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량지수 35kg/㎡ 이상 땐 비만치료제 건강보험 급여 고려해야
새로운 연구자·임상 종사자 발굴 아·오 지역 네트워크 강화 도모
비급여 비만치료제 가격 천차만별…일정 수준 통제 부담 경감 필요
김경곤 아시아·오세아니아비만학회 회장(가천의대 교수·길병원 가정의학과)
비만은 만성적이면서 언제든 재발이 가능한 신경학적 질병이다. 뇌의 식욕조절 중추가 제기능을 못하면서 발생하게 되고 생활습관, 특히 잘못된 식습관이 주요 요인이다. 식습관을 개선치 않으면 수술이나 약제를 통해 체중 감량에 성공하더라도 결국 재발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과거 서구를 중심으로 비만 유병률이 높았지만, 이젠 국내 비만인구 증가세도 가파르다. 게다가 사회적 환경이나 대중 인식, 정부의 정책적 접근에 큰 영향을 받는 질환이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치료만큼 예방이 중요하지만 저비용 고칼로리 식이에 활동량을 줄이는 환경은 비만 개선에 큰 장애가 된다.
정부는 지난 2018년 국가비만관리종합대책(2018∼2022년)을 통해 병적 고도비만의 수술치료 건강보험 적용, 고도비만 전 단계에 대한 교육·상담 건강보험 적용 검토 등을 발표했으나 고도비만 수술치료 급여화 이외에 실효적인 대책과 성과는 미미하다. 내년부터 시작하는 새로운 비만관리종합대책 5개년 계획에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까. 그동안의 정책 효과를 촘촘히 살피고 실질적으로 비만 유병률을 낮추는 혜안이 필요한 때다.
최근 아시아오세아니아비만학회(AOASO) 회장에 취임한 김경곤 가천의대 교수(길병원 가정의학과)는 비만 치료 약제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필요성을 조심스레 내비쳤다.
지난 2019년부터 시행된 고도비만수술 건강보험 급여 기준(체질량지수(BMI) 35kg/㎡ 이상 또는 BMI 30kg/㎡ 이상이면서 고혈압·당뇨병 등 동반 환자) 보다 더 강화한 BMI 35kg/㎡ 이상 환자에 한정해 비만치료 약물 건강보험 급여를 시작하자는 얘기다. 재정 부담은 줄이면서 치료 효율성을 높이고, 비급여로 인해 천차만별인 약값에 대해서도 일정 정도 수준을 정하자는 의미다.
정책적인 지원 필요성도 호소했다. 소아청소년 비만 인구 증가와 함께 비만 유병률 급증 추세는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나라가 맞닥뜨릴 문제라는 진단이다.
그는 AOASO 회장으로서 어떤 일을 하고 싶을까. 국내 비만 유병률 관리와 인식 개선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1998년 창립한 AOASO에는 한국을 비롯 인도, 호주, 뉴질랜드, 홍콩, 인도네시아,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필리핀, 대만, 태국, 베트남 등 13개국이 가입돼 있다. 회장 임기는 4년이다. AOASO 회장 선임은 국내 의학자로는 처음이다. 그동안 일본(2명)·호주(2명)·대만·말레이시아에서 회장을 배출했다.
"세계 비만학계는 미국비만학회·유럽비만학회 중심이다. 환자도 많고 관련 연구도 많다. 비만 관련 정책에 대한 경험도 다양하다. 우리나라를 비롯 아시아지역은 비만에 대한 경험이 적고 그만큼 유병률도 낮았는데 이제 북미나 유럽을 빠르게 따라잡고 있다. 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는 임상 경험이나 연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고, 대만은 비만 수술 경험이 많지만, 그 밖의 나라들은 임상경험이 적고 네트워크도 약하다. 학회 창립 후 24년이 지나면서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의 비만 양상도 바뀌었다. 새로운 연구자나 임상 종사자를 발굴해서 아·오 지역 네트워크 강화에 나선다. 비만 관리에 앞서 있는 서구 학회에 버금갈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고 싶다."
국제 학회는 회장이 강력한 리더십을 갖기 어렵다. 그렇다보니 학회의 영향력도 크지 않았다.
"아·오지역 비만 유병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여러 국가에서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함께 같이 할 방법 찾아야 한다. 좋은 경험을 공유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하려면 연례적으로 열리는 아시아오세아니아비만학술대회(AOCO)부터 리더십을 가져야 한다. 내년에 홍콩에서 열리는 AOCO부터는 긴밀한 연계체계를 갖추고자 한다. 새로운 연구자들이나 임상전문가를 발굴을 위해 홍콩비만학회와 논의 중이다. 또 새로운 위원회를 만들고 강력한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회칙 변경 사항이어서 각국 학회 회장·이사장을 설득해야 한다.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 있지만 미래를 대비하는 차원에서 의견수렴에 나서겠다."
비만치료 약제가 속속 나오고 있다. 최근 개발 현황은 어떨까. 걱정되는 점은 없을까.
"올 봄에 당뇨병치료제로 승인된 노보 노디스크의 세마글루타이드는 내년 초 비만치료제로 승인될 예정이다. 지금까지 비만치료제는 체중 대비 10% 감량 수준이었는데, 세마글루타이드부터는 15% 이상 감량이 예상된다. 일라이 릴리에서 내놓는 신약은 20% 이상까지 보고 있다. 또 다른 제약사는 25% 정도 체중감량을 목표로 약제를 개발 중이다. 비만치료제에 대해 많은 연구가 이뤄지는 것은 좋은 면이지만 단점도 있다. 신약으로 체중감량에 성공해도 언제든 재발할 수 있는데 약값이 너무 비싸다. 건강보험 급여는커녕 본인부담 100대 100 품목에도 적용되지 않는다. 파는 곳마다 천차만별이다.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지금까지 약제들은 체중이 5%에서 10% 정도 줄기 때문에 부작용도 적었다. 새 약제들은 체중감량 효과가 강한만큼 전문가와 상의해서 복용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클 수 있다. 지금 개발되는 약제는 대부분 100㎏ 정도 사람들을 대상으로 만들었다. 그보다 저체중인 사람들에 대한 임상 연구는 충분치 않다. 남용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된다."
비만에 대한 한 나라의 경험은 다른 나라에겐 소중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비만 유병률에는 사회적 환경이 작용한다. 한 나라의 보건정책도 영향을 준다. 치료만큼 예방이 중요하다. 한국 뿐 아니라 각 국은 비만예방을 위해 노력해왔지만 실패했다. 정책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음식을 쉽게 만들고, 저비용으로 고칼로리 음식을 먹으면서 활동량을 줄이는 환경에서 비만은 어쩌면 자연스런 과정이다. 어떻게 환경을 바꾸고 변화시켜야 하는지에 대해 각 국의 경험을 공유해야 한다. 좀 더 면밀히 정책의 효과를 평가하고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 어떤 정책이 실패했고 왜 그랬는지, 비만관리를 위해 가장 절실한 것은 무엇인지 등에 대한 사례를 면밀하게 살피면 훨씬 더 나은 상황과 마주할 수 있다."
단순당 섭취 억제도 강조했다.
"비만은 전체 칼로리 섭취 자체가 늘어나는 게 가장 주된 문제다. 칼로리 섭취가 늘어나는데는 음식 비용, 경제 성장 같은 이유도 있겠지만, 생리학적으로 보면 뇌에 큰 변화가 있다는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열량이 들어오는 것을 과연 뇌에서 어떻게 인지할까. 그 과정에서 단당류나 이당류로 분류되는 소화 과정이 거의 필요없는 단순당의 섭취가 많이 될 때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여러 가지 설문이나 식사 패턴 변화에서 유추하면 뇌 자체에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식 조리과정에 들어가는 첨가당과 인공감미료도 문제도 지적된다. 장기적으로 보면 뇌의 식욕 조절 중추 기능을 왜곡시킨다. 일부 연구에서는 기억력이나 치매와도 관련이 있다는 보고도 있다."
이젠 비만치료 약제에 대한 건강보험 급여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비만은 모든 병의 근원이라는 대명제에서 출발한다.
"비만 약물 치료 전체를 급여하는 건 당연히 무리다. 아주 작은 부분부터 시작하면 된다. 질병이 발병되기 전 예방 차원에서 치료하면 건강보험 재정에도 훨씬 도움이 된다. 고도비만수술 급여대상인 BMI 35kg/㎡ 이상인 경우에 한정해 약제 급여를 고려해야 한다. 대상자가 적기 때문에 재정에 미치는 부담도 적고, 나머지 비급여 대상자에게는 전액 100대 100을 적용할 수 있다. 비만은 수술 외에 모든 치료방법이 제도권 밖에 내쳐진 상황이다. 일정 부분 비만치료제 약값은 통제해야 한다. 비만인에게 분명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 사회적으로도 공감대를 형성할 때가 됐다."
국민 인식 개선을 위한 방안도 마련하고 있다. 모두가 겪게 될 공동 문제라는 진단이다.
"학술대회나 심포지엄, 공청회 등을 통해 비만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하고 더 노력하겠다. AOASO뿐만 아니라 세계비만학회에서도 소아청소년의 비만 증가를 어떻게 막을 것인지, 젊은층 비만을 어떻게 억제할 것인지에 대해 정책 권고를 이어가고 있다. 여러 나라들이 공동으로 대응하는 이유는 특정 국가의 문제가 아니라 똑같이 겪을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시간 차일뿐 결국은 모두가 맞닥뜨릴 문제다."
비만 치료 경향은 어디를 향할까. 펩타이드제제가 대세를 이룰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금까지는 화학적으로 결합한 약제들이 치료의 대세였다. 이런 약제들은 제조비도 싸고 만들기도 쉽다. 그러나 몸 안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예측이 어렵다. 정확히 필요한 부위에만 선택적으로 작용하게 만들기 쉽지 않다. 2000년대 후반부터 우리 몸 속 호르몬을 어떻게 인위적으로 강화시킬 지에 착안한 약제가 개발됐다. 단백질보다 분자량이 적지만 인체에서 아미노산 서열에 따라 만들어진 물질이기 때문에 몸 속 영향을 예상할 수 있다. 이런 펩타이드제제는 부작용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 수 있고, 필요한 곳에 선택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런데 비싸다. 비만 치료제는 장기간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값을 무시할 수 없다. 무조건 효과만으로 접근할 수 없다. 유병률이 30∼40%에 이르고 조금만 나태해지면 바로 재발하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향후 몇년 동안은 펩타이드제제를 이용한 다양한 비만치료 시도가 이어질 것이다. 또 비만 수술을 통한 체중감량이 위를 작게 하거나 음식물을 흡수하는 장의 길이를 우회해서 이뤄지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규명됐다. 식욕이나 소화 과정, 췌장 등 여러 가지 대사과정에서 많은 호르몬들의 변화가 심하게 일어나고, 체중 감량의 상당 부분은 호르몬 변화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같은 물질을 약제로 개발하면 수술에 가까운 치료 성적을 낼 수 있다."
그는 AOASO 새 회장으로서의 각오보다 국내 비만 현황에 대한 걱정을 앞세웠다. 무엇부터 해야할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공감을 원했다. 해결할 숙제는 많지만 분명하다. 치료만큼 예방이 중요하다. 이제 흩어져 있던 생각들을 모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