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인백색 이재헌 활동가가 전하는 국경없는 의사회 [Ⅱ]

백인백색 이재헌 활동가가 전하는 국경없는 의사회 [Ⅱ]

  • 박은동 의협신문 명예기자(연세의대 본과 4년) edpark97@yonsei.ac.kr
  • 승인 2022.04.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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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생명에게 '소중한 희망의 등불'
등불 밝히는건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와 지지하는 사람들 때문에 가능

ⓒ의협신문
ⓒ의협신문

 

이전 이재헌 활동가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관심이 생긴 독자들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막연한 호기심만 갖고 있는 분들도 있다. 기자 또한 이재헌 활동가를 인터뷰하기 전까지는 국경없는의사회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멋진 단체'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사소하지만 현직에 계신 분이 아니면 누구에게도 물어보기 어려운, 그런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인천공항에서 구호 현장까지는 어떻게 갈 수 있을까? 의식주는 어떻게 해결할까? 한 번 가면 얼마나 오랫동안 현장에 있어야 할까? 한 번쯤 궁금할 수는 있지만 대답해 줄 사람이 없는 그런 질문이다. 이번 기사에는 이재헌 활동가가 알려주는 '사소하지만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국경없는의사회의 모든 것'을 담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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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현장에서 수술을 집도하고 있는 이재헌 활동가.ⓒ의협신문

'국경없는의사회' 소속 활동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의협신문] 박은동 명예기자는 지난 2월부터 어렵게 이재헌 활동가를 섭외해 취재에 성공했다. 어려운 기회인 만큼 이번 인터뷰는 4월 26일 이재헌 활동가의 개인적 체험에 대한 이야기(Ⅰ)에 이어 이번 호에서는 국경없는의사회의 단체활동에 대한 궁금증을 담은 이야기(Ⅱ)로 구성해 연속 게재한다. 

Q. [의협신문] 독자 중에도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 있을 것 같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은 어떻게 시작할 수 있나요?

국경없는의사회 활동에 대한 지지가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관심이 깊어지면 현장에서 함께 일해보고 싶은 생각도 들거라 생각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 구호활동가의 인력 풀에 들어오기 위해서는 몇 가지 기본 조건이 있어야 하는데요, 일반적으로 의사의 경우 전문의 자격증 취득 후 2년 이상의 임상경험이 필요합니다. 해외에서 다국적 팀의 멤버로 활동하는 만큼 다양성과 포용성의 자세가 필요하겠습니다. 언어는 영어나 프랑스어로 일상 대화가 가능할 정도라면 무리가 없습니다.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가 되려면?
의사인 경우 전문의 취득 후 2년 임상 경험 필요
다양성·포용성 기본 소양에 영어·프랑스로 일상 대화 가능해야
파견 기본 원칙은 매칭시스템..응급 상황땐 사무소에서 직접 요청
의사회 최대 강점은 '로지스틱', 의료인:비의료인은 50대 50 
외과계 의사는 2개월 단위, 내과계는 6개월∼1년 단위로 파견


Q. 국가 간 갈등이나 자연재해처럼 국경없는의사회가 필요한 순간은 예기치 못하게 발생하는데요. 국경없는의사회에서 파견 요청을 받으면 반드시 현장으로 가야하는 건가요? 혹은 본인이 활동에 참여할 시기와 활동 장소를 선택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매칭 시스템으로 파견이 결정됩니다. 활동가가 파견이 가능한 시기를 사무소에 알리면, 사무소에서 프로젝트 현장으로 서류를 보내기도 하고, 현장에서 인력을 구해달라고 사무소로 연락이 오기도 합니다. 매칭되면, 사무소에서 활동가에게 국가, 지역, 필요성, 활동 시기 등 개요를 알려주고, 참여 여부와 기간을 조율해서 최종 결정을 합니다. 활동가 본인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고 다음 매칭을 요청할 수 있습니다. 물론 국경없는의사회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국가 중 대한민국 여권법에 따라 출국이 금지된 곳들도 있습니다. 2022년 3월 기준으로, 이라크, 소말리아, 아프가니스탄, 예멘, 시리아, 리비아, 필리핀의 일부 지역이 이에 해당하고, 최근 우크라이나가 추가됐습니다. 

매우 드물게, 활동가가 가능한 시기로 등록하지 않았는데도 사람이 정말 급하게 필요할 때는 사무소가 먼저 연락하기도 합니다. 2018년 팔레스타인 프로젝트가 그런 경우였습니다. 2018년,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사실상 예루살렘이 이스라엘 영토임을 인정하겠다는 뜻이었기에,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이스라엘 접경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했습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시위가 집중됐는데, 이스라엘군이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유혈사태가 뒤따랐습니다. 3월 말부터 9주 동안 128명이 사망하고, 1만 3000여명이 다쳤으며, 이 중 3500여명이 총상 환자였습니다. 매주 대량 사상자가 발생하는 상황이라, 국경없는의사회에서는 전 세계 회원 중 외상 수술과 관련 있는 회원들에게 급하게 연락을 돌리며 지원을 요청했습니다. 짧게는 1주의 기간으로 다녀가는 외과 의사도 있었고, 저는 2주의 기간으로 단기 파견을 다녀왔습니다. 

Q. 국경없는의사회의 구호 현장에 가야 할 때는 교통편을 마련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직항 같은 건 상상하기 어려운데요. 개인이 교통편을 구해 활동 현장으로 들어가게 되나요?

현장까지의 이동은 모두 국경없는의사회가 담당합니다. 국제공항에 내리면 국경없는의사회 랜드크루저가 대기하고 있습니다. 아주 깊은 오지로 들어가는 경우에는 자체 경비행기로 이동하기도 합니다. 국경없는의사회의 큰 강점이 바로 로지스틱입니다. 인적, 물적자원 운송을 담당하는 팀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의료인과 의료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 또한 구호의 일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국경없는의사회는 의료인과 비의료인의 비율이 거의 반반 정도로 구성돼 있습니다. 열악한 환경이나 정세가 불안정한 현장에서 프로젝트를 체계적으로 진행하려면, 의료 전문가뿐 아니라 비의료 전문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식수, 건축, 전기, 통신, 컴퓨터, 법률, 행정 등 다양한 분야가 있고, 각 프로젝트의 특성에 맞는 인력이 배치됩니다. 예를 들어, 요르단 람싸에서는 시리아 환자를 요르단에서 치료하기 위해 요르단 정부와의 협의를 끌어내는 법률 파트와 수술실 새 단장을 하는 건축파트가 프로젝트의 주요 부분이었습니다. 

Q. 현장에서 얼마나 오래 일을 하게 되나요? 그동안 의식주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합니다.

프로젝트 특성에 따라 다른데요, 외과계 의사의 경우 보통 2개월 단위로 파견을 갔다 옵니다. 응급수술이 많기 때문에 체력 등을 생각해서 2~3개월 단위로 교체하면서 프로젝트를 운영합니다. 반면, 비교적 안정적인 현장에서의 내과계 의사는 보통 6개월~1년 단위로 파견을 갔다 오며 프로젝트를 중장기적으로 이끌어갑니다. 활동가들은 보통 단체숙소에서 합숙합니다. 보통 1인 1실을 배정하기는 하나 긴급 프로젝트일 경우에는 한 방에 서너명이 함께 투숙하기도 합니다. 식사는 프로젝트에 따라 다를 텐데요, 제가 다녀온 프로젝트는 비교적 규모가 커서 현지 가사도우미가 저녁 식사를 준비해 줬습니다. 저녁에 차려놓은 음식으로 식사하고, 남은 것은 아침으로도 먹고, 점심으로 싸서 가서 먹습니다. 그 외 숙소에 콘플레이크나 우유, 요거트 등이 있었습니다. 주말에는 밖에 나가서 사 먹거나, 사다 놓은 식자재로 요리해서 먹었습니다.

ⓒ의협신문
 2016년 이재헌 활동가의 첫 현장요르단 람싸에서 함께 일한 동료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의협신문

Q. 국경없는의사회 파견은 비정기적인데요. 활동하기 위해 포기해야 할 것이 많을 거 같습니다.

활동가로서의 삶은 평범함이 주는 안정감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일을 할 때도 익숙한 동료들과 함께하기보단, 활동 기간이 끝나고 교체되는 현장 활동가들과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입니다. 게다가 다른 단체들이 들어가기 꺼리는 불안정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것도 스트레스로 작용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구호 활동에 뛰어들 때는 일상과의 균형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외과계는 짧고 굵게 현장에 다녀오는 편이지만 그래도 보통 2개월 정도는 다녀와야 합니다. 그래서 같은 직장을 꾸준히 유지하기 어려운 점이 큰 고민입니다. 국경없는의사회에서 나오는 급여가 아예 없지는 않지만, 경제적인 부분에서 긴축이 필요하고, 적금도 몇 개는 깨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현장에서 얻는 보람, 그리고 경험을 통한 개인적 성장이 저를 다시 구호 현장으로 향하게 하는 거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국경없는의사회에 관심이 있는 독자분들께 한마디 부탁드리겠습니다.

안타깝게도, 분쟁과 참사는 아직도 많은 곳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덮쳐오는 자연재해, 그리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끔찍한 재해인 무력 분쟁은 지금도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줍니다. 의료가 세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의료는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생명에게는 소중한 희망의 등불이 아닐까 합니다. 이 등불을 밝히는 것은 국경없는의사회 활동가뿐 아니라 지지해주시는 수많은 분이 있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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