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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DRG제대로 알고 대응합시다-민간 의존도

[기획특집]DRG제대로 알고 대응합시다-민간 의존도

  • 김영숙 기자 kimys@kma.org
  • 승인 2003.08.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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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의존도 높아 '재정 안정' 효과 미지수
DRG 전면 확대 필요한가?



보건복지부가 11월중 DRG를 전면 확대실시하겠다고 밝히면서 DRG가 또다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하고 있다.

복지부는 지난7월21∼25일 5일간에 걸쳐 각 지방별 DRG 지불제도 설명회를 갖고, 보완대책 외에 의료계의 의견을 적극 수렴하여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드러난 현상에 대한 땜질식 처방에 앞서 이 시점에서 과연 `DRG의 전면 확대실시가 필요하냐'는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야 할 때다. 또한 정부가 DRG 도입으로 얻고자 하는 정책적 목표가 과연 달성될 수 있을 지를 따져봐야 할 때다.

정부가 DRG 도입으로 얻고자 하는 목적은 `행위별 수가제도에서 의료비 상승 가속화에 대한 보완'을 첫 손 꼽을 수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진료량을 늘려야 수익도 증가하는 현행 행위별 수가제의 재정적 유인체계 하에서는 의료기관들이 낮은 수가로 인한 경영수지의 어려움을 비용절감보다는 서비스 제공량을 늘려 얻으려 하기 때문에 공급자의 자체 비용절감으로 재정적 안정을 도모하는 기전으로 바꿔 나가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될 점은 DRG지불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대부분의 국가들의 경우 정부가 직접적으로 재원 지원을 함으로써 그 부담 역시 직접적으로 느끼고 있는 경우라는 점이다. 대만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국가들이 공공병원을 대상으로 하거나 미국과 같이 메디케어 등 일정 계층을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건강보험의 재정 일부(지역의보)를 국가가 부담하고 있다고는 하나 대부분은 보험가입자가 보험료를 내서 운영하고 있으며, 이들이 좋은 서비스를 받겠다는 것을 막고, 정부가 강제적용하려는 것은 논리적으로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정부에서는 특히 행위별 수가제도로 인한 의료비 상승을 문제삼고 있으나 이 경우는 아직 우리나라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OECD 국가의 의료비 지출규모가 GDP의 8.4%(2002년)인데 비해 한국은 5.9%에 불과한 것. 이선희교수(이화의대 예방의학교실)는 “DRG 지불체계를 도입한 대부분의 국가들이 OECD 선진국들로서 의료비의 효율적 관리가 주된 정책과제인데 비해 아직 한국은 OCED 국가들 중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이 하위 수준에 머물고 있어 적정수준의 의료비 투입에 정책적 우선순위가 주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국내의 취약한 공공의료도 DRG 시행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적절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2000년 말 한 연구에서 “DRG 시행을 위해서는 우리나라 보건의료제공체계의 특수성에 대해 충분한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전제한 바 있다. 다시 말해 의료공급의 민간의존도가 높은 국가에서 DRG 지불제도를 도입하는 경우 목표효과에 비해 오히려 부작용이 클 것이 지적되고 있다.
민간병원은 속성상 이윤극대화를 추구할 수 밖에 없는 경제주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요양기관을 유인하기 위해 행위별 수가 보다 높게 설계되고는 있으나 결국 비용을 줄이기 위해 시장가격 이하로 수가가 결정되면 민간병원은 특성상 이윤을 얻기 위해 노력하게 돼 오히려 비용이 증가하는 사태가 생길 것이라는 우려다. 즉, 정부가 목적한 `재정안정'은 물건너갈 공산이 크다.

이런 부작용을 고려, DRG지불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국가들은 민간보다 공공의존도가 높은 나라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영국이 96%, 프랑스가 70%, 호주 70%, 캐나다 70%, 미국 33%로 미국을 제외하고는 공공병원의 비중이 병상수 기준으로 70%가 넘는 공공의료제공체계를 위주로 한 국가들로 나타나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공공의료기관 비율이 23.8%에 불과해 공공병원에 대해서만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점을 거울로 삼아야 한다.

또한 DRG지불제도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들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의료서비스의 질저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도 의문이 아닐 수 없다. 83년부터 메디케어(65세이상 노인 및 장애인 대상 의료보험)의 입원진료비 지불방식에 DRG를 도입하고 있는 미국에서 조차 서비스 질저하와 조기 퇴원 등의 부작용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미국 등에서는 이러한 부작용을 보완할 수 있는 기반여건(평가)이 갖추어져 있으나 국내는 평가 시스템 등이 취약한 상태라서 의료서비스의 질저하는 그대로 의료소비자들의 불편, 의료계와 국민간 불신이 심화될 것이란 점이 우려되고 있다.

여기에 연세대 정우진교수(보건경제학)는 “DRG는 약가정책에서 부정합이 발생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DRG를 실시하는 경우 비용절감 동기를 갖고 있는 요양기관은 입원부문에서는 약을 싸게 사서 활용토록 하고 있지만 이것은 현재 약가마진을 인정하지 않는 정책과 모순이 되기 때문에 정책순응도가 극도로 낮아진다는 이야기다.

올해 2월 참여정부가 출범한 후 복지부는 `선택 적용' 방식에서 `당연적용' 방식으로 전환 추진계획을 대통령 인수위원회에 보고하면서 DRG의 전면실시를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5년간의 시범사업에서 제기됐던 문제점·부작용은 현재까지 정확하게 해결되지 않은 상태이며, 시범사업의 원자료를 공개하지 않은 채로 이 제도를 강행하려 하고 있다. 정부는 의료계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선 시행후 구체적 사례를 따른 수정보완이 가능하다”는 입장만을 되풀이 하고 있어 의약분업의 전철을 밟고 있다는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 어렵다.

연세의대 조우현교수(예방의학교실)의 지적대로 DRG 지불제도의 실시는 “진료비 지불 시스템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DRG의 도입은 전체 의료보험 수가체계 개혁의 틀 속에서 신중히 검토되어야 한다. 현행 행위별 수가체계의 여러 문제점을 정비하면서 단계적으로 DRG 지불제도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타당하다.

정우진 교수는 DRG를 실시하고 있는 나라들의 대부분이 공공의료체계에 국한해 실시하거나 미국과 같이 특정 계층(노인)에 실시하고 있는 점을 들어 국내에서도 “공공병원과 같이 병원 일부, 만성 노인성 질환 등 특정 질환에 한해 실시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의약분업은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면서 대통령 인수위의 100대 과제로 채택되면서 의료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됐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 `최대의 실정'으로 기록됐다. 실적주의에 근거한 정책 실패의 대표적 예이다. DRG 역시 여건이 성숙되지 않았다면 실적주의의 환상에서 빨리 벗어나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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