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현실과 괴리된 대통령 현실 인식, 정부 관료에서 비롯"
박 차관 "난 의사 아니다…일반화한 이야기, 오해 있을 수 있어"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이 환자 경·중증 분류 기준으로 '전화 가능' 여부를 언급하자 의료계가 "이젠 의사 흉내까지 내느냐"며 비판 목소리를 냈다. 박 차관은 "오해가 있을 수 있다"며 한 발 빼는 모습을 보였다.
논란의 시작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박민수 차관은 4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본인이 전화해서 알아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 자체가 경증"이라고 밝혔다. 최근 응급의료 위기에 대한 정부 차원의 대책을 설명하면서다.
의료계는 의사조차 판단이 어려운 경·중증 분류를 두고, 정부 고위 관료가 무책임한 실언을 했다는 데 비판 목소리를 냈다. 최근 응급의료 현장과 괴리된 대통령의 발언이 정부 관료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한의사협회는 4일 즉각 비판 성명을 내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한 국가의 보건의료를 관장하는 자가 이렇게 무지한 발언을 일삼는 것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최근 브리핑을 통해 응급의료에 '큰 문제 없다'는 취지의 언급을 이어가고 있다. 한편으로는 경증환자의 응급실 진료비 부담을 90% 높이는 방안을 검토, 경증환자 응급실 이용을 자제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의협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식 정책으로, 의료현장과 환자들의 입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땜질 정책"이라며 "박민수 차관의 발언은 정부의 무리수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음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응급실을 찾은 환자들이 처음에는 경증으로 진단받았다가 추가 검사가 진행 되면서 중증으로 밝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고, 그 반대인 경우도 많다는 의료 현실을 전한 것.
의협은 "의사들도 구분이 어려워 수많은 임상경험과 공부를 통해 판별해야 하는데 전화를 할 수 있다는 것이 경증이면 도대체 의사들은 레드 플래그 사인(위험 신호)은 왜 공부한 것인가?"라면서 "이런 식으로 쉽게 경·중증 판단이 가능하다면, 현재 국정운영의 상태가 진작부터 중증으로 판정됐다고 말하고 싶다"고 일갈했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정책과 제도를 수립하고 운영하는 정책실무 책임자라는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라며 "이런 인식 수준의 차관이 대통령에게 잘못된 보고를 하니, 대통령이 현 상황을 '원활하다'며 태평하게 보는 게 이상하지 않은 것"이라고도 짚었다.
정부의 '경증환자 응급실 제한' 정책에 대한 비판은 국회에서도 나왔다.
박주민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3일 응급의학과와의 간담회 직후 "응급실에서 경증·중증 판단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한다. 또 중증도 판단은 과소분류보다 과대분류가 기본이 돼야 한다고 했다. 과소분류를 했다가 추후 중증으로 전이되거나 치료받지 못하는 상황이 나오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중증도 판단은 예방 가능한 사망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점에서, 응급의학에서 더욱 중시된다.
박주민 위원장은 "우리나라는 외국에 비해 중증환자를 보는 비율이 높다는 얘기도 들었다. 이렇게 되면 응급실 의미 자체가 퇴색된다는 지적이 있었다"며 "정부의 대책이 합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논란이 커지자 박민수 차관은 "오해가 있을 수 있다" 한 발 물러섰다.
박 차관은 4일 응급의료 등 비상진료 대응 관련 브리핑에서 의료계 비판에 대한 질의가 나오자 "제가 의사도 아니고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오해가 있을 수는 있다. 일반화해서 말씀드렸던 것이고, 개인이 판단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제가 보기에 기저질환이 있거나 고위험 상태인 상태에서 증상이 악화되면 중증일 수가 있다. 그래서 의식이 있다 그래서 다 경증이다, 이런 것은 아니다"고도 덧붙였다.
박 차관은 "가장 바람직한 것은 상황이 안 좋을 때 동네 병·의원을 빨리 이용하셔서 체크를 받으시고, 의사가 전문적으로 판단해서 거기서 조치가 가능하면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응급실에도 부담을 주지 않을 수가 있다"면서 "해결이 어려운 과제라면 전원이 이뤄진다. 그것이 가장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고도 발언, 오전 인터뷰와는 사뭇 다른 태도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