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9
날이 풀렸다는 당신의 말에 밖을 내다보는 시늉만 했다. 당신은 날씨가 모여 기후가 된다고 했지만, 날씨도 날씨 나름이고 기후도 기후 나름이라던 어떤 선생님의 말씀이 마침 떠올랐기 때문이다.구름이 병원 천장쯤 지나고 있으니 곧 비가 내릴 것 같다는 당신의 목소리가 왠지 가볍게만 느껴진다. 종종거리던 습기 찬 발로 당신은 한번 높게 점프하고 싶었던 것 같다. 단지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당신의 습관이니까 바닥은 움푹움푹 파이는 진흙투성이였고, 내 구두에도 제법 먼지는 묻어있으니 우리는 모두 같은 처지일 뿐이다. 당신으로 비롯된 날씨처럼, 자라고 자라다 어느 순간 죽어버린 어제의 충동성은 과연 어디로 갔을지 이 모든 사건이 터지기 전 물어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나만 자책이다. 창밖에는 계절과 상관없는 소나무 한 그루 우두커니 서 있다.
▶ 대전 을지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전공의/2014년<시와사상>등단. <필내음>동인.
김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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