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석 서울 강남구의사회장(옴므앤팜므성형외과)
필자는 경제학자도, 철학자, 사회학자도 아니다. 그저 서울 강남구에서 혼자 작은 성형외과를 개원하고 있는 대한민국 의사 중 한 명일 뿐이다. 대한민국에서 '의사의 가치는 얼마일까?' 늘 고민하는 민초 의사이기도 하다.
1991년 의사 면허증을 받은 이래 의사의 진정한 가치는 '자율성'에 있다고 늘 생각했다. 원래 의사는 아픈 사람을 진찰하고 해결책을 스스로 결정해 치료하고 그에 따른 책임도 진다. 그게 가장 기본적인 의사의 책무이자 권리이다.
대한민국 의사는 국민의 한 사람이지만 지난 30년간 전 국민 건강보험 체제 아래 정부가 정해놓은 지침대로 진단하고 처방하는 정부의 부속품처럼 살아왔다. 의료가 공공재라는 이유 하나로 엄연히 국민의 한 사람으로 헌법이 보장하는 자기 결정권과 행복 추구권을 포기하고 그저 경제적으로 좀 더 안정된 직업이라는 점에 만족하며 이것이 의사의 당연한 모습이라 여겼다.
요즘 의료계의 화두는 '문재인 케어'다. 의사의 반대와 상관없이 정부는 상당 부분 밀어붙이고 있다. 의사는 건보 재정에 대한 우려나 의료의 질적 하향 우려 탓에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지만, 국민은 의사를 그저 수입이 줄까 봐 걱정하는 이기적인 집단으로밖에 보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의사 역시 직업인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부분이 중요하지만, 문재인 케어를 반대하며 내세워야 할 명분은 경제적인 부분보다 다른 곳에 맞춰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대한민국 의사로부터 모든 것을 뺐어도 좋으나 단 한 가지! '의사의 자율성'만은 남겨 달라고 주장했으면 한다.
비급여라는 항목으로 그나마 유지되던 의사의 자율성이 '문재인 케어'로 완전히 사라지면, 그나마 지켜왔던 의사의 자존감 상실과 그로 인해 의료발전의 원동력이 상실돼 궁극적으로 대한민국 의료를 후진국 수준으로 되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의 자율성을 보존하기 위해 의료기관 '당연지정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지정제가 폐지되면 의사는 현재처럼 건강보험체제로 진료하던지, 아니면 건강보험과 무관하게 의사가 자율적으로 정한 진료원칙과 수가로 진료하면 된다.
많은 의사 동료들은 '이게 도대체 무슨 말도 안 되는 얘기냐?'고 할 수 있다. '도대체 어떤 환자가 비보험만 진료하는 병원에 갈 것인가?', '그런 병원 운영이 가능할까?' 걱정을 하는 분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의 의료시스템 아래 당연지정제가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99.9% 의료기관은 건보 체계에 머무를 것이며, 전체 한국 의료체계에 큰 혼란이 오거나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사무장 병원이나 부당·허위 청구가 사라지고 건보재정 청구가 줄어들어 건보 재정 건전화에도 도움 되며 전 국민 대부분이 가입하고 있는 실손보험이 활성화될 수도 있을 것이다.
3300원으로 인식되던 의사의 가치가 수만 원, 수십만 원으로 인식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용실이나 동물병원보다 낮은 수가로 인식되던 의사의 가치가 변하게 될 것이다.
지난 20년간 성형외과 전문의로 비보험 진료만을 한 진료경험과 일명 '명품'으로 불리는 고가 제품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에 비춰볼 때, 일반 치료영역에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된다.
물론 일부 지역이나 계층에 한정된 얘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도 이제는 그런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했다. 의사의 자율성 보장을 통한 의료발전뿐 아니라, 질병 치료에서도 국민이 더 좋은 의료서비스를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문재인 케어는 대세가 됐다. 어차피 추진된다면 의료계는 이를 내주고 과감하게 큰 것을 받는 빅딜을 했으면 한다.
앞으로 정부와의 협상이나 대화에서 '진료수가' 이야기는 그만하고 대신 변호사협회와 같이 의사도 개업을 할 때 반드시 의사회에 등록하도록 하거나 자율적인 회원 통제권 또는 당연지정제 폐지 등과 같이 의료의 틀을 바꾸는 정책의 변화를 요구했으면 한다.
의협은 정부가 호응하지 않으면 양심적 병역거부처럼 헌법소원을 계속 제기하거나 국회의원을 설득해 관련 법 개정에 나서는 등의 노력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