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17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의료계에 의-정 대화 참여를 다시한번 재촉했다.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정부는 진정성 있는 자세로 언제라도 대화에 임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과 함께다.
정부의 이 같은 발언은 처음이 아니다. 한덕수 국무총리와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 등 정부 주요 인사들은 연일 공식석상에서 "정부는 열린 마음으로 의료계와 대화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들의 절절한 호소를 듣고 있자면 의-정 대화 단절의 책임이 '고집불통' 의료계에 있는 듯 하다.
과연 그런가.
# "의대생 휴학은 휴학이 아니고, 전공의 사직은 사직이 아니다." 의대생이 동맹휴학을 하거나 전공의가 집단사직을 하면,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어서 그런건데, 전공의 1만명이 병원을 떠났지만, 응급의료도 잘 돌아가고 있고, 중증환자 진료도 잘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의료대란은 없다"고 한다.
# 2000명 의대 증원은 정부가 질렀지만, "현 의료사태의 가장 큰 책임은 전공의에게 있다"고 했다. 2000명 의대 증원은 못 바꾸는데, "열린 마음과 유연한 자세로 대화하고 싶다"고 한다.
# 의대 5년제 전환까지 검토했지만, "의학 교육의 질 저하는 없다"고 주장한다. 지역·필수의료를 살리는 의료개혁을 하는 중인데, 수조원의 재정을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에 때려붓는다. 전공의가 없어져서 전문의 배출이 중단됐는데, 전문의 중심병원을 만든다. 국민에게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의료개혁을 추진 중인데, 전공의가 하던 일은 PA에게 맡긴다.
# 당장 내년 2000명의 정원을 늘려야 할 정도로 의사인력이 부족하지만, 전공의 1만명과 의대생 1만 8000명을 날렸다. 의료현장을 외면한 일방적 정책결정, 비과학적인 추계에 기반한 강압적 의대증원에 반대하며 현장을 떠난 이들에게 "2000명은 과학"이며 "전공의·의대생이 왜 나갔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답한다.
그리하여 어디로 가려는 건가.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가.
말로 말을 덮는다. 허물 위에 허물을 덮는다. 모래로 성을 짓는다.
의료사태가 벌어진지 벌써 8개월이 지났는데, 여전히 앞 뒤 다른 말잔치 뿐이다. 대화를 막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