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정연, '의사인력 증원 과연 필요한가' 토론회
의사인력 수급, 보건의료·건강보험정책 연계 설계돼야
독립적 면허관리기구 필요…정부-의료계 신뢰 회복 중요
의사 수는 과연 부족할까. 급속한 인구감소가 예측되는 상황에서 의사 증원은 바람직할까. 의료기관 종별, 지역별 의사 불균형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OECD 의사 수 평균지표는 '전가의 보도'일까.
보건의료인력 관련 주요 정책 결정 때마다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의사 증원에 대해 다각적으로 진단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25일 용산임시회관 대회의실에서 '의사인력 증원 과연 필요한가' 토론회를 열었다.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은 토론회에 앞서 "최근 정부가 의대증원과 공공의대와 관련한 논의를 다시 진행하는 등 의사인력 증원 정책을 추진하고자 하는 의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며 "끊임없이 논쟁의 원인이 되고 있는 의사부족 문제에 대해 다양한 방법의 연구들을 통해 난제 해결을 위한 적정성과 방향성을 모색하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첫 주제발표를 맡은 신영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건의료인력의 적정수급을 위하여' 발제를 통해 의사 인력 수급 현황과 불균형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폈다.
의사인력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서는 ▲의료 질 담보를 통한 국민 건강권 확보 ▲직역간 업무범위 구조조정 등을 통한 비용효과적 접근 ▲의료자원·보건·건강보험 정책 등 각 영역간 조율을 통한 시너지 제고 등을 기본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먼저 의사 인력에 대한 국제 비교에는 단순한 활동인력, 면허 인력의 양적 수치 비교 뿐만아니라 의료체계·지불보상 방식·의료공급 주체 등 다양한 요인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선임연구위원은 "민간주도 의료공급 국가(한국·일본·프랑스·미국 등)의 보건의료 인력 수가 국가 주도 국가(노르웨이·스웨덴·덴마크)에 비해 적다"며 "조세방식 국가들은 지불보상 총액이 사전에 결정됨으로써 행위별 수가제 적용 국가들에 비해 의사의 유인동기가 낮아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의사 인력 수급 정책에는 질병 발생 및 유병률, 건강 패턴 등 다양한 의료 욕구와 함께 노동시장 형태, 정책 변화 등도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의사 인력 총량과 불균형 문제도 진단했다.
신 선임연구위원은 "의사인력 총량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지만 지역간·진료과목간 불균형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인구감소가 예측되고, 의사 양성에 긴 시간이 소요되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는 의견이 높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인기과에 대한 지원 기피 현상은 향후 전문적인 의료공급문제로 이어져 국민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의료기관 종별·지역별 의사 불균형도 심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의사 인력을 총량 관점에서 증가시키기 보다 부족한 영역에 집중해 증가시켜야 한다는 판단이다.
의사 수급 불균형에 대한 해결방안도 모색했다.
신 선임연구위원은 "보편적 의대정원 확대는 대도시 중심 쏠림 현상 가속화가 예상되고 의료사각지대 해소에 도움되기 보다는 비용 촉발의 새로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지역의사선발제도·공공장학의사제도·의공학자제도 등에 대해 지금까지 제기된 문제점을 개선한 후 도입하는 것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필요한 영역에 신택과 집중을 통해 의사 증원 문제에 접근하자는 인식이다.
신 선임연구위원은 "보건의료인력은 공급을 충분히 해도 시장기전을 통해 결정되는 현 체제에서는 지방 취약지역·응급·감염 등 일부 영역에서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보건의료인력 확충 정책은 보건의료정책·건강보험정책과 연계해 설계되지 않으면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발제를 마무리했다.
이어진 발제에서 박정훈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원은 '우리나라의 합리적 의사 수에 대한 평가' 발표를 통해 의료전달체계·실손의료보험체계·인구 증감 및 인구 구조 변화 등 의사인력 수요·공급 추계의 한계점을 짚고, 의사인력 추계 분석을 전담하는 면허관리기구 설립도 제안했다.
박 연구원은 "공급요소 측면에서는 정부 정책에 대한 변수, 고용현황의 고려가 부족하고, 수요 측면에서는 사회경제적 특성·인구집단의 건강상태·역학에 대한 고려가 부족하다"며 "근무일수와 생산성을 고려하지만, 근무형태를 고려하지 않고 있어 개인의 노동생산성 모델에 반영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의사인력 수급 추계 연구결과도 공개했다.
박 연구원은 "우리나라는 2029년 인구의 자연감소가 시작되지만 의사인력은 2038∼2039년까지 급격히 증가한다"며 "변수에 따라 다르지만 최대치를 반영하면 2035년에는 1만 5866명의 의사 수 과잉이 추계된다"고 설명했다.
'적정 의사 수' 산정에 대한 생각도 밝혔다.
박 연구원은 "국가별 인구구조·국민건강 수준·의료제도·인프라·접근성·재정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적정의사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은 없다"며 "OECD 평균지표만으로 의사 증원을 추진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방 의료기관의 간호인력 구인난 해소를 위해 2008년부터 수도권 밖 지역 간호대학 정원을 증원했지만 정책의도대로 간호인력의 지역불균형 해소는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성공적인 의사인력 수급계획 수립을 위한 면허관리기구 설립 필요성도 제기했다.
박 연구원은 "미국 'HRSA', 캐나다 'CIHI', 네덜란드 'NIVEL' 등 선진국에서는 면허관리기구를 통해 의사인력 추계 분석과 장기적이고 일관된 수급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며 "지역불균형 해소를 위해서는 의료취약지에서도 의사인력이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근무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정부의 인식전환을 촉구했다.
장성인 연세의대 교수는 '의사인력 추계와 의시인력 문제' 발제에서 '문제'에 대한 진단이 명확해야 '적정' 수준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있다며 드러난 '문제'의 해결방법에 대한 논의를 펼쳤다.
장 교수는 "같은 연구자의 연구에서 2014년 보고서에는 2030년 4000명의 의사부족이 발생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2년 후엔 부족 숫자가 7000명으로 늘었다"며 "통계를 이용할 때 이용하는 사람이 작위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단순한 OECD 자료만으로 한국의 상황을 진단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의사수 부족 근거 자료로 쓰이는 통계가 의도에 따라 다르게 이용된다는 지적이다.
장 교수는 "OECD 자료에서 2018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산부인과 전문의수 통계는 한국(0.12명)이 미국(0.16명)보다 적다. 이를 근거로 환자 진료에 문제가 있고 지역 불균형을 지적하며 필수과를 늘리자고 이야기한다"며 "그러나 더 정확한 비교가 되는 출생아 1000명당 산부인과 전문의 수를 보면 한국(17.3명)이 미국(15.5명)보다 월등히 앞선다"고 토로했다.
다른 사례도 들었다.
장 교수는 "OECD 2013년 의료보장률 자료에서 한국(59.1%)이 미국(48.9%)보다 높자 미국식 사회보장방식은 안 된다. 영국 방식으로 가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며 "그러나 2019년 자료를 보면 오바마케어 도입 이후 미국(84.8%)이 한국(60.8%)보다 의료보장률이 높아지자 그런 얘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공공병원·지역의료 강화 정책은 어떻게 하면 양질의 의료인력을 공공병원이나 지역으로 갈 수 있게 하는 지에 모아져야 한다는 인식이다.
장 교수는 "의사 증원을 하려면 그 방법이 최우선인가에 대해 먼저 생각해야 한다. 시설과 장비를 아무리 늘려도 사람이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다"며 "강제하기 보다 스스로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물이 흘러넘쳐서 흐르게 하는 방식은 잘못 됐다"고 강조했다.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이 좌장을 맡은 패널토의에는 성종호 의협 정책이사·한희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허윤정 아주의대 교수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성종호 의협 정책이사는 의사 증원으로 불균형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성 정책이사는 "의료기관·전문과목·지역 불균형 문제가 의사 인력을 늘린다고 해결될 수 있을까"되묻고 "지역과 필수의료는 떼려야 뗄 수 없다. 필수의료를 담당하는 의사가 지역에서 개원할 수 있도록 지역의료수가를 신설하고 필수의료 전문과목에 대한 유인책과 보상기전이 통합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의사로서 정체성을 갖고 자부심을 지닐 수 있게 동기를 부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희철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은 정부와 의료계의 파트너십 회복과 함께 의사양성과정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한희철 이사장은 "일본은 2004년 이후 2년간의 졸업후 임상수련 의무화하고 이 과정을 국가가 책임진다"며 "국내 의대에서는 의대생 교육과정 변화를 통해 의사의 사회적 책무성을 제고하고 공공의료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한 교과과정 개발에 착수했다.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에 관심을 갖는 의사 양성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의사정원문제는 보다 전문적인 별도 기구나 상설위원회 통해 정책을 수립해야 하고, 탄력적으로 정원을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하다"며 "공공의료·지역 불균형 문제는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국민건강이 전제된 의료 정상화를 목표로 의사 정원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윤정 교수는 신뢰 회복을 화두로 던졌다.
허 교수는 "최근 일련의 상황에서 정부와 의료계 간 엄청난 인식의 차이를 느낀다. 과연 어느 지점에서 만날 수 있을지 걱정된다"며 "신뢰회복이 먼저다. 국민 건강을 위한 파트너십을 회복하고 대화의 끈을 놓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인력 문제는 수의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나 의료계 모두 불균형 문제에 공감한다면 여러 의제를 격의 없이 논의해야 한다"며 "모든 정책이 하나의 대안으로 해결될 수 없듯이 의사인력 문제도 합리적 토론을 통해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