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침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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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지태 고려의대 명예교수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9.12.08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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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태 고려의대 명예교수

한 때 히트했던 옛날 유행가에 설운도의 '나침반'이란 가요가 있다. 종로로 갈까요, 영동으로 갈까요, 차라리 청량리로 떠날까요. 많은 사람 오고가는 을지로에서….

4년으로 할까요? 3년으로 갈까요. 차라리 2년으로 줄일까요? 요즘 의학계에는 이런 말이 떠돌고 있는 중이다. 아직 확인은 안 되고 있지만, 필자가 알기로, 내과는 3년으로 수련기간을 줄인 이후, 3·4년차 동시에 수련이 끝나면서 생기는 인력 공백을 어쩌지를 못해 고민하고 있고, 외과는 3년으로 줄이면 전공의 충원이 늘어날 것을 예상했는데 그 예상이 심하게 빗나가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소아청소년과도 전공의 수급이 쉽지 않자, 3년으로 줄이느냐 4년으로 그냥 갈 것이냐 눈치를 보고 있고, 가정의학과는 수련 기간을 늘리는 작업이 있다는 소문도 있다. 전문의 말고 소화기내과 분과전문의도 배워야 할 것이 많아 수련 기간을 늘리기로 학회가 결정했다고 한다.

그런데 수련기간을 길게 하고 짧게 하는 것이 무엇을 근거로 결정되는 것인지 애매모호해 보인다. 또 학회가 이 문제를 장시간의 고민과 검토를 거쳐 시행하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평생 대학 교수로 은퇴한 필자는 사실 대학 교육 기간을 왜 4년으로 정했는지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 의과대학은 왜 6년으로 기간을 정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그동안 지속되어 왔던 방식을, 이제 와서 만일 대학 교육 기간을 3년으로 줄이는 안이 이야기 된다면 가장 먼저 무엇부터 해야 할까? 대학 교육의 유효성도 논의돼야 할 것이고, 대학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검토가 필요할 것이다.

또 대학교육의 목표는 무엇인지도 토의되고, 현재의 대학 교육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3년으로 줄여야하는지, 3년으로 줄인다면 대학에서 가르치던 것 중 무엇을 빼고 무엇을 더할지에 대한 깊은 논의와 합의가 필요할 것이다. 별로 배우는 것도 없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는 것도 이유는 될 수 있겠다.

어쨌거나 교육 기간의 단축이나 연장에 앞서서 논의하고 합의해야 할 사항이 많다는 것이다.

필자는 소아과 3년 트레이닝을 받은 3년짜리 소아과전문의다. 내 상급 년차까지 4년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 때야 교육 받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기간을 어찌하는지 필자가 정할 사항이 아니었다.

그냥 3년 만에 시험 볼 수 있다고 하고, 그 고생스런 당직 생활도 한 해 줄었으니 마구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3년차 4년차가 함께 시험을 보고 거의 100% 합격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다가 또 무슨 일이 생겼는지는 몰라도 4년으로 다시 수련기간이 늘었다. 

그런데 그 때 하나 의문이 들었던 것은 3년차와 4년차가 배운 내용에 차이가 있는데 같은 시험을 보고 100% 합격했다면 3년이면 충분한 수련기간을 쓸데없이 4년 늘려 잡았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3·4년차가 크게 준비 없이 함께 시험을 봤다면, 수련이 1년 부족한 3년차의 탈락이 높아야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3년차를 위해 수준 낮은 시험문제를 출제했던가. 그 후 3년 수련 받은 사람이 능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개업을 못했다거나,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데 아주 문제가  많았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니 3년으로 전문의 과정을 끝낸 사람도 충분한 전문의 자격과 실력이 있었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슬그머니 4년으로 환원이 되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남들은 다 4년인데, 3년으로 하니 남들 보기 부끄러워 그랬다고도 한다. 설마 그랬을 리야 있었겠느냐마는….

어쨌든 필자가 의료계 몸담고 일하는 동안 여러 과가 수련기간을 줄이기도 하고 늘이기도 했는데, 무슨 이유 때문에, 어떤 과정을 거쳐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는 분명하지 않은 것이 확실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전공의 수급이 원활하지 않으니까 소아청소년과학회 내부에서 수련 기간을 줄여야하지 않을까하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수련기간과 전공의 지원이 상관관계가 있어서 이를 줄여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수련기간을 줄이고자 한다면, 지금 행하고 있는 수련 교육 중에 줄여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 왜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명확한 이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전문의는 전문의다운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게 교육을 받아야하고 전문의답게 행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한다.

전문의다운 일을 하려면 절대적으로 배워서 익히고 익숙해져야 할 지식과 술기가 있고, 빈도가 낮고 난이도가 아주 높아 개인병원에서는 거의 하는 일이 없다면 그런 것은 교육 과정에서 빼는 논의가 있고 합의가 있은 후에 교육 프로그램을 확정하고 3년으로 갈지 4년으로 할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소아청소년과 영역에서 개인병원에서 가장 적게 행하는 진료 술기는 무엇일까? 미숙아 치료일 것이다. 그 외에 또 무엇일까? 암환자 진단과 치료일 것이다. 그럼 이런 것을 수련 기간에서 제외하고 소아청소년과 일반 수련이 끝난 전문의를 대상으로 심화과정을 시행해 분과전문의 또는 세부전문의를 수련하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동의할 교육병원의 지도 전문의가 있을까하는 것이 나의 의문이다. 왜 동의를 못할까? 그럼 신생아실은 누가 보나? 암환자는 누가 보나? 이런 반발이 예상된다. 그러나 그것은 분과전문의 수련과정에 있는 사람과 분과전문의가 담당해야 할 분야 아닌가? 고비용 인력이 투입돼야 한다면 병원 경영은 어떻게 되는가? 병원 경영까지 걱정해 가면서 수련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가? 그것은 병원 경영자들의 문제인데 그들은 입 닫고 가만히 있는 것은 감당할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교육의 문제와 경영의 문제를 연관 시켜가는 것은 교육의 질을 낮출 수 있다고 믿는다.

4년으로 할까요? 3년으로 갈까요? 차라리 2년으로 줄일까요? 나는 이것은 앞뒤가 틀린 일이라고 믿는다. 무엇을 가르칠까요? 무엇을 뺄까요? 그래도 될까요? 이런 깊은 토의가 선행되어야 가능한 일이 몇몇 대단한 의지를 가진 학회 운영진에 의해 감행되고 있는 것은 무엇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 의료계는 나침반이 잃었던가, 고장난 것을 끼고 앉아 있는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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