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출신 유화진 변호사, 한의사 의료기기 둘러싼 법원판례 분석
"객관적 자료 축적 필요…장기적으로 바람직한 의료제도 정착시켜야"
헌재 결정 직후 한의계는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의료기기의 성능이 대폭 향상되어 보건위생상 위해가 없이 진단이 이뤄질 수 있다면 자격이 있는 의료인(한의사)에게 사용권한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의료기기 사용을 확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대법원 재판연구관실 연구원과 광주지방법원 판사로 재직한 경험이 있는 유화진 변호사(유화진법률사무소)는 <의료정책포럼> 최근호에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 문제'를 주제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대해 분석했다.
유 변호사는 헌재는 ▲동의보감이라는 전통적인 한의학의 기초가 있고 ▲한의대 교과과정에 이 사건 의료기기에 대한 교육내용이 있다는 점 ▲이 사건 의료기기를 이용한 결과의 해독에 전문적인 식견이 필요하지 않고 ▲이 사건 의료기기의 사용이 보건위생상 위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전혀 없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했다며 "이 결정의 취지는 위와 같은 요건이 충족되는 전제하에서만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으로 한의사의 의료기기 사용을 일반화시킬 수 있는 결정으로 보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즉 헌재가 제시한 각각의 요건을 충족해야만 제한적으로 의료기기 사용을 허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 보건위생상 위해를 주지 않거나 검사방법이 간단한 의료기기를 모두 사용할 수 있도록 물꼬를 터준 결정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문성 필요한 영상의학분야 한의사 의료기기 사용 불허
유 변호사는 보건위생상 위해가 없고 검사방법이 간단하더라도 판단에 전문성이 필요한 경우에는 한의사에게 의료기기 사용을 허가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헌재의 '한의사의 골밀도 측정 초음파 사용에 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2013년 2월 28일, 2011헌바398)을 예로 들었다.
이 사건에서 골밀도 측정용 초음파진단기기를 사용해 성장판 검사를 하다 기소된 한의사는 의료관계 법령에서 면허의 범위와 판단기준을 구체적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되고, 의료기기 사용을 금지한 것은 과잉금지원칙에 위반된다며 위헌법률심판을 신청했다.
당시 헌재는 "특정행위가 한방의료행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그 의료행위의 태양 및 목적, 학문적 기초, 전문지식에 대한 교육정도, 관련 규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견해를 유지하면서 "한의학과 서양의학은 그 학문적 기초가 서로 달라 학습과 임상이 전혀 다른 체계에 기하고 있으므로 자신이 익힌 분야에 한해 의료행위를 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며, 훈련되지 않은 분야에서의 의료행위를 면허를 가진 자가 행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이를 무면허 의료행위와 달리 평가할 이유가 없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특히 영상의학과는 초음파진단기와 같은 첨담의료장비를 이용해 영상을 획득하여 질병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의료법상 서양의학의 전형적인 전문진료과목으로서, 초음파검사의 경우 시행은 간단하나 영상을 평가하는 데는 인체 및 영상에 대한 풍부한 지식이 있어야 함은 물론, 검사 중에 발생하는 다양한 현상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므로 영상의학과 의사나 초음파검사 경험이 많은 해당과의 전문의사가 시행해야 하고, 이론적 기초와 의료기술이 다른 한의에게 허용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유 변호사는 "초음파의 경우 검사방법은 간단하다 할지라도 평가나 판독은 전문적 지식과 이해력이 전제돼야 하므로 그와 같은 요건을 갖춘 자만이 초음파검사를 할 수 있다는 취지하에 한의사에게 이를 허용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판단에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이라면 한의사에게 의료기기의 사용을 허가할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결정"이라고 밝혔다.
안압 정상인 녹내장 절반 넘어…안압측정기 맹신하단 치료시기 놓쳐
헌재가 불과 10개월 차이를 두고 골밀도 측정 초음파 사건에서는 전문성을 들어 한의사 사용 불가 결정을 내린 반면 안압측정기 등을 비롯한 안과 사건에 대해서는 해독에 전문성이 필요하지 않고, 보건위생상 위해를 발생시킬 우려가 전혀 없다는 의견을 낸데 대해 안과의사회는 "안압측정 결과만으로 눈에 관한 질환을 해석하면 보건위생상에 심각한 위해를 초래할 수 있다"며 안과의 전문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결정에 유감의 뜻을 표했다.
안과전문의로 한방대책특별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강승민 위원은 헌재의 결정문에 심각한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당시 헌재는 "녹내장에 대해 동의보감은 안압상승으로 인해 두통, 충혈 등이 발생한다고 녹내장(녹풍) 증상을 포착하고 있고, 녹내장의 진단을 명확히 하기 위해 안압측정기를 사용하더라도 결과의 해독이 필요없고, 자동으로 추출된 결과만으로 안압의 정상여부를 판단하는 점에서 아무런 위해가 없다"면서 "종래 한의학에서는 집게손가락으로 안구를 살짝 압박하여 그 저항의 정도 등을 가지고 안압을 측정하기도 하였으므로 안압측정기의 사용은 절진의 현대화된 방법으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강 위원은 "의료기기를 이용한 진단 과정이 환자에게 해가 없다 하더라도 잘못된 진단결과를 토대로 잘못된 치료를 하게 되면 환자에게 치명적인 위해를 주게 된다"며 "녹내장 환자의 절반 가량은 안압측정기로 측정하면 안압이 정상으로 나오는데 정상안압녹내장을 발견하지 못해 치료시기를 놓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결과판독에 전문적인 식견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헌재 결정에 안과의사들은 공분하고 있다.
판결 결과가 일관성 없이 들쭉날쭉하는 것에도 문제점이 적지 않다.
'한의사의 IPL 시술'(대법원 2014년 2월 13일, 2010도10352)의 경우 1심 재판부는 의료법 위반혐의로 유죄를 선고한 반면 2심은 경락에 자극을 주는 한방의료행위라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에 와서야 유죄로 결론이 났다.
의료인 출신 판사 인력이 적고 보건의학 분야의 전문성을 갖춘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재판부가 어디에 기준을 두고 판결문을 써 가느냐에 따라 결과가 180도 달라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의사출신인 노태헌(서울남부지법)·문현호(수원지법) 판사가 있긴 하지만 현재 지법 판사로 헌재나 대법원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IPL 대법원 판결에 의료계측 변호사로 참여한 정광현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변호사(법학박사)는 "대개의 경우 법률가는 의학적 전문지식이 그리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당시 대법원은 하급법원 판사들을 위해 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를 구분하는 판단기준으로 ▲이원적 의료체계의 입법목적 ▲당해 의료행위에 관련된 법령의 규정 및 취지 ▲학문적 원리 ▲당해 의료행위의 경위·목적·태양 ▲교육과정 등을 고려한 전문성 확보 등을 제시하기도 했다.
법정 공방 비효율적…영역다툼 지양해야
유화진 변호사는 "동일한 사안에 대한 대법원과 하급심의 판단이 다른 경우가 있듯이 의료기기에 대한 다양한 시각이 존재하고,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구체적 사실관계에 따라 판단의 결과는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날이 갈수록 의료와 한방간의 진료와 현대 의료기기 사용을 둘러싼 분쟁이 첨예하게 맞서면서 보건의료계를 바라보는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도 곱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법정 소송이 벌어지면 최종 판결에 이르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비용을 들어야 한다.
정광현 법무법인 지평 파트너변호사는 "의사와 한의사 면허의 경계선을 정하기 위해 법정 공방을 벌이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며 "행정당국의 행정적 제재조치나 형사처벌 등이 개입되기 전에 미리 의사와 한의사 대표들이 만나 자율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절차나 협의체를 만들었으면 한다"고 조언했다.
유화진 변호사는 "의료전문가로서 개별 사안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 근거에 따른 판결이 이뤄질 수 있도록 객관적인 자료를 축적하고 논리를 전개해야 할 것"이라면서 근거중심의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영역다툼의 분쟁을 지양하고, 바람직한 의료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소모적인 이원화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데 무게를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