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 줬는데 결과 나쁘다고 책임 물으면 '선한 사마리아인' 사라질 것
몇 년 전의 일이다. 지하철에서 갑자기 방송이 나왔다. 객차에 승객 한 명이 쓰러져 있다고. 둘러보니 바로 근처에 있었다. 젊은 여자였다. 몸은 그쪽으로 가고 있었지만, 단 몇 초 사이에 머리는 복잡했다.
"내가 의사라는 것을 누가 아는 것도 아닌데, 이거 나서야 하나? 혹시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을 해야 하는 상황이면, 그러다 성추행으로 고소라도 당하면 어쩌지?"
다행히 맥박과 호흡은 정상이었고, 술에 만취한 상태였을 뿐이어서 나의 걱정은 기우가 되었다. 그렇지만, 나만 그런 걱정을 했을까?
실제로 옆에서 할아버지가 젊은이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어도 사람들은 그냥 지나가는게 현실이며, 쓰러져 있는 사람이 여자라면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겠다는 남자들의 온라인 의견 조사 결과가 뉴스로까지 나온 적이 있다.
의사들은 비행기에서 닥터 콜을 안 받으려면 비행기를 타자마자 술을 몇 잔 마시고 자야 한다는 농담을 하곤 한다.
최근 소위 '필수의료'가 화두로 떠올랐다 (그 용어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 칼럼 "그런데, '필수의료'가 무엇인가요?"). 흉부외과·산부인과 등의 외과계에 이어, 소아청소년과도 지원이 미달되고, 소위 생명과 직접 관련된 의료를 기피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수입의 차이나 삶의 질의 차이도 있긴 하겠지만, 또 하나의 큰 원인은 의료 소송, 그 중에서도 형사 고소와 형사 처벌의 증가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특히 사회적으로도 큰 이슈가 되었던 2017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집단 사망사건에서 소아청소년과 교수의 구속은 많은 의사들에게 깊은 충격을 가져왔다.
다행히 최근에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무죄로 판결이 나기는 했지만,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는 아마 다시는 의업을 하지 않을 것이다.
기존에는 의료사고로 인해서 소송까지 가거나 의사가 유죄를 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러나 약 10년 전 부터는 의료 소송이 급격히 증가하고, 의사가 유죄를 받는 비율이 2/3에 이르며, 실형이 선고되는 비율도 크게 늘었다.
당장 기억나는 몇 건을 떠올려보면, 2013년에는 복통으로 내원한 7세 환아에 대해 이 연령대에는 매우 드문 질환인 횡경막 탈장을 진단하지 못해 환아가 사망한 사건에서, 수련 3개월째 된 전공의를 포함해 3인이 구속되고 금고형을 받은 사건이 있었다. 2016년에는 고령의 뇌경색 환자가 CT상 대장암이 의심돼 대장내시경을 위해 장정결제를 투여했다가 장 천공이 되어 사망하자, 해당 소화기내과 교수가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2017년에는 6개월전 난소암 수술을 받았던 환자가 장폐색이 의심되었을 때 즉시 개복 대신 보존적 치료를 하면서 상태를 관찰하다가 상태가 악화되어 응급수술을 했으나,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유죄를 받은 사건도 있었다.
2019년에는, 복통과 구토로 입원했던 환아가 초기 복부초음파 검사상 충수가 정상 소견이었으나 뒤늦게 충수염 천공으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현재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재판 중이다.
개별 사건의 구체적인 정황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므로 판결의 옳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난다. 하지만 의사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의사의 큰 잘못 없이도 충분히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바꾸어 말하면, 내가 그 일을 한다면, 언제든 나에게도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수십 년 전만 해도 의학 기술로 병을 치료하는 것이 드물었는데, 언젠가부터는 병을 치료하면 당연한 것이고 못하면 모든 것이 의사의 과실로 치부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금년 초 정부에서는 의료 사고에 대한 부담으로 생명에 관련한 진료과를 기피하지 않도록 '의료인 형사처벌 특례' 제도를 마련하고, 불가항력 의료사고에 대한 피해자 보상을 국가가 더 분담하는 방안을 추진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환자 단체에서는 이 경우 환자의 피해가 더 커질 것이라고 반대를 한다고 하면서, 오히려 의사의 설명의무를 강화하고 입증책임을 전환하는 것을 주장하고 있다.
형사에서 최종 무죄로 판결이 나더라도 민사는 배상책임이 있는 경우가 많고, 최종 무죄를 받더라도 법적 대응 과정 자체가 극심한 스트레스가 된다.
최종적으로 책임이 없는 것으로 판결이 나긴 했지만, 2018년에는 인근 한의원에서 봉침을 받고 쇼크가 온 환자를 도우러 간 가정의학과 의사가 9억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던 일이 있었다.
당신의 아들 딸이 의사가 되어 전공을 선택하는 입장이라고 해보자. 과연 당신은 열심히 자기일을 하다가 순간의 과실로, 또는 심지어 과실로 없이도 거액의 손해보상을 해야 하거나, 감옥에 갈 수 있는 전공을 선택하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설상가상으로 2023년 3월 현재,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의사 면허를 박탈하겠다는 의료법 개정안도 언제 통과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판사들도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을 해보면 좋겠다. 만일 본인의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히는 경우, 그 잘못된 판결에 대해 판사를 구속하거나 벌금 또는 징역형을 내리고, 오판으로 인해 원고나 피고가 입은 피해를 민사 보상하게 한다면? 법관도 사람인데 어떻게 100% 완벽한 판결을 할 수 있냐고 항변하지 않을까?
어떻게 보면 환자가 눈 앞에 있는 순간에 제한된 정보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의사보다, 증거 수집이나 판결에 필요한 시간이 충분한 판사가 더 오판에 대한 책임이 무거워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전술한 장정결제 부작용 사망 사건 관련해서, 최근 대법원은 원심이 의사의 의료 행위 분담에 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이 잘못됐다며 무죄취지로 파기 환송했는데, 1·2 심의 판사들은 그들의 잘못된 판결로 인한 담당교수의 피해에 대해서는 어떠한 법적 책임을 지는지 궁금하다.
형사 처벌은 기본적으로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 '의료인 평균 수준'의 주의 의무, '상당한 정도'의 인과관계와 같은 모호한 언어적 기준을 현실에서 엄격하게 적용하면, 결국 선의로 진료한 의사들이 경미한 과실이나 심지어 무과실로도 형사처벌을 받는 사례가 나올 수밖에 없다.
형사처벌은 향후 유사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의료인에 대한 형사처벌 강화로 의료사고가 예방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의료 사고를 은폐하려는 경향, 방어를 위한 과잉진료, 나아가서 아예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의료영역에 대한 기피로 이어질 뿐이다.
아무리 그래도 의사를 늘이면 감옥갈 위험이라도 감수하고 생명과 직결된 과를 할거라고? 취업준비생이 아무리 많아도, 대우가 안 좋은 중소기업은 구인난인게 현실이다. 자신을 도와주려는 사람에게 의도치 않은 나쁜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묻고, 과정중의 작은 잘못이라도 찾아내어 처벌하자면서, 선한 사마리아인이 남아있기를 바라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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