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 받는 대구 응급의학과 전공의 "많이 무섭고 걱정"
"사람을 살리러 왔는데 경찰도 언론도 나를 환자 죽인 사람으로 낙인찍더라"
"환자 보기 싫었다면 응급의학과 선택 안 했다...환자 살리는 사명감에 뿌듯"
대구의 한 병원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응급의학과 A전공의는 지난 3월 19일 낙상으로 실려 온 10대 청소년 B양을 진료 후 적절한 치료를 위해 전원 조치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B양이 사망에 이른 것에 책임을 묻는 '피의자' 조사였다.
의료계에서도 '애꿎은 전공의를 희생양으로 삼는 마녀사냥'이라며 이구동성으로 우려를 표하는 와중, [의협신문]은 6월 23일 A전공의와 전화 인터뷰를 통해 사건의 내막을 들었다.
A전공의는 당시 B양의 상태를 "생체징후 및 의식상태로 봤을 때 중증도가 높지 않다고 판단돼 KTAS 분류로 따지자면 레벨4 정도로 보였다"며 "119구급대원으로부터 혈압과 맥박수 등 생체징후를 확인했을 때 큰 이상 없이 모두 안정적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외상 또한 발목이 유일했는데 개방성 골절이나 출혈도 없었고 B양의 의식상태도 명료했다"고 돌이켰다.
KTAS 환자 중증도 분류는 총 5단계로 나뉘는데, 그중 '레벨5'가 가장 경증 단계로 감기와 두통, 장염, 설사, 열상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A전공의는 "119 구급대원에게 낙상 추정만 전해 들었지만, B양과 B양의 부모와 대화해 보니 자살을 기도한 것이 상당히 의심됐다. 최근 청소년들의 자살 사고가 너무 많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이어 "보호자에게 '자살 기도 환자들은 본원에서 입원이 어려운 상황인데 정신과 치료를 병행할 수 있는 대학병원 진료가 필요해 보인다'고 권유했다. 보호자도 이에 수긍해 전원이 이뤄졌다"며 "당시 보호자에게 설명하는 모습은 CCTV에도 남아있다"고 밝혔다.
환자가 안전하게 최선의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문진 후 판단·조치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국립정신건강센터 '정신과적 응급상황 현장대응 지침'에 따르면 자살기도자는 재시도가 상당히 빈번해 일반병동 입원은 부적절하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담당하는 보호병동 입원 우선이 원칙이다.
A전공의는 "당시 병원은 응급의료정보상황판에 '정신적응급환자 수용 불가' 메시지를 공지하고 있었음에도 사전 연락 없이 환자를 이송해 왔다"며 구급대원들의 조치가 아쉽다고 전했다.
또 "한 구급대원은 자살 기도인지 알았다면 이 병원에 오지 않았을 거라 말했다"며 "누가 봐도 극단적 선택이 분명했고 환자 당사자도 자살사고가 뚜렷했으며 보호자 역시 이를 가늠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시 구급대는 낙상 추정 외에는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B양 사망의 피의자로서 수사받게 된 것에 심경을 묻자, A전공의는 "수사 중 '환자를 보기 싫어서, 귀찮아서 안 본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 한마디밖에는 생각이 안 난다"고 털어놨다.
한동안 말문을 잇지 못하던 A전공의는 "환자를 보는 게 싫고 귀찮았으면 과연 응급의학과를 선택했을까"라고 되물었다.
대표적인 필수의료과이자 기피과인 응급의학과. A전공의는 왜 응급의학과에 지원했을까.
그는 "응급실에 선 지 이제 2년 반 정도 됐는데 응급실 근무를 정말 보람 있어 하고 좋아하며 열심히 하고 있었다"며 "촌각을 다투는 최일선에서 다양한 환자를 보고 소통하며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한다는 것이 뿌듯했다. 이 일이야말로 내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그런 사명감으로 응급의학과를 택했고, 사람을 살리는 길을 택한 의사로서 환자를 자의적으로 보지 않은 적은 결코 단 한 번도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A 전공의는 "사람을 살리러 왔는데 경찰도 언론도 나를 환자를 죽인 사람으로 낙인찍고 몰아가는 것 같다"며 "응급의학과를 선택하고 정말 단 한번도 후회한 적이 없었는데 의욕이 많이 꺾이려 한다"고 호소했다.
특히 수사관에게 '정신적중증응급환자는 재시도 가능성이 상당하기에 일반 병실은 위험하다'고 설명했는데도 '자살 재기도는 (A전공의와) 상관없는 일이고 보호자가 알아서 할 일인데 왜 그것까지 신경쓰느냐'는 말이 돌아와 황당했다고 한다.
만약 A전공의가 정신적 응급 환자를 일반병실에 받아 외상을 치료했으나 환자가 또다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면, 그때도 마찬가지로 부적절한 조치라고 책임을 묻지 않을지 모를 일이라는 것이다.
A전공의는 "앞으로 이 일을 더 해나갈 수 있을지 막막하다. 많이 무섭고 걱정된다"고 털어놨다.
"지금은 환자를 받지 않아 환자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책임을 묻고 있는 상황"이라고 짚은 A전공의는 "그러나 만약 의료진이 부족해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없는 상황인데도 환자를 받아 사망에 이르렀다면, 왜 환자를 받았냐며 또 (응급의학 의사를) 탓하고 몰아갈까 봐 겁이 난다"고 전했다.
한편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율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있다. A전공의가 근무하는 병원 또한 2023 응급의학과 신규 전공의 모집에 단 한명의 전공의도 지원하지 않았으며, 현재 1년차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없는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