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정부 주최 토론회 일방적 분위기...의협 "실패할 것" 지적
학계(필요성 강조), 여당·정부(조속 설립), 시민단체(더 늘려야)
더불어민주당이 주최하고 보건복지부가 주관한 국립공공보건의료대학원(이하 공공의대원) 설립 관련 국회 토론회가 설립 필요성이나 타당성을 검토하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당위성을 주장하는 장이 돼버렸다.
유일하게 대한의사협회가 "의료취약지 공공의료 공백 문제의 원인은 의료인력 부족보다는 수급 불균형이 원인"이라며 "규제와 통제를 통해 의료인력을 양성하려는 공공의대원 설립 강행은 부당하다"고 지적했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다.
11일 국회에서 열린 '바람직한 공공보건의료 인력양성 방안 정책토론회'에 참석한 학계·시민사회계·정치권·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의료공공성 강화와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를 위해 공공의대원 설립이 대안"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성종호 의협 정책이사는 공공의대원 설립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를 전하면서, 그간 학계·시민사회계·정치권·정부에서 공공의대원 설립 필요 이유로 제시한 주장들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했다.
성 이사는 우선 "의료취약지 발생이 의료인력 부족과 수도권 쏠림이라는 판단은 문제가 있다"고 선을 그으면서, "지역 간 의료인력 불균형 해답은 의사 수 증원이 아니라 의사들이 일할 환경 조성을 위한 지원"이라고 강조했다.
"지자체장이 바뀌면 보건소장 바로 그만둬야 한다. 지방계약직 4급으로 정년 보장이 되지 않는다. 직업적 안전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의사들이 지원하지 않는 것"이라며 "이번에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 보건소장의 3급 이상 일반직 승진 기회를 터줬다. 이런 식으로 의사들이 공공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외과·산부인과·흉부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에 의사가 안 가는 이유는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취직할 자리가 없다. 수익이 안 되니 병원경영자가 수익이 안 되니 뽑지를 않는 것"이라며 "공공보건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필요하면 자리를 만들어 주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지 의사 수만 늘린다고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보건소와 보건지소 90% 이상이 인근 1km 이내에 민간의료기관이 있다. 이런 보건소와 보건지소를 폐쇄하고, 의사가 필요한 의료취약지로 이전하는 전략적 결정이 필요하다"고 부연했다.
그는 특히 "정부와 정치권이 의료계 반대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성장, 교육 배경을 가진 의료자원을 확보하겠다는 이유로 강행했던 의학전문대학원 정책은 실패했고, 대부분 의대로 전환했다"면서 "공공의대원 설립도 마찬가지로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정책 실패를 공급자 탓으로만 돌리고, 규제하는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지 말라. 규제는 지원과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외과 의사는 수술을 원하고, 산부인과 의사는 분만을 원하는데 노인만 있는 지역에서 일하면 수술도 분만도 하지 못한다. 의료취약지 근무를 꺼리는 데는 의사들의 정체성 문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끝으로 "지금도 의과대학 교육시간 부족하다. 그런데 공공의대원 교육 과정이 이런 의대교육 환경에 녹아들 수 있을지 의문이다. 대부분 의학교육담담자들도 회의적 시각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 첫 번째 발제를 한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 우리나라 의료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전제했다. 정 교수는 "한의사를 포함한 우리나라 의사 수는 2011년 현재 인구 1000명당 2.1명으로 의사 인력은 15∼20% 정도 부족한 상황이고, 향후에는 더더욱 부족해질 것"이라며 "적어도 몇 년 내에 현재 3058명인 의대정원을 최소한 3600명으로 늘려야 필요한 의사인력 충원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의료계가 의대정원 증원에 반대하는 것은 적은 수의 의사들이 많은 수익을 올리겠다는 속셈"이라며 "(의료계의 이런 행태는)협박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두 번째로 발제한 임준 서울시립대 교수는 "필수 보건의료를 담당하는 전문의 인력의 지역 간 격차가 큰 상황에서 단순히 지역의 보건의료 인력 확충 차원에서 의사를 양성할 것이 아니라 지역의 필수 보건의료를 담당하면서 지역보건의료사업을 선도하고 전체적인 공공보건의료의 역량을 제고할 핵심 보건의료 인력의 양성이 요구된다"고 밝혔다.
시민단체도 이런 학계의 주장에 동조했다.
송기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은 "의료인력 양성은 임상진료를 중심으로 논의해서는 안 된다. 임상 이외에 임상연구·제약산업·보건의료행정·보건교육 등 사회 전반의 의료인 공급체계를 고려해야 한다"면서 "의료인력 공급 부족으로 인한 임금상승과 대형병원으로의 의료인력 쏠림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의대원 설립이 필요하다"면서 "양성에 최소한 10년 이상 장기간 소요된다. 제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송 정책위원은 "의대정원을 6000명으로 늘려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별로 공공의대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계를 제외한 모든 사회는 의료인력 증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고, 의사들을 제외한 모든 보건의료직역들도 찬성하고 있다"면서 "환자안전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의사인력을 대폭 증원해야 한다"고 의사인력 증원에 무게를 실었다.
정부와 정치권은 조속한 공공의대원 설립 추진을 약속했다.
토론회를 주최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원회 의장은 국회에 공공의대원 설립 관련 의료법 개정안을 발의하고, 내년도 정부 예산안에 공공의대원 설립을 위한 설계비가 반영됐다고 설명하며, 조속한 공공의대원 설립에 여당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김 의장은 지난 9월 공공의대원 설립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김 의장은 "의료공공성 강화와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라면서 "법안이 발의되고 예산이 반영돼 (공공의대원 설립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워낙 중요한 분야라 (법안을) 직접 발의했다. 이번이 절호의 기회다. 법안심사가 속도감 있게 진행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기동민 의원도 "속도감 있게 법안심사를 진행하겠다. 약속한다"고 말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차관은 "폐교된 서남의대 정원인 49명 정도를 정원으로 공공의대원을 설립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다. 여당과 교육부도 동의했다"면서 "2022년 개교를 목표로 차질 없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