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자의사회, '의료계 여성 CEO와 청년의사의 만남' 포럼
'따뜻·섬세·깨끗' 품성 리더 덕목…다양한 직종 아우르는 적임자
두려움 없애고 다양한 분야 진출해야…공공기관·산업계 문 두드리길
"여성의사들은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지혜롭고 성실하며, 최선을 다하면서 높은 집중력을 갖추고 있다. 일도 효율적으로 한다. 상대방을 배려하고, 공감 능력도 뛰어나다. 의료계 CEO로서 자질과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의료계 여성 CEO들은 여의사들은 소통과 공감 능력, 네트워크 형성, 두려움 없는 도전, 꺾이지 않는 열정 등을 갖추고 의료계를 이끌 수 있는 지도자의 자질을 품고 있다고 강조하고, 좋은 리더는 '따뜻·섬세·깨끗'한 품성을 함께 갖춰야 한다고 권면했다. 뛰어난 자질과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미래 세대에 대한 기대도 감추지 않았다.
한국여자의사회는 8월 27일 오후 서울 코리아나호텔에서 제17회 전국여의사대표자대회를 열고 '의료계 여성 CEO와 청년의사의 만남'을 주제로 여성 CEO들과 젊은 여의사들의 도전과 극복의 시간을 공유했다.
백현욱 여자의사회장은 "전국여의사대표자대회는 의료계 여성 CEO인 의료원장·병원장과 청년 여의사 및 예비 여의사들의 소통을 위해 마련했다. 여성의 의료계 진출이 점차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은 의료계의 대표성 비율에서 여성이 많이 부족한 상황이다. 특히 수도권을 벗어난 지역은 격차가 더욱 크다"면서 "의료 현장에서 양성평등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여의사 스스로 사회적 위상에 걸맞는 준비가 필요하고, 더 많은 자극과 교육을 동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순원 한국여자의사회 수석부회장이 좌장을 맡은 '여성 CEO와 청년의사의 만남' 포럼에는 박해심 아주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유경하 이화여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정희진 고려대 구로병원장·남선우 대전선병원장 등이 발제를 진행했다. 젊은 여의사 패널로는 김수인 전남대병원 전임의·조다혜 전남대병원 전임의·최윤영 서울대병원 전공의·김서연 서울아산병원 전공의·조원정 한국여자의사회 청년여의사위원장(세브란스병원 인턴)·신정민 학생(이화의대 본2)·배채윤 학생(건양의대 예1) 등이 참여했다.
여성 CEO들은 발제를 통해 지난 시간을 회고하며, 후배 여의사들에게 진심을 담은 격려와 애정어린 충고를 이어갔다.
가장 먼저 정희진 병원장은 "병원은 다양한 직종의 전문가들이 협업을 진행하다보니 소통과 공감이 중요하다. 여성 의사들은 그 부분에서 남성보다 훨씬 뛰어나다. 끊임없이 상대방과 눈을 맞추고 소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자기주도적인 삶을 살면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방향을 정하고, 진심을 다해 노력하고 나를 도와줄 조력자들과의 공감을 통한 소통에 힘쓴다면 누구나 빛을 발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남선우 병원장은 "건강문제로 퇴직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결국 환자 곁에 남기로 결정하고 진료에 최선을 다했다. 이해가 상충하는 원내 갈등 상황에서도 최대한 원활하게 조율될 수 있도록 노력했다"라며 "원장이 되면서 직원이 행복한 병원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의 이야기를 최대한 듣고, 불편사항은 최대한 해결하려 했다. 직원들이 행복하면 우리 병원을 찾는 모든 환자들에게 최선의 진료가 이뤄지게 된다"고 경험을 들려줬다.
박해심 의료원장은 "여성 의사는 높은 집중력, 효율적 일 처리, 배려와 공감 등 남성 의사에 비해 많은 장점이 있다. 또 합리적이고 윤리적이다. 리더는 강력한 윤리적 잣대로 공정하게 정의롭게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라면서 "지역의료에만 집중하기 보다는 대학병원에서 임상 혹은 기초연구에 매진하거나 공공의료분야, 정계·산업계 등에서 여성 의학자로서 꿈을 펼치길 바란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마음가짐을 챙기고 조금씩 준비하다보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독려했다.
유경하 의료원장은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교수직을 선택한 이후 삶이 달라졌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길이라는 것을 가고 나서 알게 됐다. 가족과 떨어지는 아픔이 있었지만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하고 싶은 일을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했다. 그런 환경은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여러 가지 기회가 왔다. 그리고 내게 다가온 기회를 최선을 다해 잡았고 지금 이시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라고 회고했다.
젊은 여의사들은 대선배들에게 질문을 이어갔다.
조원정 한국여자의사회 청년여의사위원장(세브란스병원 인턴) : 남성리더와 여성리더의 강점은?
유경하 의료원장 : 남성과 여성 구분은 의미가 없다. 좋은 리더는 따뜻하고 섬세하고 깨끗함을 모두 갖춰야 한다. 다양한 직종을 품는 데서는 여성이 더 훌륭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여성다움을 절대로 포기하면 안 된다.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다. 남자와 여자가 모든 것을 같이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각각 다르게 특징을 최대한 살려 현명하게 평가받는 게 진정한 평등이다.
김수인 전남대병원 전임의(신장내과) : 현대사회에서 적합한 여성 리더십은?
남선우 병원장 : 코로나19 상황과 함께 원장직을 맡으면서 여러 분의 공무원을 만났다. 몰랐던 여러가지 정보를 접했다. 너무 몰라서 또는 관심이 없어서 손해를 보는 게 참 많다는 생각도 들었다. 의료계를 둘러싼 주요 이슈에 대해 관심을 갖고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의료계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각종 법안들은 결국 국민을 힘들게 한다. 진료와 후학 양성도 의미 있지만 다양한 분야에 진출하는 것은 더 중요하다. 이런 일들이 곧 국민 건강을 위한 일이다.
김서연 서울아산병원 전공의 : 남성의사 위주의 병원 생활에서 여성의사들의 네트워크 형성은 어떻게 하나?
박해심 의료원장 : 쉽지 않은 일이다. 1994년 개원한 아주의대는 국내 의대 가운데 여성교수 비율이 가장 높았다(13%). 2006년에는 임인경 교수가 남녀공학 의대 중 처음으로 학장이 됐다. 학장이 됐을 때 여성 교수들이 똘똘 뭉쳤다. 절대적으로 서포트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저 역시 27년째 병원에 있는데 가장 큰 힘이 된 게 여성교수들의 선후배 네트워크다. 네트워크 구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다. 신뢰가 깨지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조다혜 전남대병원 전임의(신장내과) : 여성의사 비율이 많이 늘었고 의과대학 내에서도 남녀 불균형이 해소되고 있다. 그러나 의료사회에서는 아직 여성의 참여 비율이 낮다. 어려움이나 장벽이 있나?
남선우 병원장 : 아직까지 여성의사들은 가정에서 집안 일이나 자녀 교육에 대해 훨씬 많은 역할을 맡는다. 여성의사들이 탁월한 능력이 있더라도 보직을 맡거나 대외 활동을 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남성의사들에게 기회가 더 많이 가게 한다. 그러나 리더에 대한 생각이 있고,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자라면서 여유가 생기면 늦더라도 도전할 수 있다. 원내에서 열심히 활동하면 분명히 기회는 온다. 또 한 가지 유념할 것은 이젠 수직적 관계는 통용되지 않는다. 수평적 리더십을 갖춰야 한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가장 첫 걸음은 말투다. 부드러운 말투나 존댓말로 상대방이 존중받는다는 느낌을 줘야 한다.
신정민 이화의대 학생(본2) : 남성의사 비율이 높은 전공을 여성의사가 선택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정희진 병원장 : 지금도 과연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기가 하고 싶은 전공을 선택하는 데 제약이 있을까. 적어도 저희 병원에는 없다. 과거와 같은 시선으로는 전공의를 선택하는 전문과는 설사 있다하더라도 앞으로 더 잘 되기 어렵다. 지원하고 싶은 과가 혹시 남성이 훨씬 많고 선호도가 높은 과더라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절실하게 호소하고, 설득하는 과정은 굉장히 중요하다. 먼저 길을 걸어간 교수님들이나 선배들에게 도움을 청해보는 것도 좋다.
최윤영 서울대학병원 전공의(소아청소년과) : 헬스케어 영역이 많이 이제 다각화되고 있는데 헬스케어에서 여성이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은 어떤 부분인가. 여성에게 맡기고 싶은 보직 영역은?
박해심 의료원장 : 의사가 진출할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세계적인 추세다. 새 정부도 미래 성장 동력으로 바이오헬스 산업을 꼽고 있다. 이와 관련된 R&D의 중심은 바로 병원이 돼야 하고, 여성의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모두에 말씀드린대로 여성의사들은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고 집중력이 높기 때문에 R&D 분야에 굉장한 강점이 있다. 다만 자신의 재능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한 분야를 깊이 탐구하는데 적합하고 언어구사력도 뛰어나 글로벌기업에서 리더가 되는 여성의사들이 많다. 공직사회나 공기업 진출도 고려해야 한다. 전체적으로 조직을 관리하고 통찰을 갖는 데는 여성의사가 훨씬 더 유리하다. 엄격한 윤리의식과 공사 구분에서도 더 우수하다.
배채윤 건양의대 학생(예1) : 전공 택할 때에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여성 의사이기 때문에 겪을 수 있는 어려움이 있다면.
정희진 병원장 : 마흔 살이 됐을 때 요즘 말로 '현타'가 왔다. 모든 걸 다 그만두고 싶었다. 학회에서도, 병원에서도 너무 일이 많았다. 아이 문제도 있었다.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겠다고 생각했고, 굉장히 우울한 시기였다. 그때 시간표를 짜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이틀은 적어도 아이가 자기 전에 집에 가서 시간을 보낸 후, 새벽에 일어나서 일을 했다. 저만의 시간표를 세워 시간을 배분했고, 그렇게 그 시기를 극복했다. 이런 얘기를 선배들로부터 조금 일찍 들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래서 이런 경험을 아주 어린 전공의나 전임의 선생들께 전해준다. 후배들은 도움을 청하고, 선배들은 그런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해 주길 기대한다.
유경하 의료원장 : 지금은 전공 선택에서 여성의사가 차별받는 시대는 아니다. 이화의료원은 신경외과·정형외과 스탭에 여성의사들이 한 명 내지 두 명 있다. 반성할 문제는 있다. 10년전 전 남성 선배에게 들은 얘기다. 여성의사들이 출산 후 병원에 복귀해서 출산 전 50% 정도의 퍼포먼스만 내도 그 의사를 뽑는다는 것이다. 그 분은 신랄하게 비판했다. 출산 전의 4분의 1도 안 된다고 했다. 우리는 전문가다. 전문가로서 경쟁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 불평등을 얘기해야 한다.
김민아 서울아산병원 전공의(소아청소년과) : 리더에 대한 정의(철학)와 타협할 수 없는 게 있다면?
정희진 병원장 : 어렵거나 반드시 개선하고 개혁해야 하는데 하지 못한 일은 실행이 어렵기 때문이다. 과정이 어렵고, 설득이 어렵기 때문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 일을 해도 티도 안 난다. 기관장을 하면서 반드시 임기 동안에 어떤 성과를 내겠다는 게 목표가 되면 안 된다. 이게 리더로서의 제 철학이다. 긴 방향성을 보고, 조직을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발전 과정에 일정 기간 책임을 갖고 있을 뿐이다. 그 과정 중에 그동안 바꾸지 못했지만 누군가의 노력으로 개선할 수 있다면 그 성과가 당장 제가 하고 있는 동안에 나타나지 않더라도 진심을 다해 노력하는 자세가 리더에게는 중요하다.
남선우 병원장 : 여러 가지가 항목이 있겠지만 그 중 가장 제가 좋아하는 점을 든다면 내가 아우르고 있는 조직 안에서 원만하게 화합하는 능력이다. 리더로 인해 굉장히 많은 혼란이 생길수 있다. 의료현장에서는 서로의 이해가 상충된다. 리더로서 이런 상충된 이해를 어떻게 해결하느냐가 중요한 덕목이다.
박해심 의료원장 : 2020년 3월 취임 했을 때 구성원들에게 '소통과 신뢰'를 약속했다. 인사말을 할 때 제 이름을 '박소신'으로 소개하기도 한다. 소통과 신뢰를 지키려면 리더는 우선 구성원들이나 주위 사람들에게 희망을 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행일치·솔선수범을 해야 한다. 제가 했던 말을 바꾸면 더 이상 믿고 따르지 않게 되고, 희망도 줄 수 없다. 구성원들에게 제가 얼마나 희망적인 존재가 됐는지 물어보지 않았지만 끝날 때까지 희망을 주려 최선을 다할 것이다.
유경하 의료원장 : 저는 섬김이다. 늘 섬기려고 노력하는 데 잘 될지 모르겠다. 섬김의 리더십을 소중하게 여긴다. 과장은 '과종', 원장은 '원종'의 자세로 병원을 운영하려고 한다. 조직도 완전히 뒤집어 버리는 작업도 하고 있다. 절대 타협할 수 없는 것은 거짓말이다. 거짓말은 용서할 수 없다.
이날 대표자대회는 학술 심포지엄과 함께 열렸다. 소아청소년기의 기능성 위장관 질환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서는 ▲소아 위식도역류질환(이경재 서울의대 교수·서울대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 ▲소아 변비의 이해(심정옥 고려의대 교수·고려대구로병원 소아청소년과) 등이 연제가 발표됐다.
대표자대회에 앞서 열린 개회식과 2부 행사에서는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 박성민 의협 대의원회 의장, 박명하 서울특별시의사회장,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 등이 참석해 축하했다. 이 자리에서 이필수 의협 회장과 박명하 서울시의사회장은 '미래세대(청년여의사 및 예비 여의사) 기금' 600만원과 100만원을 각각 백현욱 한국여자의사회장에게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