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 원정·접수 전쟁 '오픈런'…소청과 부족 현실로 '성큼'
코로나19·독감·장염에 폐렴 5종까지 '설상가상'...소아진료 '빨간불'
소청과의사회 "필수의료 지원 하루가 급해…인력 두 배, 수가 개선"
요즘 이른 아침부터 소아청소년과 병의원 입구에 긴 줄이 늘어선 모습을 흔히 목격할 수 있다.
소아청소년과 병의원과 전공의가 꾸준히 줄어든 상황 속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호흡기 질환(독감)과 장염이 함께 유행하면서 환아들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들은 "이러한 현상은 아직 시작에 불과하다"면서 "'소청과 지옥'을 목전에 두고 있다"고 우려했다. [의협신문]이 의사도 병원도 부족해 사상 초유의 위기를 맞고 있는 현장속으로 직접 들어가봤다.
■ "아이가 아픈데 갈 곳이 없어요"
전국 각지의 육아 커뮤니티에서는 '동네 근처에 소아과가 없다', '소아과 대기가 심해 병원 다니기가 너무 어렵다', '아이를 키우려면 집이나 아파트보다도 병원이 더 중요한 요소다' 등 진료에 어려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다. '새벽에 아이가 아파 여러 병원을 돌아 다녀도 소아응급 진료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아이가 새벽에 갑자기 아파서 응급실에 가려는데 119에서 안내한 병원 모두 소아응급실이 없다고 했다. 대학병원 응급실에서도 소아청소년과 선생님이 안 계셔서 진료가 안 된다고 했다', '아이가 새벽에 열이 40도 가까이 올라 대형병원을 전전했지만 소아진료를 하는 곳이 없었다. 다음날 동네 소아과를 갔으나 큰 병원에 가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이는 결국 폐렴 진단을 받고 입원 중이다' 등등 소아청소년과 진료가 어렵다는 하소연이 줄을 이었다.
특히 '아이가 너무 아픈데 봐줄 수 있는 소아과 의사가 없어, 진료도 못 보고 길바닥에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너무 속상하고 서럽다'는 글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육아 커뮤니티에서 보호자들은 24시간 소아응급실을 운영하는 수도권 대형병원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하지만 얼마 남지 않은 소아응급실 정보마저도 사라지고 있다.
가천대 길병원에서 외래입원을 잠정중단한 것을 시작으로, 강남세브란스병원, 이대목동병원, 한양대병원 등이 소아환자 응급실 진료를 전면 중단 또는 축소했다. 본지가 취재한 결과, 지역은 물론 수도권 대형병원에서도 소아응급실 축소 진료를 논의 중에 있다. 전공의와 전문의가 부족해 24시간 응급실 운영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 의사도 병원도 부족...사상 초유 '위기'
소아청소년과 부족 문제는 수도권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진료 시작 시간보다 훨씬 이른 아침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명 '소아과 오픈런' 현상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코로나19뿐 아니라 호흡기 질환과 장염이 함께 유행하면서, 아픈 아이들이 늘어난 데 비해 소아청소년과 병의원과 의료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가 1월 2일 오전 8시 30분 서울시 성북구에 있는 성북우리아이들병원을 찾을 당시 50명이 넘는 환아와 보호자들이 입구와 복도에 길게 늘어선 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였다. 아파서 축 늘어진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보호자들은 추운 겨울 아침부터 복도를 가득 메웠다. 가장 앞쪽에 서 있는 보호자 A씨는 "새벽 6시 30분부터 줄을 섰다"고 말했다.
병원 관계자는 "온라인 예약까지 오전 진료만 200명이 대기하고 있다. 하루에 500~600명 이상을 진료한다"고 밝혔다.
환아와 보호자들의 편의를 위한 병의원 대기 애플리케이션 '똑닥' 등이 출시됐지만, 몰리는 예약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보호자 B씨는 "예약 시간을 기다려 접수를 눌러도 순식간에 마감된다. 전쟁터나 다름 없다. 진료를 보기 힘든 건 매한가지"라고 말했다. 병원 관계자도 "환아가 많은 만큼 시스템 관리에 한계가 있다"고 전했다.
김민상 성북우리아이들병원장은 "최근 감염병 질환이 급격히 늘어 아픈 아이들이 너무 많다"며 "폐렴과 장염이 가장 많고, A형 독감도 많이 늘고 있다. 꾸준히 환자가 나오고 있는 코로나19보다도 독감이 더 많을 정도"라고 말했다.
실제로 병원을 방문했을 때, 환아 대부분이 발열과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을 앓고 있었다.
김민상 병원장은 "특히 폐렴은 파라인플루엔자를 포함한 5종의 폐렴이 유행하고 있는데, 이렇게 여러 종류의 폐렴이 한꺼번에 유행한 적이 없다"면서 "장염도 노로바이러스·아데노바이러스·살모넬라균 등 여러 종류가 유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전례없는 유행 상황과 관련해 김민상 병원장은 "(코로나19로)마스크를 쓰면서 감염성 질환 전파가 확실히 떨어졌는데, 사회적 거리두기를 완화하면서 감염성 질환이 급증했다"면서 "아이들은 어렸을 때 조금씩 외부 감염을 겪으며 항체를 형성하는데, 마스크를 쓰면서 외부 감염에 따른 항체 형성이 전혀 안 되다가 풀어진 만큼 여러 종류가 한꺼번에 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무너지는 시스템 "3월에 지옥 도래할 것"
김민상 병원장은 "소청과 의료진 부족과 감염성 및 호흡기 질환 대유행에 따른 소청과 과밀 현상으로 인해 지난 가을부터 1, 2차 의료기관의 환아 중등도가 많이 올라갔다"며 의료전달체계 붕괴를 우려했다.
"일전에는 경련이 멈추지 않는 환아를 실은 구급차가 대학병원에서 처치를 받을 수 없어 우리 병원으로 오기도 했다"는 김 병원장은 "중등도가 높아 대학병원 진료를 받아야 하는 아이들이 1, 2차 의료기관에서 진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다. 큰 위험과 피해로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병원장은 "요즘에는 의료진 회의에서 '중등도가 높아진 만큼, 이전까지처럼 진료를 보면 정말로 환아들이 크게 위험해질 수 있다'는 내용을 공유하고, 대책을 함께 고민했다"면서 소청과 의사들이 느끼는 위기감을 전했다.
소청과 몰락은 오래 전부터 예견됐다.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가 파악한 자료를 살펴보면 2019년 소청과 전공의 지원율이 80%로 떨어진 데 이어 2020년 74%, 2021년 38%, 2022년 27.5%로 계속해서 추락, 2023년 15.9%로 급락했다. 소청과 전공의 정원 207명 중 33명만 지원한 것이다. 중도 이탈까지 고려하면 충원율은 바닥이다.
소청과 폐업률도 심각한 상황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보건복지부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지난 5년간 3일에 하나 꼴로 소청과 병의원이 문을 닫았다. 2017년부터 2022년 8월까지 모두 662개 소아청소년과 의료기관이 폐업했다.
의료계는 레지던트 과정을 마친 4년차 전공의들이 빠져나가는 2개월 뒤, 그야말로 '대란'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장은 [의협신문]과의 통화에서 "올 3월 188명의 소청과 전공의가 빠져나가는 데 비해 새로 들어오는 1년 차 전공의는 33명에 불과하다. 마이너스 155명인 셈"이라고 말했다. 빠져나가는 인력의 12% 가량만 충원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계속해서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고 밝힌 임 회장은 "3월을 기점으로 전국 어느 병원에서도 입원 진료와 응급 진료를 받을 수 없는 지옥이 펼쳐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임 회장은 "지금도 너무 늦었다. 시스템은 무너졌다. 이제 아이들이 죽어갈 것인데, 하루라도 대책을 서둘러야 할 판에 참 답답하기 이를 데가 없다"며 연신 한숨을 쉬었다.
■ 소청과 문제 해결, 국민·의사 모두의 소망
1월 2일 아침 일찍 성북우리아이들병원을 찾은 보호자 C씨는 "아이 상태가 좋지 않아 대기 시간이 길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침에 올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일찍 치료받고 오늘 하루를 보냈으면 했다"고 말했다. C씨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병의원뿐 아니라 입원이 가능한 병원이나 응급실 진료도 충분히 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털어놓았다.
김민상 병원장은 "대부분의 소청과 의사들은 아이들을 좋아하기에 이 길을 택한다"면서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폐렴이나 장염, 열성경련 등에 시달리면서 혼자서 걷기도 힘들어하던 아이가, 오후에 뛰어다니고 웃으면서 병원 문을 나가는 순간이 너무 좋다. 의사로서 어떤 처방과 처치를 할지 고민해서 결정하고, 아이들이 호전되는 것에서 느끼는 보람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소청과 동기나 선후배들이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피부나 미용 쪽으로 진료과를 변경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힌 김 병원장은 "아동병원 운영이 너무 힘들어 요양병원으로 바꾸는 동료도 많다. 그럴 때면 안타까우면서도 막막함을 느낀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토로하기도 했다.
■ 소청과 의사들이 바라는 것 "지원과 안전"
성북우리아이들병원 관계자들은 소청과의 힘든 점으로 '인력 및 인건비 부족'을 꼽았다. 스스로 판단하고 의사의 지시에 따를 수 있는 성인 환자와 달리 '소아 환자'는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와 보호자를 함께 진료해야 하고, 두 배의 인력이 필요한 사정을 고려해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청진을 비롯한 진찰은 물론 주사를 놓거나, X-ray를 찍을 때 '환아가 움직이지 않게 잡아주는 인력'까지 두 배 이상의 인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진료할 때 보호자가 잡아주기도 하지만 X-ray를 찍기 위한 위치를 완벽하게 잡아주기는 어렵다"면서 "아이가 다치지 않고 진료와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잘 잡아야 한다. 보조 인력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민상 병원장도 "소청과 병원을 운영하면서 가장 부담되는 부분이 인건비"라면서 "타 진료과에 비해 부가적인 인력이 필요함에도 오히려 수가는 낮다. 정책적인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인건비 지원'과 더불어 '포괄수가제'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김 병원장은 "소청과를 방문하는 보호자들은 아이의 현 증상 외에도 많은 것들을 물어본다. 수첩이나 종이에 리스트를 적어오는 분들도 많다"며 "우리는 성장과 발달의 전반적인 과정을 봐야 하는 의사이기에 '아이가 편식이 심하진 않은지', '밤에 자주 깨서 울지는 않는지' 등 모든 질문에 대답을 해줘야 한다. 그러나 현 포괄수가제 시스템에서는 그런 부분까지 반영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청과 의사와 직원들이 행하는 의료행위와 노력에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의료사고 처리 특례법에 관해서도 말을 보탰다.
"의료인들은 항상 환자를 위해서 최선을 다한다. 환자를 해하려고 하는 의사는 없다"고 강조한 김 병원장은 이대목동병원 사건을 언급하며 "결국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의료인들은 구속을 당했다. 불가항력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 의료인을 보호할 수 있는 적절한 안전장치를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봉식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도 '낮은 수가'와 '의료분쟁' 문제를 필수의료 붕괴의 주된 요인으로 꼽았다.
"수가가 낮은 것은 분명하다. 정부의 지원 정책은 당장 생존을 위한 인공호흡기 수준으로, 건강보험 재정이 부족해 필수의료에 할당할 예산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 우봉식 소장은 "필수의료를 살리기 위해서는 '혁명적' 전환이 필요하다. 깊은 반성과 성찰을 통해 근본적인 문제를 개선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또 "의료진을 구속하고 형사 법정에 세운 이대목동병원 사건의 여파로 인해 굳이 기피 전공을 선택해 의료소송에 걸리고 곤란을 당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인식이 팽배하면서 필수의료 분야를 기피하고 있다"며 "의료사고 발생 시 형사 처벌로 단죄하기 보다는 원인을 정확히 규명해 재발을 방지하고, 조정 및 중재를 비롯한 민사를 통해 해결하는 방향으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어 "의료정책연구소는 필수의료 체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구체적인 해결 대책과 의료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등 의료환경 정상화 방안을 계속 연구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