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영 의원, 12일 '생애 말기 돌봄 체계화' 토론회 개최
김이연 이사 "조력존엄사 입법 시기상조…생명경시 풍조 확산 우려"
보건복지부, 조력존엄사 법제화 신중 검토 "논의 더 필요해"
의료계와 환자단체가 국민의 생명권과 행복권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안락사의 유형 중 하나인 조력존엄사를 입법화하기보다 질 높은 생애말기 돌봄의 체계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보건복지위원회)는 8월 12일 국회에서 '안락사 허용보다 더 시급한 과제, 생애말기 돌봄 체계화'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 앞서 김현숙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장은 축사를 통해 의사조력자살을 조력존엄사로 지칭하며 입법을 추진하는 것과 관련해 우려를 표했다.
김현숙 회장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일상 회복이 조금씩 이뤄지고 있지만 호스피스 기관들의 복구는 더디고, 고질적인 인력 및 재정문제로 기관 폐쇄를 하는 곳이 생기고 있다"며 "이런 상황 속에서 의사조력자살의 허용을 골자로 하는 연명의료결정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존엄한 임종을 위한 제도적 개선에 앞서 조력존엄사 입법을 추진하는 것은 심각한 우려점이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보장을 위해 국가와 사회의 책임을 살펴보고 제도적인 개선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며 "호스피스·완화의료의 이념을 뒷받침할 수 있는 체계적인 생애말기 돌봄 제도의 확대와 정착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김대균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 기획이사는 '생애말기 돌봄의 현황, 호스피스·완화 의료를 중심으로'라는 주제로 발표하며 임종을 맞이하는 생애말기 국민의 현주소를 짚었다.
김 이사는 "한국인이 생각하는 좋은 죽음이란, 집에서 가족과 함께 맞는 죽음, 고통 없는 편안한 죽음, 주변에 부담을 주지 않는 죽음, 의미 있는 행복한 삶 이후 죽음 등 크게 4가지로 정의할 수있다"며 "다만, 환자의 77%가 의료기관에서 생을 마감하는 국내 상황에서 의료기관 대부분에서는 임종실이 설치되어있지 않아 간호사 처치실에서 환자가 임종을 맞이하는 경우가 많고, 요양기관은 가족들 왕래 없이 지내다 임종 이후 가족들이 방문하는 형태로 이뤄진다. 생애말기 환자에 대한 돌봄의 질은 낮고 배려는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강정훈 교수(국립경상대병원, 혈액종양내과)는 의사조력자살과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에 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발표를 이어나갔다.
해당 설문조사는 전국 만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7명을 대상으로 7월 27일부터 8월 5일까지 10일간 진행됐다.
강 교수는 "응답자 중 60.0%가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가 시행되고 있음을 모른다고 답했으며, 응답자 중 61.1%가 회생의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와 그 가족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체계가 부족하다고 응답했다"며 "존엄한 죽음을 위해서는 간병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지원체계 마련 28.6%, 의료비 절감 등을 포함한 경제적 지원 26.7%, 호스피스·완화의료 서비스의 확충 및 지원 25.4% 순으로 나타났다. 의사조력자살 합법화의 필요성은 13.6%로 적은 수치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의사조력자살 법제화 논의 이전에 호스피스·완화의료 제도 확대가 우선해야 한다는 응답도 58.3%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끝으로 설문조사 결과를 분석하며 "어떤 환자가 질병에 시달려 죽고 싶다고 말했을 때, '고통스러워하니 자살을 도와주겠다'는 대답과 '고통을 덜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도와줄 테니 죽지 마세요'는 대답 중 어떤 걸 선택해야 하겠나?"고 질문하며 "이는 굉장히 상식적인 질문"이라고 조력존엄사를 비꼬았다.
대한의사협회도 조력존엄사의 입법화에 대해 강력반대 입장을 보였다.
김이연 의협 홍보이사는 이날 토론자로 참석해 "죽음에 대한 권리를 강조한 측면과 윤리를 강조한 측면에서 사회적 논란이 지속하는 등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법제화는 시기상조"라고 짚으며 "조력존엄사 대상자에 해당하는 말기 환자라는 용어 자체는 사전적, 사회적, 의학적 정의가 없는 용어"라고 지적했다.
이어 "조력존엄사는 임종을 앞당기는 행위로 연명의료결정 중단이나 호스피스·완화의료와는 성격이 매우 다르다"며 "세계보건기구에서도 이를 엄격히 구분하고 있는 만큼 조력존엄사를 허용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 생명경시 풍조를 확산시키고 만연시킬 우려가 매우 크다"고 덧붙였다.
조력 존엄사심사위원회 구성에 대한 문제점도 제기됐다.
김이연 이사는 "조력존엄사 대상을 심사해 결정하는 조력존엄사심사위원회 구성을 살펴보면 보건복지부 장관이 위원장이 되고 고위공무원, 조력존엄사 관련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윤리 및 심리 분야 전문가를 위원으로 위촉하고 있다"며 "그러나 우리나라에 조력존엄사 관련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있을지와 보건복지부 장관과 고위공무원이 조력존엄사 대상을 판단할 수 있는 역량과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전문적인 판단과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윤리 및 심리분야 전문가도 위원이 될 수 있으나 의사가 아닌 해당 전문가가 환자의 현재 상태를 평가하거나 판단할 근거나 자료가 없어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한 실정이다"고 비판했다.
이에 김이연 이사는 조력존엄사 허용을 위한 법 개정보다 호스피스·완화의료를 확대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이연 이사는 "조력존엄사법 개정보다 호스피스·완화의료 대상 질환의 확대를 비롯한 환자 삶의 질 개선과 우울증 등 정신의학적, 심리 사회적 지원을 위한 관련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더욱 필요한 상황"이라며 "임종기 연명의료 여부에 관한 논의를 조금 더 일찍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또 "의협은 초고령 사회의 근본적인 대응으로 일차의료 중심의 커뮤니티 케어를 제안하고 있다"며 "우리나라 의료·복지 서비스는 대체로 분절적으로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복합적인 신체 및 정신 건강의 요소들을 포함하는 임종기 돌봄은 돌봄 대상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상자 중심으로 의료, 요양, 돌봄, 주거 등 의료·복지 분야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의 연속성에 초점을 두고 통합적으로 제공하는 통합돌봄의 범주 안에서 다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환자단체 역시 의협 의견에 힘을 보태며 조력 존엄사에 대한 반대 견해를 분명히 밝혔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국민에게 의사조력자살 관련 찬반을 묻기 위해서는 환자에게 현대의학과 사회적 제도를 통해 제공될 수 있는 통증관리, 정서적 지지 등을 포함한 양질의 생애 말기 돌봄 서비스 내용에 대한 정보제공이 선행돼야 한다"며 "말기 환자에 대해 질 높은 생애 돌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국회와 정부가 만들지 못했다는 이유로 의사조력자살을 허용하는 법률을 만드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입법이다"고 비난했다.
더불어 "의사조력자살은 말기 환자를 둔 가족 간 불신과 불화의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며 "질 높은 생애 말기 돌봄 등 양질의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관련 인프라가 제대로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의사조력자살 남용이나 악용 우려가 큰 점을 고려하면 의사조력자살 입법화보다는 안정적이고 양질의 호스피스 및 연명의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먼저다"고 강조했다.
보건복지부는 조력존엄사법과 관련해 신중 검토 중이라는 입장을 보였다.
한상균 보건복지부 질병정책과장은 "연명의료결정법은 무의미한 연명의료 지속력을 결정하는 법인데 생명을 인위적으로 단축하는 의사조력자살을 연명의료결정법에 포함하는 게 맞는지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보건복지부 장관을 조력존엄사 위원회 위원장으로 두고 있는데 자살 예방 정책도 수행하는 보건복지부에서 의사조력자살의 심의 및 결정을 하는 주체가 되는 것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 "의사조력자살의 이행 기관과 관련해서도 국가 지정 기관에서 이행할 것인지, 개별 의료기관에서 이행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며 "자살 방조죄 적용을 배제하는 부분도 법무부와의 협의를 필요로 하는 등 여러 가지 유관기관 협조해야 할 사항도 있기 때문에 여러 방면에서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