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진기 그대는 사랑하고 있나요?

청진기 그대는 사랑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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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8.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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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언휘 원장(대구 수성·박언휘종합내과의원/한국노화방지연구소 이사장)

박언휘 원장(대구 수성·박언휘종합내과의원/한국노화방지연구소 이사장)
박언휘 원장(대구 수성·박언휘종합내과의원/한국노화방지연구소 이사장)

불볕더위는 2000여명이 넘는 열사병 환자를 기록했고, 연일 계속되는 열대야에 폭염으로 인한 사망 환자가 27명에 달했다는 아나운서의 숨가쁜 얘기를 들으며, 진료를 마친 나는 어두운 거리로 나섰다.

건국 이래 사상 최고의 기록이 수립됐다는 보도와 더위로 겁먹은 거리에는 애완동물도, 사람도, 아니 지나가는 개미 한 마리도 없어 보일 만큼 어둡고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하지만 진작 내 가슴을  답답하게 하고, 숨을 잘 쉬지 못하게 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었다.

중국산 고혈압 약의 발암소식에 더불어 선량한 의사에 대한 폭행과 협박에 절규하며, 데시벨을 체크하던 어느 응급실 의사의 릴레이 반전의 눈물겨운 시도… 아니 그 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환자를 살려온 흉부외과 명의가 하루아침에 조기진단을 놓쳤다는 이유로 죄인이 되어 형벌을 받는 상황들은 지금 숨쉬기 힘든 나의 처지가, 마치 천식환자들의 고통을 이해하라는 신의 묵시 같은 생각마저 들어서 가슴 속은 더욱 뜨겁고 답답해져 옴을 느끼게 한다.

90세를 넘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두 할머니가 40도가 넘는 기온에 열사병으로 사망할 때에도 나처럼 이렇게 고통스러웠을까? 오직 슈바이처처럼 힘들고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살기로 작정해온 동해의 고도(孤島), 그 작은 섬 소녀의 꿈을 연민과 깊은 분노로 송두리채 앗아감을 느꼈다.

이열치열의 뜨거운 열정이 다시 그리운 날이다  
오늘은 내가 아끼며 보살폈던 환자 한 분이 홀연히 새로운 세상으로 몸을 바꾸어 떠나갔다.

암 선고를 받고도 죽도록 열심히 일만 하던 그녀는 휠체어에 몸을 태운 채로 후진을 위해 강의를 하러 다녔다.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공공기관의 장으로서 후학들을 위해 섭외까지 다니던 k대학의 여교수를 사람들은 이해 할수가 없다며, 아니 안타까운 마음에 비난 아닌 비난까지 하는 것을 보았다. 

대학병원 암 병동에서 퇴원 후 요양병원 전원을 위해 상의 하자던 남편도 뵐 겸 며칠 전 서울S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그녀를 찾았다. 이미 그녀의 의식의 반은 정상 범주에서 벗어난 상태였다. 혈압은 떨어지고 약물에 의존한 채로 뭔가가 불편한 듯 연신 얼굴을 찌푸리기만 하던 그녀를 보면서 의식의 90% 이상이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에 살포시 가슴에 손을 얹었다. 쾌유(?)를 위해 기도하는데, 찌푸렸던 얼굴이 평온해지면서 내 손 위에 그녀의 두 손을 포개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의식이 없을 거라고 판단했던 그녀가 조용히 내 기도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떠나오기 전 "사랑하는 교수님! 원도 한도 없을 만큼 최선을 다해  열심히 연구하셨고 예술작업 뿐 아니라, 후배교육, 마지막까지 남편 뒷바라지마저 하셨으니까 이젠 좀 쉬세요. 누가 뭐래도 전 교수님을 이해하고 존경해요"라고 하면서 '이것이 마지막 인사구나' 되뇌이면서 중환자실을 나섰다. 한 때 인생을 논하며 함께 모짜르트를 듣던 사람은 죽어 가고 기차시간에 쫓기며 허둥대던 차창에 비친 나 자신을 보는데 빗겨 가는 주마등같은 바깥 풍경들이 가만히 내게 물어왔다.

"언젠가 죽음이 그대를 부를 때, 그 때 과연 당신은 후회하지 않고 선뜻 미련 없이 따라나설 수 있을까요?"
답이 없다.
"어떻게 하면 잘 죽을 수 있을까?"
요즘 세계적인 대화록인 페이스북을 열면 그 속의 작은 네모상자는 내게 이렇게 묻는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화두처럼 어린 시절부터 묻고 또 물었지만 여전히 오늘아침 내게 또 묻고 있다.

나는 잘 살아가고 있는가?
어떻게 하면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숨이 막히는 이 더위도 시간이 흐르면 지나가게 되고 빨간 사과가 익어갈 때 쯤 이면, 그녀의 영정 앞에 놓인 철 이른 국화 한 송이가 아닌 빈 들판을 온통 뒤덮을 국화가 피는 진짜 가을이 오겠지.
우리 인생의 가을은 또 어떻게 맞이해야할까?
누가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잘 사는 것이냐고 내게 묻는 다면 나는 감히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많이 사랑하고. 많이 나누면서 사는 것입니다."
오늘도 나는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고 그들을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 중이다.
마지막까지 후진을 위한 작은 장학회까지 발족시키며 아름다운 생을 마감하고 우리 곁을 떠난 그 교수님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어 본다.

나 자신도 그저 살아 있음에 감사하며, 많이 사랑하고 사랑하는 그들과 좀 더 많이 나누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이 글을 읽는 그대들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보내는 남은 삶을 위한 나의 화두다. 
"그대는 지금 사랑하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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