다. 이것은 '온통경락'이나 '기혈순행'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은 매우 분명하다.

하지만 이처럼 명백한 사실이 법원의 판결에서 인정되기까지는 상당한 우여곡절이 있었다. 한때 하급심에서는 한의사의 IPL 시술이 레이저 침 치료와 유사한 한방의료행위로 간주되기도 했다. 이 하급심 판결이 잘못됐다고 대법원이 최종 판단을 내린 것은 상고장 접수일로부터 약 3년 6개월이 지나서다.

대개의 경우 법률가는 의학적 전문지식이 그리 충분하지 않다. 또한 최종 판결에 이르기까지는 장기간이 걸리는 게 보통이다.

그러므로 의사와 한의사 면허의 경계선을 정하기 위해 법정 공방을 벌이는 것은 실효성이나 시간·비용 면에서 비효율적이다.

한의사 중에는 무심코 의사의 영역을 침범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IPL 시술로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어느 한의사는 이를 다투기 위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가, 대한의사협회의 반박의견서를 보고 난 후 스스로 헌법소원을 취하했다.

그 한의사에게 사전에 상세한 설명과 함께 경고의 신호를 보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행정당국의 행정적 제재조치나 형사처벌 등이 개입되기 전에 미리 의사와 한의사 대표들이 만나 업무영역을 나누길 바란다. 타율 보다는 자율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절차나 협의체를 만들었으면 한다.

필자는 1995년 제37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사법연수원(27기)을 수료했다. 군법무관(대위 전역)과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2001∼2007년)을 거쳐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에서 헌법을 전공하고 2012년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국제조사연구팀장(2011∼2012년)을 역임한 뒤 2013년 1월부터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 변호사로 헌법·행정·민사 분야 소송 및 자문업무를 맡고 있다.

필자는 한의사의 IPL 사용에 대해 무죄 판결한 원심에 문제가 있다며 파기환송한 대법원(2014년 2월 13일) 소송에서 의료계 변호인으로 참여, 주도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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